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도시마을의 역사와 삶이여.
[문화칼럼] 황은수 / 인천남구청 문화예술과 전문위원
2016-01-15 황은수
“응답하라 1988” 서울 도심 주변부의 골목길, 평범한 군상들의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가족, 이웃, 우정, 사랑’을 그려내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훈훈함을 자아낸다.
모 케이블TV의 인기드라마로 당시의 문화코드와 대중음악을 적절히 안배하여 시청자들에게 복고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속칭 까마득한 ‘쌍팔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이번 세 번째 이야기는 전 시즌(1997, 1994)들과 느낌이 다르다. 바로 잊고 있던 ‘그 시절’을 새삼스럽게 보게 만든 탓이다.
독자 분들이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기억력은 시간 순만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시점에서 가까운 2000년 이후의 기억보다 1980~90년대에 대한 기억이 아련한 듯 또렷하다.
1988년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남구 학익동 공장지대 한 가운데 있었던 마을에서 어느 다가구 주택의 세입자로 살고 있었다. 개인택시 기사를 하는 주인집 할아버지, 한동안 중동에 다녀왔다는 옆집 아저씨와 시장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 아줌마,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아랫집 아저씨, 고물을 모으던 윗집 아저씨, 그리고 인근 공장에 다니시던 부모님 등 다양한 군상들이 줄줄이 이어지거나 별채가 딸린 다가구 주택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분들 가운데 인천 토박이는 없었다. 시간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제활동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분들이었다.
이제 어렸을 적 내가 뛰어놀던 집 앞마당과 동네 골목길, 곳곳에 산재했던 공장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곳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렇게 끝나버린 걸까?
지금이라도 그분들의 삶과 지역의 변화를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지역의 역사로 끌어안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인천 남구는 지난해 7월 그들이 살던 시대와 공간, 도시민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도시마을생활사'(남구 역사문화총서) ‘숭의동·도화동’ 편을 발간하였다.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편찬체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도시민의 삶을 역사화 시킨 최초 사례로 현재 시점에서 남구 지역을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반응이다.[이장열, 서평, '시각' 81호, 2015] 또, 기존에 ‘전통마을’에 국한되어 마을사(마을지) 편찬이 이뤄졌다면 본서는 ‘도시마을’과 ‘(도시민의)생활사’에 미시적으로 주목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림1. 도시마을생활사(숭의동·도화동 편, 2015)
한편,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50년/100년 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급속한 사회변화를 겪은 한국 대도시들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남구 지역은 근대화 및 산업화를 겪으며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이주민들에 의해 새로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다시 이러한 마을들이 모여 도시의 외연은 끊임없이 팽창하였다. 그러다 어느 한계치에 도달한 듯, 적절히 안배되어 도시를 구성하던 ‘거주 공간, 생산 공간, 상업 공간’이 돌연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결국, 주민들도 그러한 변화에 의해 하나 둘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일부만이 남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다소 추상적일지 몰라 학익동 일원을 예로 들어본다. 일제는 조선병참기지화를 추진하며 인천 지역 도처에 대규모 산업시설을 조성하였다. 특히, 학익동 지역에는 해안 매립과 함께 그 부지에 ‘히타치제작소, 제국제마주식회사, 조선중앙전기주식회사’ 등의 공장들이 연이어 들어섰다. 이곳은 인천항 및 수인선 등의 사회간접자본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공업지대 조성에 적합했다. 여기에 맞물려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대규모 주택단지(사택)도 조성되며 새로운 형태의 ‘도시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2. 1947년 학익동 일원 항공 사진(인천광역시 제공)
한국전쟁을 겪으며 학익동 일원은 잠시 피폐해졌으나, 수습 이후 기존의 부지에 다시 산업시설이 재건되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시 세월은 흘러 ‘유공저유소, 대우전자, 동일레나운, 한국파이프…’ 그 마저도 옛 명성을 뒤로 한 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거나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학익동 지역 현장조사에서 만난 한 분은 “아파트만 많이 지으면 뭐해. 남자들 일할 수 있는 공장들도 있어야 옛날처럼 벌어먹고 살지…”라고 토로하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림3. 2012년 학익동 일원 야경(디지털인천남구문화대전)
이러한 시점에서 도시마을의 형성과정과 역사적 변천, 도시민의 삶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인식 등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원도심 남구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남구는 지난해 ‘숭의동·도화동’ 편 발간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매년 하나의 권역씩 ―용현동·학익동(2016), 주안동(2017), 관교동·문학동(2018)― 시리즈 총서를 연차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아무쪼록 '도시마을생활사'가 훈훈한 ‘도시마을’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