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감동'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정치칼럼] 하석용 / 공존회의 대표 · 경제학 박사

2012-09-24     하석용


리더십의 핵심은 결국 감동이다. 솔선수범이 어떻고 많은 덕목을 늘어놓아 보았자 결국 리더십이란 팔로어(follower)를 이끄는 능력인 것이고, 따라서 팔로어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한 리더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의 핵심은 감동이다. 공자가 백성의 신뢰를 강변한 것도, 한비자가 신상필벌을 내세우는 것도 결국은 따르는 자들의 감동을 조작하기 위한 통치기술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에 명멸한 대소 정치인들이 남긴 언어 속에는 집단을 움직이는 감동의 표현이 차고 넘치게 마련이다. 감동의 언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사는 리더일 수 없고 정치인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감동의 언어라는 것이 물론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언어는 대개 전문적인 라이터(writer)를 고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의 욕구에 영합한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단지 책상물림 지식이 많다고 해서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다. 감동은 어떠한 형태의 수단을 동원하든지 생산자와 소비자 간 교감과 영혼의 합치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결코 일방통행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곧 예술이다.

어쩌면 감동의 언어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한 준비된 인간의 '피 속에 용해된' '모든 것'에 의하여 스스로 탄생하고, 터져 나오는 인격 그 자체와 같다.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것이 사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풍부한 지식과 경험, 세련되고 정확한 통찰과 응축의 능력, 때로는 과감한 모험심도 필요하고, 반대로 지독한 절제를 배우기도 해야 할 터이다. 과감한 결단만이 아니라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는 끈질긴 인내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관용과 엄격함의 미덕을 동시에 구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모두에서 잘 빚어진 한 방울의 향기로운 청주(淸酒)처럼, 와인처럼, 위스키처럼 탄생하는 것일 게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러한 역사(役事)를 위한 가장 소중한 인격적인 덕목으로 '간절함'과 '솔직담백함'을 꼽고 싶다. 그러한 감동은 막 바로 모두의 심장에 꽂혀야 하는 것이기에,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을 갖추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번잡하여서는 파괴력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 대통령 후보들의 언어 속에서 그런 감동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행하다. 그들의 언어는 끊임없이 누군가 눈치를 살피고 계산을 하며, 그리하여 그들의 언어에서는 천박한 분내가 난다. 그들의 언어 속에서 나는 우리의 내일을 냉정하게 통찰하는 지혜를 발견하지 못하며, 답을 찾는 고뇌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당선으로 가는 계산 속에서만 간절하고 솔직하다. 나는 이들이 세계의 지도자들과 만나 어떻게 마주해 대화하며, 국무위원들을 통솔해서 어떤 국무회의를 할 수 있을지 긍정적인 상상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들의 이러한 언어를 둘러싸고 환호와 탄성을 질러대는 일단의 무리들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언가? 그들 속에는 진실로 감동이 교류하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내 식견이 좁고 짧으며 눈이 노상 어둡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 경제와 관련하여 자본의 문제, 노동의 문제, 기술의 문제, 경영의 문제, 행정지원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국가 안보와 관련하여 현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이 나라를 항구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 극단적인 사회적 아노미(anomie)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물론 그들의 선문답과 중얼거림,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찬 선전용 책자들이 시중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하는 말이다.) 
 
이제 곧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국가경영 전략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구름 잡는 경제민주화 각론이 엉터리 논문의 목차처럼 의미 없이 열거될 것이고, 본질은 하나뿐인 복지의 전략들이 가면무도회 탈바가지들처럼 수십 수백의 얼굴로 등장하여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그 속에 간절함과 솔직담백함이 배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기준으로 누군가를 뽑고, 또 그렇게 5년은 지나갈 것이다. 5년 후에도 반드시 우리는 또 다시 "바꿔!"를 외치고, 불평과 불만이 곧 정의라는 착각은 계속될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이 땅에서는 이렇게 감동보다는 유혹과 아첨, 야합과 꼼수, 이기와 탐욕, 선동과 부화뇌동이 우점(優點)할 것이다. 간절하기는커녕, 간절함을 구하는 이조차 보기 어렵고 솔직담백함은커녕 솔직담백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세상에서 감동은 태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혼자 바보가 되기를 맹세하고 우리 대선후보들께 엎드려 청한다. 비록 단 한 마디일지라도 세계 역사에 남을 감동의 언어를 준비해 줍시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