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시대, 빚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쌈마이의 미디어로 세상헤집기> 14.
2015-04-03 정대민 인천미디어시민위원회 기획정책위원장
이십 대 초반, 새로 사귄 여러 명의 친구들과 술 한 잔 걸치고 계산대 앞에서 섰는데 한 친구가 자신이 계산하겠다며 나서는 거였다. 그런데 지갑에서 꺼낸 건 현찰이 아닌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였다. 그 친구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동시에 외쳤다. 오~~~!!
1887년 발간된 에드먼드 벨라미의 소설 <Looking Backward>에서 처음 돈 대신 쓰는 ‘신용카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반세기를 지나 1949년 미국 뉴욕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가 지갑을 사무실에 둔 채 밥을 먹다 곤경에 자주 처하면서 착안한 게 <다이너스카드>, 그 때는 열 몇 개 가맹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들의 카드였다. 그 뒤로 영국과 미국의 은행들이 관여하면서 VISA카드와 MASTERCARD가 탄생되었고, 한국에서는 1969년 신세계백화점이 VIP고객대상으로 처음 신용카드를 발급하였고, 1980년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출시했으며, 1982년에 조흥, 제일, 상업, 한일, 서울신탁은행이 연합하여 BC카드를 내놓았다.
1990년대 들어 신용카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찰을 중요시했던 문화가 서서히 바뀐 것이다. 어느덧 지갑 속에 현금이 많으면 촌스럽게 인식했고, 선진국문화시민은 슬림한 지갑 속의 카드 한 장으로 해결하는 자를 의미했다. 그렇게 신용카드는 중산층 이상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도 같았다.
그리고 1997년 IMF가 터졌다. 원화가치는 반토막이 났고 코스피는 5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했으며 외환보유고에 비상이 걸렸다.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밀려오는 쓰나미 경제위기로 인한 이유도 있었지만 정경유착, 부정대출, 환율정책실패, 외환관리부실, 금융기관의 부실 등 한국의 총체적 문제들도 한몫했다. 돈의 가치가 없으니 금이 필요했고 국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꽁꽁 숨겨놨던 결혼 금가락지 애기 돌 반지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정작 묵직한 다량의 골드바를 지닌 분들은 지하 깊숙이 더 파내려가 숨겼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알 길은 없다. 참, 나중에 국민들은 또 하나 중요한 걸 기부했는데 그것은 바로 ‘신용’이었다.
금융구제 조건으로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자본들에게 알짜배기 기업도 팔리고 알토란같은 땅도 팔리고 원화가 잠깐 오르는가 싶으면 엔화가 득달같이 달려와 발목을 잡았다. 한국경제는 안개 속을 헤매었고 수출은 막혔으며 이 난국을 돌파할 길은 내수시장 뿐이라고 당시 경제관료들은 당연히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신·용·카·드·대·량·발·급!
2000년대 초부터인가? 사거리마다 도우미들이 “신용카드”를 외쳐댔다. 마치 신용카드 한 장으로는 선진국문화시민이 아니라는 듯, 서너장은 기본이고 열장도 문제없다는 듯! 이름과 주민번호만 기입하면 며칠 후 신속하게 배달돼온 신용카드들. 그것이 소비를 늘여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경제난을 돌파하려는 정부의 숨은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도 있었을 테지만 모르는 이가 태반일 거였다. 그렇게 국민들은 지갑 속에 신용카드 컬렉션을 선보이며 오늘은 이 카드 내일은 저 카드, 오늘은 내 카드 내일은 니 카드, 돈은 없는데 돈을 쓸 수 있는 신비한 마법의 카드! 애인을 위해 긁고 친구를 위해 긁고 가족을 위해 긁고 유흥을 위해 긁고 또 긁고..... 게다가 현찰이 필요하시면 바로바로 인출기에서 뽑을 수 있는 캐쉬서비스~~ 까지!
정부와 금융기관의 부추김으로 다수의 국민들은 신용을 팔았고 2003년 카드대란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분별한 카드남발의 다수 국민들도 잘못이 있겠으나 이미 그걸 예상하고 정책을 펼치신 정부 나으리님들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는 하지만 혼란의 시기라는 이유로 나라가 나서서 국민들 빚을 만드는데 일조한다면 그것은 어찌 판단해야 할까? 국민들이 무지해서 그런 거지! 라고 넘어가야 할까? 정말 다른 대안은 없었던 걸까?
