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초상

[문학의 향기] 최일화 / 시인

2014-02-20     최일화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 번 못 펴고 큰 소리 한 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웃음 전도사 고 황수관 박사가 방송에서 하던 재치 넘치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영국문화협회가 세계 102개 나라 4만 명의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그 첫째가 mother(어머니), 둘째가 passion(열정), 셋째가 smile(미소), 넷째가 love(사랑)였고 다섯째부터 열 번째까지에도 father(아버지)는 없었단다. 70번째까지에도 father라는 단어는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한 아버지를 알고 있다. 두 아들을 낳은 큰마누라와 여섯 남매를 낳은 작은마누라와 함께 질곡의 현대사를 뚫고 온 망백의 아버지. 두 마누라와 배 다른 여덟 남매가 빚어내는 불협화음 속을 때로는 귀를 막고 때로는 눈을 감으며 갈등과 고뇌 속을 살아온 긴 세월. 이제 그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옛날을 회상하며 병석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6.25와 4.19, 5.16과 5.18, IMF 시대의 험난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뚫고 온 그의 눈가에 회한의 빛이 역력하다.

그는 일제 말기 부모의 권유로 양가집 규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 혼인은 양가 부모의 합의에 의한 결정이었지 본인들의 의사가 반영된 혼인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해방공간과 6.25 전쟁을 거쳐 오는 동안 극도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일대 혼란기를 맞게 된다. 이틈을 타 자유연애의 새 기류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급기야 축첩이 만연하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결혼생활의 파탄은 개인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운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했다.

전통과 현대의 충돌, 구식결혼과 신식연애의 격돌, 전통적 가치와 물질 만능주의의 격렬한 소용돌이. 그는 이 거센 시대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았고 이제 스스로 자신을 추스를 힘마저 소진한 채 병상에서 황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객지에서 공직생활을 하던 그는 같은 직장 전화교환수였던 일곱 살 연하의 여인을 만나 신식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이미 두 아들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부모에겐 알리지도 않고 객지에 살림을 차려 자식들을 낳았다.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노발대발 화를 냈지만 이미 저질러 놓은 불장난은 꺼질 줄 몰랐다. 급기야 1남 5녀가 태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녀에겐 호적이 없다. 자식을 여럿 낳았지만 여전히 동거인으로 살아야 했고 아이들은 모두 큰마누라의 자식으로 등재가 되었다. 급기야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큰마누라 아들이 군에서 제대를 할 무렵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호적을 빼앗기 위한 계획적인 탈취작전이라고나 해야 할까.

남편을 이용하여 시숙과 조카 등 시댁식구들을 감언이설로 매수하여 큰마누라가 호적을 양보하도록 종용하는 작전을 짠 것이다. 동조 세력을 확보하여 호적을 빼앗아 가문에서 유리한 여건을 점하고 큰마누라를 몰아내기 위한 계략이었다. 아들 대학 학비 대주고 생활비를 대준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여자의 속셈에 우유부단한 남자가 말려들어간 것이다. 낳은 자식을 자기 호적에 올리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왜 이해 못하랴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적반하장의 행위로 동조세력을 규합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녀의 운명은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다. 남의 인생을 희생시켜야 자기가 사는 기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엔 그런 파렴치한 처사에 굴복할 수 없는 더 엄격한 근본적인 윤리와 전통이 있게 마련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그녀의 신앙은 돈이었다. 돈을 그 무엇보다도 상위에 두었다. 호적이 없는 여자, 동거인으로밖에는 살 수 없는 여자. 그가 의지할 것은 돈뿐이었다. 그로 인해 갖가지 비이성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조카들에게 단 한 푼도 세뱃돈을 주지 않는다던지 남편의 전 재산을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모두 증여케 하는 등의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공평하고 보편적인 태도를 기대했던 나머지 자식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겪어야 했다. 법률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납득이 되지 않아 모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자신의 과실로 인해 일생동안 여자에 의해 조종되는 남자. 일평생 큰마누라와 그 자식들과는 별도로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해온 아버지와 또 다른 여자. 그렇다. 같은 지아비이지만 두 마누라는 상극의 위치에서 오랜 세월 각자의 생활습관과 문화를 형성해온 것이다. 큰마누라는 전통적인 윤리를 소중히 여기며 조상을 모시고 미풍양속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가꾸려는 일념으로 한 평생을 살았다면 작은 마누라는 본부인에게 도전하여 어떻게라도 호적을 빼앗아 정실부인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속셈으로 오랜 세월 증오와 질시의 파괴문화를 형성해온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남자란 여자 앞에 실로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 더구나 기혼자임을 속이고 새 살림을 차린 남자는 여자의 손에 쥐어 살 수밖엔 없다.

