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미의 마음
[문화칼럼] 양진채 / 소설가
<오월, 어미의 마음>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젠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 원짜리 칠백 장
- 박형준 시인의 시 <칠백만원>
며칠 전 이 시가 작년 한 해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혔다는 기사를 접했다. 오십이 다된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아들에게 줄 칠백만원, 그것도 이불에 꼭꼭 꿰매놓고 그 아들에게만 고백하듯 털어놓았던 칠백만원이 있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수명 다한 형광등 불빛처럼 깜빡거리던 밤과 같던 어머니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칠백만원을 찾지 못하듯, 그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울 수밖에 없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시란 이렇구나. 이론적으로 상징이니 비유니 어떤 것을 따지기도 전에 마음을 울리는 시. 그런 시는 누구라도 좋아하는구나. 시인과 비슷한 경험이 없어도 아마도 있을 것 같은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은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시인의 마음을 알기에 가능할 것이다. 문득 달력을 본다. 이제 곧 오월이구나. 가정의 달로 명명지어진 오월이구나.
오월이 되기도 전에 어버이날 선물로 얼마를 지출할 예상이냐는 설문조사 결과가 같은 날 기사에 올라왔다. 아마도 며칠 사이, 어버이에게 어떤 선물을 할 예정이냐는 기사도 뜰 것이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봐 속곳에 꿰매 등록금을 가지고 시골에서 올라오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식은 얼마나 될까. 여전히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을 부르게 되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부모님이 건강하길 바라지만 백세시대를 내다보며 부양의 문제가 걸리면 사뭇 달라진다. 누구도 속곳에 돈을 넣고 꿰매려하지 않는다. 당장 어버이날 얼마를 지출해야 하는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서 속곳을 꿰매려하지 않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일까.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빚을 떠안게 되고,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 인턴을 전전해야 하는 삶, 치솟는 물가, 집세 등은 언제 좀 더 후미진 외각으로 떠밀리게 될지 모르는 삶을 조장한다. 안착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늘 불안하다. 가정을 이루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어느새 나 역시 부모가 되어 있어, 내 부모에게가 아니라 내 자식에게 우선적으로 지출하게 된다.
이제는 자식들이 먼 미래에 함께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노후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식들 키우기 급급하다가 60세 이후가 되면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다시, 연명처럼 살아가야 할 백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시인의 어머니와 마음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도 갖고 싶으나 갖기 어려운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 밤 울고 싶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