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지역의 집단기억을 보관하는 두뇌입니다."

[문화지대 사람들] 취임 100일 맞는 인천시립박물관 조우성 관장을 만나다

2015-07-07     김영숙 객원기자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태어났다. 해방된 지 채 1년이 안 된 시기였다. 초대관장은 석남 이경성 선생. 그후 수많은 관장이 박물관을 거쳐갔고, 지난 4월에 제39대 박물관장으로 조우성(67) 관장이 취임했다. 교사, 기자를 지낸 조 관장은 향토사학자이면서 시인이다. 취임한 지 100일이 돼가는 인천시립박물관장 조 관장을 만나 박물관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들어봤다.
 

 
취임하신 지 100일이 돼갑니다. 박물관 밖에서 박물관을 보셨을 때와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박물관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그 지역의 집단기억을 소중히 보관하는 두뇌입니다. 도시를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로 본다면, 박물관은 아주 중요한 두뇌에 해당하는 기능 역할을 하죠. 예를 들어 전쟁이 나면, 맨 먼저 적군들은 상대방의 박물관을 약탈하거나 강탈해서 유물을 가져갑니다. 그 지역의 역사적 정통성이나 역사의 진실이 바로 그 박물관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훼손하고 희석화해서 자기 자신들의 정당성을 내세우려고 하죠.”

“박물관은 평소에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존재하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를 통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기구입니다. 그런데도 박물관이 오늘날 우리 지역사회에서 얼마만큼 위상을 지니고 시민들께서 접하고, 아시는가에 대해선 미진한 부분이 좀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의 노력이 부족하고 활동이 미약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박물관에 와서 보니까 모든 직원이 상당히 많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본관과 한국이민사박물관, 검단선사박물관, 송암미술관, 컴팩스마트시티 이렇게 분관이 네 개입니다. 각각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인천시립박물관 본관은 인천의 통시대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인천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아마도 잘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인천 인구의 80%가량이 이주해온 이주민입니다. 2000여년 전에 비류가 인천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이주해온다는 것은 어떤 꿈을 갖고 자기 미래를 성취하려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오는 것입니다. 용기 있고 개척적인 정신으로 고향을 떠나죠. 역사상 비류가 인천이주민의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천은 망국적인 지역색을 일찍이 졸업하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이 포용성을 지녔습니다. 그것이 인천의 정체성입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개척성, 다양성, 역동성인데 그것을 바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 이민사박물관입니다. 미주이민을 대규모로 떠났던 곳도 인천이고, 지금도 이민을 떠날 때 인천공항에서 떠나죠. 인천은 뭔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민사, 이주사의 산 고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단선사박물관은 인천에서 사람이 살았던 때는 구석기 이전 선사시대부터 살았습니다. 특히 서구 쪽에서 구석기 신석기 시대 유물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그것은 인천에서 오랜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또 우리는 후손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송암미술관은 미술전문박물관으로서의 특색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물이 많습니다. 신도시 쪽에서는 컴팩스마트시티가 있는데, 우선 이름을 고치려고 합니다. 박물관 성격에도 안 맞습니다. 향후 인천의 도시발전사와 개항이후 생활문화사를 담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제2도시로 부상하고 있고, 특히 신도시의 모습이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최첨단 아이티공법과 생태공학이 적용된 저런 규모의 신도시는 전 세계에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물론 신도시의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저기에 국제기구가 열댓 개씩 오고 국제행사를 하고 있는 것은 결국 저 신도시가 갖고 있는 국제경쟁력이 있습니다. 개항할 때부터 도시발전사와 생활사를 담아내는 박물관으로서의 새로운 박물관을 꾸밀 것입니다. 우리 박물관은 본관 하나와 네 개의 분관으로서 이루어져 있고, 분관장님들 이하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우리나라 공립 최초로 세워진 박물관입니다. 인천시립박물관만의 특성이라면 어떤 것이 있고, 그 부분을 살려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인천시립박물관을 만드신 분은 석남 이경성 선생님입니다. 인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당시 개성박물관장이었던 우현 고유섭 선생님과 편지교신을 했습니다. 우현 선생은 편지에 인천에도 우리나라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계속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거기서 감화를 받은 석남 선생이 광복 직후에 인천시립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공립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죠. 특기할 만한 것은, 그 당시 일본인이 해외에서 병기를 만드는 공장을 해외에 지었습니다. 만주에 하나 인천에 하나. 인천조병창에다 중국 전역에서 쇳덩이들을 공출해서 인천으로 끌고와 무기를 만들고, 쌓아놨다가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했습니다. 그후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나서 이경성 선생이 조병창을 가보고서 중국의 철제유물들을 수습해서 우리 박물관의 중요한 유물로 삼으셨습니다. 지금도 명대의 철종(鐵鍾)이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에 공헌이 큰 이경성 선생을 기리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입니다. 그 일이야말로 인천이 인천사람을 기리고, 그렇게 공헌한 분들 기리는 것이 인천의 역사적 전통을 되살려나가는 길입니다. 우현 고유섭 선생 동상은 새얼문화재단의 지용택 회장께서 시민사회에 기증하셔서 저희 박물관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저희가 해야 할 사업은 바로 석남 이경성 선생을 기리는 사업입니다. 구체화하면 시민사회에 말씀드리고, 방법을 모색할 것입니다. 지역문화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일을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희가 하는 사업 가운데 유물을 시민에게 기증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기증받은 데에 대한 기증서와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그 뜻은 시민들께서 지역박물관에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의도도 있고, 또 하나는 박물관이 그냥 화석화된 유물만을 보관하고 있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창고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역사의 산 증거들을 시민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박물관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도 유물기증사업은 중요합니다. 또 구상하는 사업은 인천시립박물관 후원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어서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박물관, 함께 뭔가 키워나가는 박물관으로 삼을 것입니다. 비싼 골동품만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투영된 박물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여러 사업을 통해 우리 박물관이 좀 더 지역사회에서 문화의 알갱이 가운데 알갱이, 중추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물관은 시비나 국비로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유지들, 사업가들의 기부로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시민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셔야 합니다.”

