"전 세대 어울릴 지역문화공동체 꿈 꾼다"
인천의 공공예술 ② CCS525-꾸물꾸물문화학교
취재:송은숙 기자
'꾸물꾸물문화학교'를 통해 세대별 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대표 윤종필)를 찾았다. 이들은 커뮤니티 연대 중심으로 다양한 대안예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디어아트를 전공한 윤종필 대표(36)는 8년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안양, 안산, 서울 등지에서 문화예술교육, 공공예술, 다문화교육활동을 하다 2009년 지역활동을 시작했다.
-요즘은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나?
처음에는 대안예술 공간이 '전시장'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스튜디오525 외에도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사이 연대를 통한 전시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이 관심사다. 올해는 인천문화재단이 만든 '지역문화공동체 만들기 추진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꾸물꾸물문화학교'도 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중구에서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지원하는 사업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꾸물꾸물'은 기어가는 벌레처럼 '느린 속도'지만 그 과정이 중심이 된다는 뜻 외에도 아이들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꿈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꿈을 꿈을'이라는 2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꾸물꾸물문화학교'는 초등학생이 참여하는 '홍예문프로젝트', 청소년이 참여하는 '우리동네 고고씽 RPG', 성인 대상의 '생활의 발견' 등 3가지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초등학생은 3년째 진행하고 청소년과 성인은 2년째 접어들었다.
-활동영역이 넓은데, 어떻게 불리는 게 좋은가?
CCS525 디렉터이면서 미디어아티스트, 문화예술교육 기획과 비평, 다문화교육 콘텐츠 기획과 진행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여러 활동을 통해 사회적 예술을 하는 사회적 예술가(커뮤니티 아티스트)로 알려졌으면 한다.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2005년 안양 시장 골목에 있는 '스톤앤워터교육예술센터'에서 문화예술교육 일을 처음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안산에서 (사)국경없는마을에서 다문화교육 컨텐츠를 기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가들이 유행처럼 '기금유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 생활 역시 다르지 않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지역작가들이 지역에서 작업을 했다면 책임감이 크고, 공공예술작품 유지·보수도 잘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지인 작가들은 기금을 받아 지역에 가서 사업을 하고, 떠나간다. 하지만 공공장소의 조형물이나 벽화만 해도 그렇고 공공예술은 사후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지역이 주체가 되어 자생적으로 유지, 복구할 수 있도록 진행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내가 자라고 부모님이 계신 내 동네, 인천에서 뭔가 해야겠다 싶어 2009년부터 인천 활동을 시작했다. 부평문화원의 '마을미술 프로젝트'나 살고 있는 십정2동에서 소소하게 시작한 '동네예술가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특히 2006년에 공동기획했던 '홍예문프로젝트'는 공공예술 안에 문화예술교육을 접목한 첫 사례일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지역을 조사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끌어내고, 버려진 공간을 찾아내서 바꾸는 등 작업을 했다. 그때의 활동이 중구에서 지금의 꾸물꾸물문화학교로 이어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의 성과가 있다면?
조금씩 가능성이 보인다. 우리 교육환경에서 청소년들이 학원에 가야 할 시간에 '우리 동네 고고씽 RPG'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인기가 많다. '우리 동네 고고씽 RPG'는 미션수행게임을 응용해 동네를 무대화해 역사, 생활문화, 미디어 등을 배워가는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인 미션을 정해 요즘 인기가 많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놀이형태로 진행한다.
올해는 2기가 진행 중인데, 1기 아이들은 직접 학생스텝이 되어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한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방송처럼 촬영도 해서 미디어교육까지 결합시켰다.
또한 청소년들이 이곳을 편하게 여겨 회의장소로 이용하고 팀을 짜 학교공부도 한다. 여기에 대학생들이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봐주든, 같이 놀든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청소년에서 청년까지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이것이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로 되고, 몇 년이 지나면 문화공동체를 만드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축제를 하나 기획해도 이 아이들끼리만 뭉쳐도 가능하다.
그리고 부모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하는 것보다 선배 언니오빠의 한 마디가 영향이 더 크더라. 프로그램을 하면서 청소년들끼리 서로 학교 정보를 주고받고, 자연스럽게 선배가 멘토 역할을 한다.
가족 단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기획하고 어른들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공공예술 분야가 처해 있는 어려움은?
양적으로는 늘어나고 있다. 문화공동체 사업 외에도 도시만들기 사업도 있고, 비슷한 것들이 생겨나는 중이다.
다만 "정말 잘 되어가고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의지와 뜻이 모여서 돼야지, 기금을 쫓아 돈이 마을을 만들면 안 된다. 이것은 기금사업, 정책사업 폐단 중 하나다. 정책을 내놓으면 기금을 받기 위해 단체, 형식, 일을 뚝딱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진정성, 철학이 없는 곳들도 나올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건강한 방향으로 가도록 활동가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올해, 그리고 앞으로 계획은?
그동안 전시기획에 소홀해서 국제교류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만간 홍콩과 대만의 민관거버넌스 사례를 보고와 지역에서 어떻게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려고 한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매개자든, 작가든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가는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같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관심사이다.
'꾸물꾸물문화학교'에서는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우리 동네 작은 생활놀이 대회'나 '꾸물꾸물영화제'를 준비하는 등 여러 세대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지역문화공동체의 장을 만드는 일을 더 구체화시켜야 한다. 지난해 11월에 '생활의 발견'에 참여한 주민들이 전시회를 열었는데, 주민들의 자존감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크고 거창한 시도가 아니라 세대별로 작고 알차게 뭉치면, 이들끼리 단단하게 뭉쳐지는 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내게는 다른 작가가 공들여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것과 같고,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또 다른 방식의 사회적 예술을 시도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