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모르시는거 절대로 부끄러워 마세요

(86) 연평도 꽃게철에 찾아간 할머니들

2016-10-14     김인자




연평초등학교 강연가는 길.
하루에 딱 한 번만 배가 오고 가는 곳, 강연을 가고 싶다면 최소한 1박 2일의 시간을 확보해야 갈 수 있는 곳, 연평도.
배멀미가 무서웠지만
바다를 좋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내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섬,
연평도.
 
지난 번에 갔었던 할아버지, 할머니만 사시는 섬 문갑도와 연평도는 달랐다.
연평도는 초등학생이 89명이나 있다고 했다. 너무도 반가웠다.
다만 초중고가 한 건물에 있고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나눠서 각각 한 분씩 계신 특별한 학교, 연평초중고.
12시가 넘어 도착하는 배편때문에 도착 당일은 초등학교 강연은 할 수가 없어 다음날 아침 8시50분부터 저자강연을 하기로 했다.
1·2학년 한 시간
3·4학년 한 시간
5·6학년 한 시간
이렇게
 
대신 도착한 당일엔 경로당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책을 읽어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이 한창 꽃게철이라 일손이 바쁜 연평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모두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가 읽어드리는 그림책이야기를 들으러 점심시간에 경로당에 모이신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연안부두에서 2시간 배를 타고 연평도에 도착했다.
 
연평도행배는 지난 번 갔었던 문갑도행 배와는 사뭇 달랐다. 속도도 빠르고 바람도 쎄고 멀미도 심하고 기진맥진해서 배에서 내리니 해병대 정훈장교님이 마중을 나와계셨다. 군인아저씨가 운전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군인아저씨들이 운영하는 콘도형숙소 하나회관에 짐만 내려놓고 서둘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는 경로당으로 이동했다.
 
경로당에는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들이 아주 많이 계셨다. 더 오실 분들이 있다시며 배고플테니 밥부터 먹고 오라고 하셨다. 연평도에 왔으니 울 할무니들 쌈지돈을 벌게 해주는 꽃게로 끓인 탕을 먹었다. 바글바글 맛있게 끓는 꽃게속살을 야무지게 빼먹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고 싶었으나 울할무니들이 두 시까지는 다시 꽃게 손질을 하러가셔야한다고해서 국물만 조금 떠먹고 경로당으로 서둘러 갔다.
 
경로당에 가보니 바깥마당에도 안에도 작업복차림의 바쁘신 할머니들이 많이 기다리고 계셨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적으신 할머니 키가 큰 할머니, 키가 작은 할머니들이 알록달록 꽃모자를 쓰시고 금방이라도 일할 태세로 옹기종기 서서 낯선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셨다.

"뭣을 해준다고?"
"책을 읽어드리려구요."
"얼라도 아닌데?뭔 책을 읽어준댜?"
"오늘은 얼라들한테는 책 안읽어줘여 할무니~"
"그럼 누구한테 읽는댜?"
"오늘은 우리 할무니들한테만 읽어드려요. 것도 이뿌신 할무니들한테만여~"
 
하며 우리 이뿌신 할머니들 어서 들어가셔요 하고 청하니 모두들 부끄러우신 듯 쭈삣쭈삣 선듯 안으로 들어들 가시려고 안 하셨다. 그중에 가장 활달해 보이시고 할머니신 듯 아닌 듯한 젊으신 분이 큰소리로
"이쁜 언니라고 부르면 들어가고~~~~오"하신다.
"네~~~언니~우리 이쁜 언니들 어서 들어가세요~" 하며 팔짱을 끼니 울 할무니들 "우리가 이쁘댜~아"하고 웃으시며 그제서야 경로당 안으로 들어가신다. 아이고 너무도 순수하고 귀여우신 연평도 할무니들.
 
경로당밖에는 우리 할머니들의 전용차(보조의자차)가 반듯반듯 잘 주차되어 있고 현관에는 우리 할머니들의 바쁘고 수고로운 신발들이 나란히 나란히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연평도할머니들이 급하게 벗어놓은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계셨다.
잡아온 꽃게 손질을 하기위해 늦어도 두 시까지는 가야한다는 바쁘신 연평도할무니들과 함께 읽은 그림책은 내 첫번째 그림책인 <책읽어주는 할머니>
 
"우리 이쁜 할무니들 안녕하세요~~그런데 왜 할아부지들은 한 분도 안 오셨어요?"
"부끄라바서 올 수가 있나?"
그런데 부끄러우신 우리 연평도 할아버지들 대표로 딱 한 분 홍일점 할아버지가 내가 책을 읽어드리는 동안 오셨다.
내가 궁금해서 오셨단다. 많은 할머니들 틈에서 부끄라바 고개는 못 드셨지만 할아버지는 끝까지 내가 읽어드리는 그림책이야기를 다 들으셨다. 고마우신 부끄럼쟁이 할아버지.
 
"이책의 주인공 심계옥할무니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세요. <책읽어주는 할머니>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제 첫번째 그림 책인데요. 심계옥할무니는 글자도 모르고 초등핵교도 안 나오셨어요"
"나도 그런데~ 나도 국민핵교도 안나왔어."하시며
한 할무니께서 손을 귀옆으로 살짝 드신다.
"아 그르시구나. 우리할머니도 글자를 모르시는구나. 할머니 글자를 모르셔도 괜찮아여. 그대신 울 할무니는 자식들 잘 키워서 다들 지몫 하면서 잘 살게 해주셨잖아여."
"그건 맞아~"
 
"그래서 으트게 됐어? 심계옥할무니는?"
"10년이 지난 지금 심계옥할무니는 글자는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랴? 대단하구만."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 말띠~"
"우와 말띠시면 여든 일곱? 우리 심계옥할무니도 올해 여든 일곱이신데. 할머니랑 똑같아여 똑같아여."
"아 그랴? 나허고 동갑이구만."
"할무니는 잘 걸으시죠?"
"그럼,잘 걷지."
"근데 우리 심계옥할무니는 잘 걷지 못하세요."
"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었거든요."
"아고 그랬어?그런데 선상님은 어트게 그렇게 심계옥할무니일을 잘 알아?"
"심계옥할무니는 제 어무니세요."
"이런 ~선상님이 음청 고생했겠구만. 다른 형제들은 읍어?"
"네, 저 혼자예요. 아부지 네 살 때 돌아가시고 엄니랑 둘이서만 살았어여."
 
"아이고, 고생이 많았겠구만.
나도 손주새끼 너히를 나 혼자 밥해 먹이고 키웠어."
"그르시구나아 할무니는 그렇게 바쁘게 사셨으니 한글 모르시는거 절대로 부끄러워 할 일 아니세요. 할무니는 진짜 대단하세여. 그런 의미로 우리 할머니들 두 팔 벌려 보세요"
"팔을 벌리라고?"
"네 두팔을 벌렸다가 자기를 꼭 안아주세요.고생했어.장해. 하시면서여"
하고 말씀 드렸더니 울 할무니들 옆에 앉은 할무니들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시는 거다.
 
"아고 징허게 고생했네. 장허네." 하시면서 서로의 어깨를 토닥토닥.
꽃게 손질을 위해 경로당을 떠나시며 울 할머니들이 내게 해주신 말씀
"아고, 울 선상님은 마스크가 아주 좋네.
성격도 좋고, 붙임성도 좋고,거기다가 이뿌고.
그런데 결혼은 했나?
우리 손주가 육지서 공무원인데
한 번 만나볼텨?~~"
온 세상할머니들의 손주며느리인 나는 오래오래 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