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쇠퇴하면 공멸할 수 있다 - 신포동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을 보며
[정치칼럼] 윤현위 / 자유기고가·지리학박사
2016-05-18 윤현위
얼마전 <인천in>의 배영수 기자가 쓴 신포동 젠트피케이션에 관한 기사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야기를 더하고자한다. 먼저 한 가지 일화를 말씀 드리고자 한다. 필자의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신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연수고등학교 뒤편에서 식당을 하셨다. 상업지역과 주택가의 어중간한 위치에 있던 식당은 얼핏보면 입지가 좋지 않았지만 장사가 꽤 잘 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홀에서 먹는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앞에 사무실이 많이 있었고 특히나 중고차매매단지가 송도로 이전하기 전이어서 점심시간에는 동생과 내가 도운 적도 있었다. 장사가 잘 되던 도중, 우리는 가게를 비워야만했다.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서 다시 계약을 하자고 했지만 주인은 자신이 직접 가게를 하겠다며 재계약을 거부했다. 우리집은 당시에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가게를 빼야했다. 가게를 이전할 계획이 없었기에 다른 점포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집기들을 들고 나와야했다. IMF의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게가 있었던 점포는 대대적으로 내부공사를 했고, 밥집과 술집을 겸한 2층짜리 퓨전음식점으로 변신했다. 주인이 직접 운영했다는 그 가게는 1년이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이유는 중고차매매단지가 송도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신포동에 수인선이 지나면서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린다는 기사를 보고 옛날 생각이 떠오른건 왜 그럴까? 예가 아주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결국 매커니즘은 같다고 생각한다. 신포동에서 지하철이 지나는 것을 핑계로 임대료를 올리는 일은 장사가 잘되니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하는 것과 모양새는 다르지만 부동산을 매개로 자신의 소득을 높이고자하는 욕망은 결국 같다.
우리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는 나라이니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있는가? 그리고 이를 강력한 법으로 만들어서 막는 것도 사실 온당한 처사는 아니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결국 우리 모두 다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순서가 조금 다를 뿐이다. 수인선이 완전 개통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인천지하철을 보면 알겠지만 철도개통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철도가 지난다고 임대료를 바로 올리는 것은 당장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지역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상인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점포나 건물에서 영업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인천을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반이 아직도 다른 사람 소유의 집에 세를 들어서 살고 있다. 임차가구이다. 영업용 점포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은 임대료를 내면서 살고 있다. 지역의 상인들이 잘되야 결국 그 지역이 잘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지역이 살려면, 지역경제가 살려면 어떻해야할까?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서울에서 핫하다는 지역들을 보면 모두 그 지역만의 독특한 경관과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전엔 홍대가 그랬고 지금은 청와대 왼편의 서촌이 그러하다. 사람들이 그 동네가 특별하다고 느낄 수 요소들 중에 가장 큰 것은 그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상인들이다. 프렌차이즈가 아닌 그 동네에만 가야 먹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입소문이 나야 사람들이 모이고 지역이 활성화된다. 핫플레이스라도 불리는 지역들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발견되는 것이다.
신포동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포동은 90년대 초반까지 누가 뭐라고해도 당시 북구였던 부평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할지라도 인천 최고의 번화가였고 중심지였다. 신포동을 위시한 동인천 일대는 지난 20년간 고요했다. 다른 지역들이 개발되는 동안에 이 동네는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축현초등학교와 인천여고가 빠져나가고 더 이상 사람들은 책을 사러 대한서림에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포동과 동인천은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신포시장은 여러 해 동안 계속 노력해왔고 일본식 건물을 복원한 팟알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밤에 지나가기 음산했던 중부경찰서 건너편의 창고건물들은 이제 과거 쌀창고에서 문화를 담고 양산해내는 장소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이 동네에 건물주들이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홍대와 강남의 가로수길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홍대와 가로수길은 몇 해전만 해도 사람들이 평일/주말 할 것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언론의 조명을 받으니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자본력으로 승부하면 결국 프렌차이즈가 입점하게 된다.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들어서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올라간 임대료 탓에 자본경쟁력이 있는 프렌차이즈들이 동네에 많이 들어오면 결국 동네는 획일화된다. 지금 막 다시 활력을 보이는 지역의 성장세를 꺽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획일화 때문에 홍대는 연남동과 합정역일대에 지역상권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됐다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신포동 일대에는 기존에 ‘버텀라인’과 ‘탄트라’같이 오래동안 동네를 지켜온 터주대감들과 새롭게 시작하려는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해줘야 동네가 살 수 있다. 그래야 수인선을 타고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지하철이 지나간다고 모두 역세권이 되는 것은 아닐게다. 신포동일대의 건축물대장을 보면 문화재가 아닌데도 놀랄만큼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낡았지만 손보면 다른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자산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면 이런 건물들을 소유한 외지인들은 이익만을 앞세워 지역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재건축을 하고 다른 투자처로 가면 끝인가? 그럼 지역은 다시 또 망가지고 침체한다. 결국 모두가 다친다. 무너지는 건 쉬워도 복원하고 재생하긴 어렵다. 지역사회에 죄를 지을 셈인가? 우리 모두는 결국 동네에 살고 마을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