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쌉싸름한 '매기스 리턴 플랜'
[한인경의 시네 공간] ⑦매기스 플랜, Maggie's Plan / 레베카 밀러 감독
2017-02-02 한인경
‘한인경 시인의 시네 공간’은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인천in>에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눕니다.
"생의 어느 한 부분. 혹시 얽혀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자.
빛은 아주 작은 틈에도 절대 인색하지 않다."
개 봉 : 2017.01.25.(98분/미국)
등 급 : 15세 관람가
감 독 : 레베카 밀러
출 연 : 에단 호크,그레타 거윅, 줄리안 무어, 트레비스 핌멜 외
뉴욕.
에단 호크,그레타 거윅, 줄리안 무어 3명의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곤 사랑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생활한다. 연애의 낭만과 결혼이라는 현실, 상대적 대립 관계를 넘어선 관계 속의 그들이 보여주는 명랑 활달한 로맨스 영화다. 할리우드 여성 감독 레베카 밀러의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통제력과 탄탄한 시나리오로 개성 강한 대배우들이 튀지 않으면서 안정된 연기력이 돋보일 수 있던 영화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선물로 로맨스 영화의 진수로 『매기스 플랜, Maggie's Plan』을 추천한다. 가벼운 영화,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무겁거나 슬프거나 웃음이 헤픈 영화도 물론 아니다. 적당한 사유와 웃음이 섞인 그래서 자막이 올라갈 즈음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끄덕이게 된다. 뉴욕 지성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 때로는 마치 어른아이처럼 부족한 듯한 모습은 다소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 우리네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육아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과 교육 문제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마천루 같은 빌딩 숲의 뉴욕이 아닌 마치 수채화 같은 뛰어난 영상미도 감상 포인트다. 특히 겨울의 뉴욕 캠퍼스 모습, 그곳을 거니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감성적인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장면들이었다.
아이만을 원하는 매기(그레타 거윅)에게 나타난 의외의 인물인 같은 대학교의 교수인 존을 사랑하게 된다. 나름 치밀하게 계획했던 정자은행으로부터의 도움은 뒷전이 되었고 매기는 존과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과정인 결혼 그리고 출산, 육아, 가사를 거치면서 결혼 생활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매기는 제2의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벌어지는 상황들로 영화의 후반부가 진행된다. 역시 인생 설계도 사람이 철들어가는 것도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매기도 존도 모두 잘 알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수훈갑은 단연 그레타 거윅으로 뽑고 싶다.
또 다른 한 편의 영화 『프란시스 하, Frances, Ha』(2014 개봉)를 추천한다. 그레타 거윅의 그레타 거윅에 의한 그레타 거윅을 위한 영화다. 『프란시스 하 』에서의 주인공인 프란시스 시절보다는 한층 성숙한 매기지만 역시 그레타 거윅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 전편을 지배한다. 고전이 된 흑백영화를 이즈음에 보게 되는 신선함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그레타 거윅의 175cm라는 큰 키에 어수룩해 보이는 걸음걸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매기스 플랜』과 『프란시스 하』 두 영화는 자매 같은 영화다. 비록 에단 호크의 비포 시리즈처럼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지만 그레타 거윅의 성장기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감성파 뉴요커로 변신하여 지성미와 사랑스러운 순수함을 겸비한 매기의 前 모습은 『프란시스 하』에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결혼은 하기 싫고 아이는 갖고 싶은 매기, 불현듯 나타난 존에게 올인하며 결혼을 감행했던 매기다. 그녀는 본인이 낳은 딸과 전 부인이 낳은 남매까지 맡아 키둔다. 가사와 직장을 양립하게 되면서 부닥치는 벅찬 현실적 부담, 가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 남편 존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존을 원래 부인(줄리안 무어)에게 다시 보낸다는 계획. 참으로 기발하고 엉뚱하다. 이 역할을 어느 배우가 거부감 없이 해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역할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니. 그레타 거윅은 무거운 현실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한번 리턴 계획을 세우게 되고 달성하고야 만다.
양쪽을 기웃거리는 남자 에단 호크.
로맨스 영화의 레전드, 비포 시리즈의 에단 호크가 2017년 새해 『매기스 플랜, Maggie's Plan』으로 찾아왔다. 이미 3권의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이며 다양성 영화로 한국에서도 소개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감독이기도 하다. 6.25 참전용사였던 세이모어, 그래서 작년에 방한하기도 했던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권위적이지 않았으며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가르치는 세이모어의 모습은 지금도 아련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인생 철학을 세이모어의 잔잔하지만 설득력있는 어조로 특히 에단 호크와의 감성대화로 풀어내며 한국에서도 좋은 평을 받은 영화다.
잘생긴 외모와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으로서의 에단 호크는 잠시 잊고 영화관에 들어가기를 권한다. 두 아이의 아빠이고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존(에단 호크)은 우연히 캠퍼스 내에서 알게 된 매기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존은 급기야 이혼하고 매기와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매기에게 던지는 사랑의 화살이다. 그러나 결혼 후의 존의 모습은 여느 아빠들과 다르지 않다. 소설 한 편을 완성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전 부인에게로, 막 시작한 사랑 매기에게로 우왕좌왕 기웃거리는 존의 모습은 비포 시리즈의 매력남의 모습은 잠시 접어 둬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존의 모습은 밉지 않고 철없는 어른아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한국과 관련을 찾아 보자면 『매그니피센트 7』에서 이병헌과 함께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병헌과는 영화 속의 역할로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또 한 명의 여 주인공 줄리안 무어다.
세계 5대 주요 영화제의 여우 주연상을 석권한 줄리안 무어. 남편 역으로 나오는 에단 호크와는 무려 10년 연상이다. 1960년생의 줄리안 무어의 군더더기 없는 연기는 그레타 거윅의 털털한 이미지와 멋진 대비를 이룬다. 줄리안 무어는 매기스 플렌으로 2016 버라이어티 선정 상반기 최고의 연기자로 선정되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데에 찬성하는 의견이 10년간 남녀 모두에게서 2배로 높아졌다. 가정 내 남녀 역할에 대한 평등 인식은 크게 높아졌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2017.01.31. 경향신문)
어쩌면 이미 진부한 주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도 출산, 육아, 가사는 아직도 얽혀있는 실타래 같은 현실이고 높아만 보이는 벽으로 남아 있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로 육아와 가사는 더는 여성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효과적인 분담으로 부부의 공동생활과 사유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뉴욕 로맨스라 불리는 『매기스 플랜』에서도 역시 비슷한 갈등이 주어졌다. 영화의 줄거리만 듣자면 혹시 가정 파탄의 막장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느 역할의 등장인물도 깊은 상심을 하거나 울고 짜고 하지 않는다. 뻔한 결말이 아닌 감독의 개성이 확실히 묻어나는 영화다.
2017년 새해, 뉴요커들의 로맨스를 감상했다.
기분 좋은 사랑스러운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은 영화다.
그레타 거윅이라는 신비롭기까지 한 그녀의 매력에 빠지고픈 분들께 권하고 싶은 영화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을 듯한 어두운 처지의 자신들을 순식간에 꺼내 주기도 한다.
생의 어느 한 부분. 혹시 얽혀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자.
빛은 아주 작은 틈에도 절대 인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