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고 힘들 때

[금요시단] 재미없고 힘들때 / 김응교

2016-06-17     최일화


재미없고 힘들 때

                             김응교


철가방 들고 짜장면 배달 갔던 건물에
시인들 드나들던 현대시학 사무실
층계에 쌓여진 문학잡지와
쪼그려 앉아 대화 나눴던 소년
눈물은 왜 푸른가
공장 망치로 얻어맞은
시퍼렇게 멍든 눈두덩이를 반사시킨
눈물은 푸르지
중화요리를 졸업한 외톨이
볼트와 너트로 조인 소리들
부서진 문장들 쇠붙이로 용접하여
신동엽 창작상 오장환 문학상을 탔지만
노동자 시인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리얼리스트
힘들 때 재미없을 때
용접장이 최종천 형이 보내온 메일을 읽는다.
시대를 논하기 전에 인간을 논하며
영성을 말하기 전에 노동을 선언하는
메일을 펼치자마자 나는
불꽃 튀는 단어들을 용접하고
오토바이에 철가방 싣고
관습과 시대를 횡단하는 폭주족을 흉내낸다.
                   (유심 2015/ 12월호)


김응교 eungsil@daum.net / 1990년 등단. 시집 ≪씨앗/통조림≫ 평론집 ≪곁으로-문학의 공간≫ ≪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트라≫등이 있음.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리더십교양학부 교수.





<감상노트>

노동자이지만 노동자 시인이길 거부하는 철학의 시인 최종천

이 시는 김응교 시인이 문단의 한 선배 시인을 노래한 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 시인의 노동과 문학과 삶을 바라보며 쓴 헌시라고 할 수 있다. 최종천 시인은 부천에 오래 거주하고 있으며 인천문단과도 아주 친숙한 시인이다. 인천의 현장에서 노동을 이어가고 인천의 시낭송이나 문학모임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탁월한 시인이다. 1986년 <세계의 문학>과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고양이의 마술>로 오장환 문학상을 수상한 중진시인이다. 2011년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분기별로 선정한 241종 우수문학도서 가운데 문학의 세 분야 가운데 <고양이의 마술>이 시집 분야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럼 김응교 시인은 최종천 시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1연에선 시골에서 갓 올라와 짜장면을 배달하며 현대시학 사무실 층계에서 문학잡지를 읽고 있는 최종천 시인의 모습이 나온다. 2연에선 ≪눈물은 푸르다≫라는 최종천 시집을 거론하며 시인이 겪은 고난의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3연에선 시인의 문학적 성과와 노동자 시인이길 거부하는 시인의 시적 경향을 잠깐 소개한다. 4연에서는 3연의 의미를 심화시키며 인간과 노동을 신성시 하는 최종천 시인의 시적 경향을 언급한다. 마지막 연에 이르러 용접공으로써, 중국집 배달원으로써 관습과 시대를 맹렬하게 뚫고 달리는 한 리얼리스트 시인의 면모를 표현하고 있다.

한 노동자 시인에 대한 김응교 시인의 이 헌사는 공연히 나온 게 아니다. 최종천 시인의 시와 산문을 읽으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인간과 종교,  민족에 심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한 신문사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노동자 시인’이라고 하는데 시 내용을 보면 그렇게 한정할 수 없다. 사소한 문제가 아닌, 근원적인 인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일거리가 있는 날은 노동을 하고 일이 없을 땐 시를 쓰고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요새 많은 문학 강좌가 엉터리라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시 공부를 하기보다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며 나름의 문학의 정도를 제시하기도 한다.

성경의 창세기와 진화론, 신학, 생물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며 창세기에 관한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김응교 시인의 시의 제목 ‘재미없고 힘들 때’가 재미있다. 재미없고 힘들 때 최종천의 시를 읽고 메일을 읽으며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는 뜻인 것 같다.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 시인이길 거부하고 인간과 종교, 역사와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우리 고장 인천의 시인. 지역사회는 이런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하여 지역문학 발전의 토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