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전문제 ‘전문기관 여론조사’로 해결하나

도림고 이전 놓고 학부모, 주민 등 공방... 인천서 최초 시도

2017-05-24     배영수 기자

인천 도림고등학교. 이전을 놓고 여론 공방이 치열하다. (사진 출처 = 남동구청)

 
인천의 한 고등학교 이전 여부를 주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그간 학교 이전 문제는 시교육청의 교육부 방침에 따라 왔지만, 시교육청이 직접 여론조사를 도입해 결정하는 사례는 전국에도 사례가 없던 것이어서 주목된다.
 
인천시교육청은 “오는 7월 경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남동구 소재 도림고등학교 이전에 대해 주민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24일 밝혔다. 인천시가 운영하는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이 2019년 도림고 현 부지 코앞으로 이전하면서 면학 분위기 조성에 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로 이전 가능성이 시사되자 주민들 간 공방이 이어져 시교육청이 나름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학교 이전 및 재배치 시 학부모 의견을 조사하는 절차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통상적으로 해오기는 했다. 하지만 조사 범위를 학교 주변 주민까지 확대하고 여론조사 자체를 아예 전문기관에 맡기는 건 인천은 물론 타 시도 어떤 지역에도 선례가 없었다는 게 시교육청 측 설명이다.
 
도림고의 이전 문제는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의 인근 이전으로 이미 해당 지역서는 논란이 되어 왔다. 농산물시장과 학교가 도로 하나를 두고 불과 80m 가량밖에 거리가 안돼 시교육청은 도림고를 현 위치에서 3.5㎞ 거리에 있는 서창2지구 내 학교 부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차량 증가로 인한 병목현상이나 소음, 악취, 해충, 안전사고 등 교육환경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시교육청의 1차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시장 이전 계획은 인천시가 세운 것이니만큼, ‘원인 제공자’를 시로 보고 시가 학교 부지 매입과 신축 비용 307억 원을 부담키로 했던 상황이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 일부의 입장으로 보면 지역에 학교가 떠나가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때문에 최근 남촌·도림동 주민자치위원회의 경우 ‘도림고 이전 반대 진정서’를 주민 2천여 명의 서명부와 함께 시와 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진정서는 “남촌·도림동의 경우 초등학교만 2곳이 있고 중학교는 아예 없으며, 고등학교가 도림고 하나뿐인데 이 고등학교를 이전하면 통학 불편은 물론 심각한 원도심 공동화를 부추길 것이 우려되는 만큼, 이전을 한다 쳐도 현 위치에서 반경 1.5㎞ 내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다만 고등학교의 경우 통학거리 제한이 초·중학교보다 덜한 것도 있다. 실제 도림고에는 남촌·도림동 거주 학생이 전체의 20%를 약간 넘고 있고, 나머지는 논현동, 구월동, 서창동과 만수동 등 남동구 관내 다른 동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연수구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다.
 
주민들의 이러한 반대 여론에 대해 시교육청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인천시가 농산물시장을 2019년에 이전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시간이 많지 않은데다, 도림고 인근이 전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대안이 될 만한 학교 부지를 마련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이전이 검토되는 서창2지구의 경우 고교생 수가 늘어나고 있어 시교육청의 고등학생 배치계획에도 들어맞고, 앞서 언급대로 고등학교의 통학거리 제한이 다소 덜하다는 등의 이유도 있다.
 
공방이 심화되자 시교육청은 결국 전문기관의 여론조사를 통해 이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면 가장 민주적이며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시교육청 측 관계자는 “학교 이전이 충분한 당위성을 갖고 있다 해도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면 추진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게 교육청의 입장에 있는 만큼, 학교 이전에 대해 학부모(예비 포함)와 학생, 주민 사이에 찬반 공방이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의 여론조사를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해답을 찾자는 의도”라고 밝혔다.
 
다만 교육청의 여론조사 등 의지에도 비판의 여지는 남아 있다. 교육부의 현재까지의 정책상 학교 설립은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교육부는 적정 규모 이하의 소규모 학교를 이전하는 ‘조건부 신설’을 승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교육청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서구 봉화초교나 남구 용정초교 등 원도심 소재 일선 학교의 이전을 놓고 주민들과 시의회에서 공방이 벌어지며 골치아픈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시의 행정과도 박자가 잘 맞지 않아 여러 문제들이 이어져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