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186) 곁에 계셔만 주셔도 좋은 할머니

2017-10-31     김인자


심계옥엄니 좋아하시는 시루떡 사러 떡집 가는길. 횡단보도 앞에서 보라돌이 할머니를 만났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해 떨어지기 직전이라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 보라돌이 할머니 입으신 옷이 얇다. 할머니들 요맘때 특히 감기조심하셔야 하는데 옷을 왜 저리 얇게 입고 나오셨을까 하는 걱정에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앞에서 츤츤히 휘청휘청 걸어가시는 보라돌이 할머니를 뒤에서 부리나케 뛰다시피 걷는 내가 보라돌이 할머니를 금새 따라 잡았다. 그리고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라돌이 할머니가 놀라시지 않도록 일부러 크고 과장된 목소리로 "앞에 가는 이쁜 할머니 여기 좀 보세요~~~" 하고 부른 다음 보라돌이 할머니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아고 이게 누구야?" 하며 보라돌이 할머니가 뒤로 돌아 나를 쳐다보셨다.
"근데 누구신가? 누구시길래 이 늙으이를 이렇게 반가와 하시나 그래?" 하며 보라돌이 할머니가 물으신다.
"할머니,저예요."하자 그래도 모르겠다 표정이신 보라돌이 할머니. 아차차 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 마스크를 하고 있었던걸 잊고 있었다.
마스크를 얼른 벗어 할머니~하며 다시 보라돌이 할머니를 안아드리자 "아니 얼굴이 왜 이리 반쪽이 되었어? 몸은 또 왜 이리 거푸새가 된게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글치 않아도 노인정서 울덜이 책 읽어주는 선생님 잘 지내나? 요즘은 우리 할마씨들이 노인정에 콕 박혀 앉아있으니 얼굴도 못보네.하며 금방도 얘기허다 헤어졌는데 어디 많이 아팠어? 얼굴이 으트게 이렇게 못쓰게 되었어?"
보라돌이 할머니 연신 내 손이며 얼굴이며 등짝을 쓰다듬으시며 걱정하신다.
"아녜요 할무니 안 아파요. 여름에 배탈이 나서 배앓이를 좀 오래해서 그래요.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고 그러믄 금새 또 살 올라요. 걱정마세요, 할무니."

"뭐 먹는거나 걸판지게 많이 먹게 생겼어야 걱정을 안하지. 내 보기에 먹는 것도 션찮을거 같은데. 잘 먹어. 젊은 사람이 왜 그랴? 우리같이 늙으이들이야 오래 살아서 지금 가도 억울할게 없지만 젊은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아프지마라. 에구 아주 얼굴이 못쓰게 됐네."
"예, 할무니 걱정하시지 않게 많이 먹구 건강해질께요.
제가 이달 지나구 나면 할무니들 뵈러 맛난거 사가지고 노인정으로 찾아갈께요."
"그랴 우덜은 조금도 신경쓰지마라. 김선생님 신경쓸 때가 어디 한 두군데야? 어무닌 어떠셔?"
"이만 저만 하셔요.
에그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젊은 사람들 고생시킨다. 갈때 되믄 얼른 얼른 가야 되는데 죽지도 않아. 여기저기 죄 고장나서 아프기는 죽게 아프고 에고 왠수야 왠수
얼른 죽어야 되는데."
"아고 할무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프셔도 힘드셔도 저희는 그저 우리 옆에 계셔만 주셔도 좋아요."
"머시 그래. 귀찮지. 선생님 엄니도 가실 때 되믄 얼른 가셔야돼. 그래야 김선생님이 덜 고생헌다."
"아니예요, 저는 엄마가 계셔서 제가 힘내서 살 수 있는거예요. 할머니 자손들도 저랑 똑같은 마음이실 거예요."
"정말 그럴까?"
"그럼요, 정말이지요. 그저 오래 오래 지금처럼 저희들 곁에 계셔주셔요. 그동안 저희들 키우시느라 고생만 하셨으니 이제부터는 좋은 시절 사셔야지요. 맛있는 것도 드시고 좋은 옷도 입으시고 가고 싶은 데도 가보시고요."

"에고 말만 들어도 고맙구만. 김선생님은 마음이 참 고와. 그르지 않아도 내가 우리 김선생님 참 많이 보구싶었다.
찬바람이 부니까 으찌 지내나 걱정도 되고 여기저기 오만군데 안가는데 없이 다 댕기믄서 공부가르치는데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내가 늘 궁금했다. 오늘 이렇게 보니 좋구만.
내가 간밤에 무슨 좋은 꿈을 꿨나부다."
"하하 할무니 돼지꿈 꾸셨어요?"
"이그 돼지꿈 꾸믄 우리 김선생님 돼지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를까?
아프지 마라 아라찌?
내 항상 그게 소원이다."
"예, 할머니 조심히 가세요."
"그래 그래 먼저 가."
"예, 할무니."
보라돌이 할머니가 걸어가시며 계속 뒤를 돌아보신다. 손을 들어 어서가 어서가 하시며 자꾸 뒤를 돌아보신다.
할머니 뒤돌아보지마요.
넘어져요.
앞만 보고 걸어가요.
제가 어서 갈께요.
그러니까 이제 고만 뒤돌아 보세요. 할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