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음, 얼마나 알고 계세요?”
[황원준의 마음성형] 어떤 엄마와 아들
2012-10-28 황원준
또래보다 키가 큰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병원을 찾아왔다. 앞이마가 반쯤 보이는 일자머리에 색갈이 다른 이어링을 하고,링 두 개가 연결된 메탈 반지를 낀 모습으로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이 남학생은 최근 학교에서 평가한 심리검사에서 자살사고가 파악돼 정밀검사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엄마와 함께 내원했다.
엄마에 의하면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해서 임신 8개월이 되어서야 유산을 포기하고 ‘이제는 낳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으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은 울지 않고 잘 놀고, 밤에도 보채지 않는 순한 아이였다. 자라면서도 성격이 꼼꼼하고 눈치가 아주 빨라서 어른들의 예쁨을 받았다.
다만 워낙 말라서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여름에는 반팔 셔츠나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싫증, 짜증을 잘 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두려움 또한 컸다. 체격이 작고 왜소하며 목소리나 얼굴이 여자아이 같아 다른 아이들로부터 ‘네가 있어서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 이라는 놀림도 받았다.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기보다 태권도 선수인 여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진료실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먼저 엄마에게 물었다.
“아드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어떤 점을 도와주면 좋을까요?”
이 질문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강하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문제 없는데요.”
다시 질문을 했다.
“학교에서 실시한 1차, 2차 자가보고식 검사에서 ‘자살사고’가 보고되었고, 3차 정밀검사를 위해 저희 병원에 오셔서 검사를 하셨습니다. 그 동안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라고 짐작 가는 것이 없으신가요?”
그래도 엄마는 똑 같은 대답이었다.
옆에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대답을 못하고 곧바로 엄마를 보았다. 엄마 눈치를 보는 듯해 엄마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
다시 물었더니 아들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자세히 표현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자살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며칠 전에는 옷걸이를 모아 목을 매려고 시도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의 마음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엄마를 더 걱정했다.
“외할머니가 유방암 말기로 진단받고 나서 엄마가 우울해하셨는데, 작년 겨울에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어 하세요”
이 말을 듣는데 ‘누가 엄마이고, 누가 중학교 1학년 아들인가?’ 싶어 안쓰러웠다. 심리학적 평가 보고서 결과, 아들의 전제 지능은 같은 나이 또래보다 ‘평균 상’, 실제 잠재능력은 ‘우수 수준’ 정도로 나왔다. 전반적인 언어능력이나 실행기능, 사회적 인지기능과 관련해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이고, 비관적이고, 극히 회피적이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만성적 우울감, 무기력감 등 부정적 정서가 있어 심리적 에너지가 매우 낮은 상태였다.
엄마를 다시 진료실로 들어오게 하였다.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힘드시겠군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친정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아들이 자살 생각을 초등학교 2학년부터 했고, 며칠 전에 옷걸이 모아 자살을 하려다가 가족들 생각에 포기한 사실을 아십니까?”
친정어머니에 대한 감정반응과 달리 눈물을 닦으면서 하는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 아들은 자살도 못해요. 그럴 용기도 없어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의사로서, 한 사람의 부모로서 어이가 없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엄마 마음 상태를 걱정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내심 안쓰러웠다. 누가 엄마이고 누가 아들인가? 나도 우리 아들, 딸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을까? 각자 자기 주변을 뒤돌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