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새끼야”라고 외치면서 뭉클하긴 처음이었다

[기획연재] 시민단체 릴레이 인터뷰-⑤ 민들레장애인야학

2015-01-25     이재은 기자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우열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인간 해방을 꿈꾸는 민들레야학. 그 꿈을 위해 민들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홀씨를 퍼트리려고 노력한다.

전체 장애인의 49.5%가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으로 살아간다는 이 땅의 교육차별. 인천지역 장애인들의 해방과 성장을 돕기 위해 ‘한 발 내딛는 생각! 살아있는 배움! 나눔의 기쁨이 있는 곳!’이라는 슬로건으로 2007년 3월 개교한 민들레야학 박장용(34) 교육국장을 만났다.

박 국장은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장애인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인천에 장애인야학이 있는데 한 번 놀러 오라”고 권했다. 호기심에 가게 된 곳이 간석오거리에 있는 작은자 야학. 작은자는 전국 최초의 장애인야학으로 탄생, 현재는 장애/비장애인이 더불어 공부한다. 박장용 국장은 ‘작은자 야학’에서는 2004년부터, ‘민들레’에서는 2008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했다.



# 민들레야학은 어떻게 탄생했나.

박길연 교장선생님을 주축으로 장애인 5명이 중심이 돼서 2007년 개교했다. 장애인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이야기할 곳이 필요했다. 노틀담복지관을 빌려서 시작했는데 이후에도 몇 번이나 둥지를 옮겨야 했다.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장애인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해서 곤란하다며 집을 비우라고 한 주인도 있었다.

민들레야학에 오는 장애인 대부분이 저소득층과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여서 재정적 어려움을 피하기 힘들었다. 임대료가 밀렸고, 2008년 인천시교육청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근처 공원에 천막을 치고 야외수업을 했다. 한 달 남짓 거리에서 보낸 끝에 지자체와 교육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은 계양구청 근처 상가 2층 63평 공간을 교실로 활용한다.

# 학생은 몇 명이고,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졸업생은 몇 명이나 되는지.

학생은 25명 정도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고, 낮에는 문화예술교육, 인권교육, 자립생활교육 등 비교과 위주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는 교과 중심으로 공부한다. 초중고 과정이 따로 있지는 않고, 사진, 연극, 미술 등의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학습자 특성상 속도가 느리고, 이곳이 아니면 갈 수 있는 데가 없어서 평생교 형태로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검정고시를 목표로 하지도 않지만 시험에 합격해도 계속 야학에 오는 분들이 많다. 졸업 개념도 없다.

# 선생님은 몇 분이나.

13명 정도 된다. 유급 강사가 네 분이고, 나머지는 자원활동을 한다.

# 장애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에 변화가 있나.

‘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저상버스도 그렇고,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도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면서 생긴 거다.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말은 신조어로, 학자나 전문가가 만든 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와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표현이다. 장애인은 그 가족이 책임지고 돌봐야하는 게 아닌, 사회적 서비스(활동보조인 제도 등) 등을 통해 사회가 같이 지원하고 함께하자는 운동을 많이 했다. 사회가 도와야 장애인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다.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인간 존중의 사회를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느 곳이나 그렇듯 재정문제다. 시에서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넉넉하지 않고, 대부분 후원회비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할 일은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어려움이 많다. 3명 정도의 상근인력이 있다면 안정적으로 새로운 일들을 도모할 수 있을 거 같은데...

# 지난해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도 했던데.

홍보가 부족했는지 많이 오지 않았다. 2년에 한 번씩 하는데 생각보다 수익이 많지 않다. 인력 부족하고 운영기금도 필요하고 이래저래 어려운 건 사실이다.




#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가는지.

이동이 힘들어서 매년 1회 가는 정도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단체로 움직이기 때문에 갈만한 곳 찾기가 쉽지 않다.

# 수학여행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

투명 OHP필름에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고 평상시에 듣고 싶은 말을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본인을 위로하거나 칭찬하는 말을 적었는데, 어떤 분이 “똥개새끼야”라고 적더라.

그림을 그리고 말을 적는 데서 끝내지 않고 가운데에 한 사람을 앉히고 모두 그가 듣고 싶다고 적은 말을 세 번 소리 내어 외쳐주는 의식을 치렀다. 돌아가면서 한사람씩 주인공이 되는 거다. “똥개새끼야”라고 적은 분은 쑥스러워 안하겠다고 버텼지만 모두가 몸에 손을 얹고 건네는 응원을 받았다. 내용은 욕설이지만 응원의 마음을 담으니까 뭉클하더라. “똥개새끼야”라고 외치면서 뭉클하기는 처음이었다.

#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시설에서 약 36년 넘게 갇혀 사셨던 M(남성, 뇌병변, 청각 중복장애)씨와 역시 또 다른 시설에서 약 28년간 지낸 S씨(여성, 뇌병변장애)가 2009년 즈음부터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난해 가을에 결혼을 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옆에서 지켜봤던 터라 여느 결혼식에서와는 다른 탄성과 박수가 나오더라. 두 분의 용기 있는 결단, 그리고 그 용기가 만들어낸 글자 그대로의 자유가 만난 결혼식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다. 지난해 민들레야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고 인물이었다. 두 분이 함께 공부하고 함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쭉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행복으로 가는 현실적 조건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두 분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인데, 혼인신고를 하면 기초급여와 주거비가 줄어서 약 10만원 가량 덜 받는다.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전체 생활비의 약 10%가량으로, 매달 10%의 생활비를 삭감하는 비싼 결혼을 치른 셈이다.

# 보람 있었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이란 매순간 한계에 직면하고 그 한계를 함께 넘어서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막다른 길인 양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여럿이 함께 모여서 삶을 나누는 것이 어려움들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문해 교육시간에 이제 막 한글에 눈뜬 참여자가 동요 <나비야 나비야> 가사를 읽으면서 신기해했을 때, 그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감동하는 얼굴을 만났을 때,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쁘다. 신나는 일이다.

#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연극 공연과 전시, 발표회 등을 하고 꾸준히 문집도 만들고 있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달력도 제작했다.

지난해 ‘토론연극’이란 걸 처음 했는데 무대 위에서 일상에서 벌어질만한 일들을 연극으로 해보는 거다. 말하자면 참여형 연극인데 자립생활과 연계되는 주제로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거나 ‘그런 불편은 이렇게 개선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활동을 통해 나눈다. 주1회 진행되는데 하나의 주제를 2-3주 동안 한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

글쓰기 교실을 통해 4권의 문집이 만들어졌는데 그냥 문집으로만 두기 아까워서 올해 예술가들과 연계해서 노래로 만들까 생각 중이다. 같이할 만한 분들을 모색하고 있다.

# 새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담뱃값이 올랐다. 단체의 사정상 월급은 그대로인데, 그에 비해 너무 올랐다. 술값도 오른다는 소문이 있던데, 물가나 고통의 무게만 오르지 말고 삶의 질도 올랐으면 좋겠다. 함께 바라면 실제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민들레야학은 매해 운영비 명목으로 3천9백만 원을 지원받지만, 교육 등 운영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검정고시를 목표로 한 지식교육을 넘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맞서는 법을 함께 배우는 곳. 민들레야학은 오늘도 장애인이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야학의 역할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기획연재] 시민단체 릴레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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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신규철 사무처장
③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인천지회 이은주 상임대표
④ ‘인천작은도서관협의회’ 최선미 대표
⑤ 민들레장애인야학 박장용 교육국장
⑥ 인천행복교육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