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외교가 필요하다

[이창수의 법과 인권 이야기] 10

2015-01-08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준비위원장

SBS뉴스 화면 캡쳐

지난 해 8월과 12월, 중국정부는 한국인 마약사범 4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사형을 기소·구형·판결하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야만에 가까운 행위다. 사형이 법제도적으로 용인되는 사회가 문명국을 논할 수 없으며 또 실제로 집행하는 나라가 생명을 존중하는 합법적인 정부를 가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중국은 야만국가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중국식 법치’가 ‘형벌을 통한 질서 확립’이라는 국가후견적인 전근대성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한계도 분명하다. 지난해 12월 사형이 집행된 뒤 6일 만에 그 사실을 통보받았다. 내정불간섭 원칙이라는 국제법적인 원칙이 있긴 하지만, 자국민의 생명이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무능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재외 국민에 대한 영사보호의 실효성은 국가의 역량과 비례한다는 정치현실주의적 시각으로는 이런 비판이 실제 정부와 외교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전환을 추동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는 19세기 말부터 늘 군사안보적인 긴장상태에 있어 불안정한 평화체제에 있다. 남북 간에는 정전 협정이라는 임시적인 체제가 63년째다. 사실상 두 세대가 넘도록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되지 않는 원인을 남북간의 대결적인 문제로 외교적 비난만 하고 있는 상태가 정상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북 내부의 정치적인 자유와 민주적인 발전 그리고 자국민의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걸림돌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아베 내각의 군국주의적 군비재무장은 이미 현실화되었으며, 대 중국 봉쇄 목적의 미일 안보체제는 더욱 강화되어, 동북아의 안보적 상황은 신냉전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함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체제 논쟁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 체제 논쟁에서 상호 비난하면서 제기된 인권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동북아에서 이런 불안한 안보체제가 지속되는 것은 이른바 ‘안보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권력 집단의 속성이 불변.부동의 철칙처럼, 글로벌 차원의 대변화가 일어나는 이 상황에서도 관성적이고 무중적인 군사안보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하다. 군축협상이라는 말이 외교에서 빠진지 오래다. 북한인권 상황이 심각하다는 데에 이론의 여지를 가질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나쁜 법과 제도에 의한 인권침해를 실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그렇게 쉽지 않다. 여기에 국가 간의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 외교가 실패한 곳에서 전쟁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반면 군사적 수단을 이용한 정책수단이 최후적인 선택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이 되는 동북아에서 역내 각국의 중대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정부가 우리 국민에 대해서 사형을 집행할 때 정부는 ‘내정불간섭’ 또는 ‘사법주권’ 존중이라는 근대국가적인 원칙을 존중(?)하기 위해, 자국민이 타국의 법률적인 살인에 아무런 대응하지 못한 것이 과연 정상적인 외교인가? 또 우리 정부는 살인범에 대해서 ‘공개’ 총살형을 벌인다고 북한 정부를 인권침해 국가라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실효성 없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기 위해 외교적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 중국에서 마약 사법의 최고형량(사형)과 우리 법제에서의 최고형량(무기징역)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마약 판매 등의 혐의로 피고인 된 중국인이 우리 법정에 선다면 그는 어떤 경우에도 사형당하지 않는다. 양국 간에는 서로 법익과 양형의 인식과 기준에 차이가 있다. 북한과 우리의 법제도의 차이도 엄연히 존재한다.
 
국가 사이에 다른 법적 가치와 기준을 가진 경우, 국가는 대화해야 한다. 정례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인권대화라고 하자. 서로의 법제도(국가주권과 내정불간섭 원칙)을 존중하면서, 반대로 법익과 인권의 다양한 차이와 수준을 고려해 공식적인 인권대화를 갖는 것이 인권외교의 출발일 것이다. 무엇보다 사형제도를 한 나라도 폐기하고 있지 않는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어쩌면 이런 인권대화 조차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교를 군사작전을 위한 수단이거나 안보를 위한 하나의 장식물로 여길 수 없다. 외교는 평화적인 분쟁해결 방식 가운데 가장 공식적이며 변경시킬 힘을 가진 수단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서 ‘인권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해, 중국 법령으로 우리 국민을 배제 또는 살인 당하는 이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중국과 형법, 각종 특별형법과 형사소송법상의 양국 제도의 차이를 논의하고 대화하는 장부터 마련해야 한다. 북과도 마찬가지도 한국 외교는 인권외교, 특히 인권대화를 통해서 역내의 안보적 충돌이 줄이고, 서로 다른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여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외교의 실패요 결국 안보적인 긴장은 해결될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의 정부들과 인권대화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