<화차>는 카드 한 장에서 시작해 카드돌려막기로 버티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고 개인파산에 이르러 죽으려다가 잔인하게 마음먹고 아주 딴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저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만 살고 싶은 여자, 그러나 자신의 신용과 정체를 버리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여자. 마치 신용불량자 이 시대의 참담한 자화상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 달 24일 안심전환대출로 내놓은 20조원이 나흘 만에 동이 났다. 정부도 놀라며 추가로 20조원을 더 풀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의 채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정책은 고무적인 일이다. 제2금융권까지 확대되기를 바라는 국민들도 많은 듯하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한 단체가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 (OWS·Occupy Wall Street)’이름의 이 단체는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빚탕감캠페인’으로 보면 된다. 부실채권을 시민들의 성금 등으로 사들여 없애는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남시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캠페인을 보면서 이 사회가 빚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될 때가 아닌지 조심스레 던져본다.
만일 사회가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면 부유한 소수의 사람도 구할 수 없다.
-존 F. 케네디-
1887년 발간된 에드먼드 벨라미의 소설 <Looking Backward>
1990년대 들어 신용카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찰을 중요시했던 문화가 서서히 바뀐 것이다. 어느덧 지갑 속에 현금이 많으면 촌스럽게 인식했고, 선진국문화시민은 슬림한 지갑 속의 카드 한 장으로 해결하는 자를 의미했다. 그렇게 신용카드는 중산층 이상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도 같았다.
그리고 1997년 IMF가 터졌다. 원화가치는 반토막이 났고 코스피는 5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했으며 외환보유고에 비상이 걸렸다.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밀려오는 쓰나미 경제위기로 인한 이유도 있었지만 정경유착, 부정대출, 환율정책실패, 외환관리부실, 금융기관의 부실 등 한국의 총체적 문제들도 한몫했다. 돈의 가치가 없으니 금이 필요했고 국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꽁꽁 숨겨놨던 결혼 금가락지 애기 돌 반지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정작 묵직한 다량의 골드바를 지닌 분들은 지하 깊숙이 더 파내려가 숨겼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알 길은 없다. 참, 나중에 국민들은 또 하나 중요한 걸 기부했는데 그것은 바로 ‘신용’이었다.
금융구제 조건으로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자본들에게 알짜배기 기업도 팔리고 알토란같은 땅도 팔리고 원화가 잠깐 오르는가 싶으면 엔화가 득달같이 달려와 발목을 잡았다. 한국경제는 안개 속을 헤매었고 수출은 막혔으며 이 난국을 돌파할 길은 내수시장 뿐이라고 당시 경제관료들은 당연히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신·용·카·드·대·량·발·급!
2000년대 초부터인가? 사거리마다 도우미들이 “신용카드”를 외쳐댔다. 마치 신용카드 한 장으로는 선진국문화시민이 아니라는 듯, 서너장은 기본이고 열장도 문제없다는 듯! 이름과 주민번호만 기입하면 며칠 후 신속하게 배달돼온 신용카드들. 그것이 소비를 늘여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경제난을 돌파하려는 정부의 숨은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도 있었을 테지만 모르는 이가 태반일 거였다. 그렇게 국민들은 지갑 속에 신용카드 컬렉션을 선보이며 오늘은 이 카드 내일은 저 카드, 오늘은 내 카드 내일은 니 카드, 돈은 없는데 돈을 쓸 수 있는 신비한 마법의 카드! 애인을 위해 긁고 친구를 위해 긁고 가족을 위해 긁고 유흥을 위해 긁고 또 긁고..... 게다가 현찰이 필요하시면 바로바로 인출기에서 뽑을 수 있는 캐쉬서비스~~ 까지!
정부와 금융기관의 부추김으로 다수의 국민들은 신용을 팔았고 2003년 카드대란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분별한 카드남발의 다수 국민들도 잘못이 있겠으나 이미 그걸 예상하고 정책을 펼치신 정부 나으리님들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는 하지만 혼란의 시기라는 이유로 나라가 나서서 국민들 빚을 만드는데 일조한다면 그것은 어찌 판단해야 할까? 국민들이 무지해서 그런 거지! 라고 넘어가야 할까? 정말 다른 대안은 없었던 걸까?
<화차>는 카드 한 장에서 시작해 카드돌려막기로 버티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고 개인파산에 이르러 죽으려다가 잔인하게 마음먹고 아주 딴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저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만 살고 싶은 여자, 그러나 자신의 신용과 정체를 버리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여자. 마치 신용불량자 이 시대의 참담한 자화상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 달 24일 안심전환대출로 내놓은 20조원이 나흘 만에 동이 났다. 정부도 놀라며 추가로 20조원을 더 풀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의 채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정책은 고무적인 일이다. 제2금융권까지 확대되기를 바라는 국민들도 많은 듯하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한 단체가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 (OWS·Occupy Wall Street)’이름의 이 단체는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빚탕감캠페인’으로 보면 된다. 부실채권을 시민들의 성금 등으로 사들여 없애는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남시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캠페인을 보면서 이 사회가 빚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될 때가 아닌지 조심스레 던져본다.
만일 사회가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면 부유한 소수의 사람도 구할 수 없다.
-존 F. 케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