남편이 떠난 가정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을 키우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상을 모셔온 큰마누라, 객지에서 혼인식도 없이 동거를 하며 여러 남매를 낳아 기르며 본처를 질투하고 호시탐탐 호적 탈취의 기회만 노리던 작은마누라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 과정에서 한 남자 밑에 두 개의 대립되는 독특한 가정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남편도 자신의 인생을 합리화시키고 보상받기 위해서 재력과 장성한 작은마누라 자식들을 내세우며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했지만 돈독한 가톨릭 신앙에 기반을 둔 큰마누라 옹호세력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 가정의 두 문화, 그 가운데서 모호한 입장만 취하다 늙어버린 어떤 아버지.

일찍이 청산했어야 할 축첩이 결국 이런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 데는 남자의 오판과 무기력한 대응, 여자의 서슬 퍼런 오만과 부실한 가정교육을 간과할 수 없다. 도회지 출신에 남자보다 더 배웠다는 여자의 오만, 재취로 가야 좋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사주팔자, 신식 연애감정에 눈이 멀어 부모의 뜻을 어기고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의 무절제한 생활이 한 가장의 늘그막을 회한과 갈등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망백의 남자는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디에 가서 묻혀야 할지 아직도 전전긍긍하는 그를 본다. 일평생 함께 살아온 작은마누라의 무덤에 합장을 해야 할지. 부모님과 형제, 선조들이 모셔진 선산 가족 납골묘에 묻혀야 할지. 6.25 참전 경찰 신분으로 국립 호국원에 가 묻혀야 할지. 두 마누라와 함께 가족 납골묘에 묻히고 싶지만 시댁에 대한 작은마누라의 적개심을 생각하면 그것도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가정의 모습이 이제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다. 전통적인 가정 형태라면 조부모가 있고 부모가 있고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과 시누이가 함께 이루는 대가족제도가 보편적이었다. 조부모는 따로 살더라도 부모는 함께 사는 것이 보편적인 정상 가정으로 간주되고 아버지나 어머니 한 분만 없어도 비정상으로 취급되어 학생들 학생부에 결손가정으로 기재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의 얘기다. 시대가 바뀌고 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라 우리 가정도 사회의 변천만큼이나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가족의 형태도 천 가지 만 가지 다양하게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인 가정이 있는가 하면 자녀가 없는 부부만의 가정도 있다. 아직도 대가족제도를 고수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가 조손가정을 이루어 살기도 한다. 이혼하고 혼자 자녀를 키우는 가정도 수두룩하다. 남편 없이 자식만 키우는 싱글맘, 외국의 며느리나 사위가 들어와 한 가정을 이루어 살기도 하고 재혼하여 피가 섞이지 않은 자녀들과 한 가정을 이루어 살기도 한다.

어쩌면 전통적인 대가족제도하에서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로 갈등을 겪는 일도 앞으로는 없어지지 않을까. 어떤 문화건 그것에 우열을 가리려고 하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문화와 선진국의 생활문화를 있는 그대로 긍정의 눈으로 보아야지 우열을 가리려는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복잡한 모든 가정 형태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우열이나 비교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독특하게 형성된 각 가정의 문화는 모두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아버지만을 가장으로 생각하는 고루한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각자 자신의 가정의 형태를 윤택하게 가꾸어야 하지만 타인의 가정에 피해를 입히거나 손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남의 가정을 훼방하고 해악을 끼치는 행위는 커다란 인권유린이 되기 때문이다. 남의 행복을 짓밟지만 않는다면 가정의 형태가 남들과 좀 다르면 어떤가.

술을 먹으며 털어놓은 한 시인의 하소연을 소개했다. 시는 아름다운 낱말들의 나열이 아니다. 시는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부모에 대하여 사랑, 효도만을 강조해왔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강조하기 이전에 부모가 자식에게 충분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시인은 주어진 환경과 자신의 체험에 따라 거기에 합당한 시심을 뽑아 올린다. 세간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부모님에 대한 칭송 일색으로 되어있는 시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부모님으로 인한 갈등과 고통이 시의 주제가 되기도 해야 할 것이다. 부모라고 해서 모두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그들도 모두 허물 많고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정서나 보편적인 진리를 외면하고 매사에 불공평하고 편파적인 아버지라면 나도 father란 말을 얼른 아름다운 단어로 꼽지는 않을 것이다.






개나리/ 최일화


어려서 엄마 잃고 옷소매에 코를 묻치며

오줌을 쌌다고 구박을 받던 아이

아버지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눈칫밥을 먹으며
머리에 부스럼이 덕지덕지 났던 아이

구박을 받으면서도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성공해서 효도해야 한다며
괜찮아 효도하지 않아도 돼
들은 체도 안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던 아이

토끼 몇 마리가 전 재산이었던
먼 동화의 나라를 꿈꾸며
온종일 새를 쫓아다니던 아이

직장 얻어 끼니는 잘 때우고 있는지
여자 하나 만나 가정은 꾸리고 사는지
봄볕 내리쬐고 다시 개나리는 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