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정치와 망각의 정책

[정치칼럼] 정영수 / 프라임전략연구원 대표

2013-12-16     정영수
우리는 “망각의 정치”와 “망각의 정책” 이라는 동굴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의 대표적 국정 키워드였던 “혁신”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사회에서 금기어 중의 하나가 되어 참여정부와 함께 쓸쓸히 퇴장하였다.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불편함과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 “혁신” 추진 관련 부정적인 의견들이 제기 되었지만 정부운영의 효율성을 위한 중요한 기제 중의 하나인 혁신은 특정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며, 특정 기간 동안 추진할 한시적인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5년으로 수명을 다하였다. 미국 및 유럽 선진국에서는 일상적 혁신, 상시적 혁신, 개방형 혁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고의적이든, 미필적 고의든 이명박 정부에서의 “혁신”은 망각 정치의 희생물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국정 키워드 중의 하나는 “녹색”이었다.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및 기후변화에 따라 “녹색”은 국가 및 국민의 미래를 결정 할 핵심개념이 되었으며 이와 연동되는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 5년간 가장 많이 회자 되었던 단어였다. 이를 반영하듯 이명박 정부 하의 정부부처에서는 “녹색”을 대부분의 정책수립 및 집행에서의 중요한 방향으로 설정하였고 “녹색”과 관련된 사업은 예산확보가 다른 사업보다 수월하였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정책추진의 대표적 성과 중의 하나가 GCF(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의 우리나라(송도) 유치였다. IMF(국제통화기금) 보다 기금이 많으며 그 영향력 또한 크다고 하여 이명박 정부는 사무국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인천 송도에 사무국을 유치할 수 있었다. GCF 사무국 유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송도를 방문할 정도로 국가적 중요 사업이었고 그 효과에 대해 각종 언론매체가 앞 다투어 보도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녹색” 키워드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슬며시 사라졌다. 정부부처 그 어디도 “녹색”을 강조하지 않으며 “녹색”은 과거 폴란드 망명정부 지폐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2월 4일 GCF 사무국 출범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는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과 기후변화 대응을 창조경제 핵심 분야의 하나로 설정한다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을 뿐 축사 전문을 살펴봐도 “녹색” 키워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얘기처럼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연동하여 국가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환경문제 대응을 위한 “녹색” 키워드는 특정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추진해야 할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 키워드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혁신” 키워드가 사라지듯이 박근혜 정부의 주요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망각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같은 망각의 정치가 계속되는 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키워드 역시 박근혜 정부의 종료와 함께 공무원들의 서랍과 사물함 속에 들어가는 “망각의 정책” 신세가 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된다.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서 이제 “망각의 정치”와 “망각의 정책”은 더 이상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망각의 정치”와 “망각의 정책” 고리를 단절해야 한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 필요한 키워드는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추진되도록 하는 “기억의 정치”와 “기억의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