본관을 비롯해 분관에도 유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관장님께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유물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국가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정선의 <노송영지도>, <평양성 지도> 8폭짜리, 명대 철종은 국내에서 유일합니다. 또 자랑할 수 있는 유물에 관심이 갑니다. 전국 어느 박물관도 없는 ‘습득유물’이 있습니다. 돈 주고 산 것은 아니고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유물을 말합니다. 러일전쟁, 제물포해전, 청일전쟁에 관련된 유물입니다. 인천은 수많은 전쟁의 질곡을 지나오면서도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남아서 대한민국의 제2도시가 됐습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공항을 운영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신도시를 건설했습니다. 항구, 아름다운 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시대상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꿋꿋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박물관을 통해 담아낸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우리가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역사적인 창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쟁사에 관련한 유물들은 계속 기증받고 구입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이면 박물관이 세워진 지 70주년이 됩니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고희(古稀)입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지만, 예전에는 칠십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그만큼 오랜 전통을 지닌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1946년 4월에 세워졌으니까 내년이 70주년입니다. 내년에는 인천시립박물관사 70년사라는 책을 낼 예정입니다. 또 우리 박물관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시민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전시회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박물관에는 직원을 비롯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 활동가들이 ‘가고 싶은 박물관’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간 내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활동가들이 즐겁고 유쾌한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의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기능은 집단기억의 보존입니다. 그것을 해석하고 연구하고 보존하고 전시하고 , 그 내용을 시민사회에 알려드리는 것이 전 세계 박물관이 갖고 있는 기능일 것입니다. 자원봉사자 여러분께서는 거기에 대해 일반시민과 박물관 사이의 징검다리와, 그 매개 역할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상당히 중요하고, 저희의 제한된 인력을 늘 도와주시는 아주 고마운 분들입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이 아주 많으십니다. 그만큼 시민사회에 알려주시는 매개자, 홍보를 해주시는 분들... 늘 편안하게 대우를 해드려야 하는데 여러 제반여건이 안 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늘 송구스럽습니다. 자원봉사라는 것은 그 지역사회의 성숙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성숙해갈수록 모든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박물관의 자원봉사는 지적인 활동입니다. 자원봉사분들을 뵐 때마다 고맙고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박물관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됩니다. 계획을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우리 박물관에서 여러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시지만 국내경쟁력과 국제경쟁력을 생각할 때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제 임기 동안 본관과 각 분관이 국내 경쟁력 내지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섬세한 로드맵을 짜고, 그것이 페이퍼북이 끝난 다음에 그것을 통해서 대 정부, 대 시민사회와 함께 어떠한 박물관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겠습니다. 특히 송암미술관은 미술전문미술관으로 특화시키고,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지금은 미주 이민만이 주인데, 거기에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의 광부 간호사, 북유럽 입양아들, 재일교포까지 외국에 나가 있는 모든 이주사를 포함할 것입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검단선사박물관은 향후 인천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의 유적은 전부 거기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또 산재돼 있는 유물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컴팩스마트시티는 일단 명칭을 바꿔야 하고, 인천이 우리나라 도시계획에서 선구적인 도시인데 도시계획발달사와 개항기 때의 근대문화를 인천이 이끌어서 오늘날 한국의 현대문화가 됐는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 것입니다. 본관은 본관대로 통시대적인 역사, 비류부터 오늘날까지 거기에 전쟁사를 통해 꿋꿋하게 살아남은 선조와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삶을 조명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인천의 정체성을 찾아나갈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우리 박물관 직원들이 다함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