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짜리 정의
[독자칼럼] 장한섬 / 홍예門문화연구소 대표
2019-08-19 장한섬
동구립소년소녀합창단 기자회견 (2019.7.15. 동구청앞)
공정한 공무집행과 정의실현. 표현 자체는 아름답다.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이처럼 말했고,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이처럼 말했다. 반면, 소설가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정의의 총구가 어머니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 곁에 설 것이다.” 공정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동구립소년소녀합창단 해체와 지휘자 해촉이 떠올리는 표현들이다.
인천시 동구청은 합창단 정기공연 11일 전 공연취소를 합창단 단원과 부모에게 통보했다. 동구청은 범죄사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라 말한다(참고로, 동구는 아동친화도시다). 그런데 범죄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고 수사는 진행되지도 않았다. 동구청은 혐의만으로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놀랍게도 담담부서는 감사실이 아닌 문화홍보체육실이다. 합창단을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당담부서가 행정적으로 미숙한 예술가를 공금횡령으로 고소했고, 고소 사실을 언론에 배포하여 합창단 지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혐의는 간식비 4만원이다. 확실한 물증은 영수증이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까지는 좋다. 그런데 4만원짜리 정의실현을 위해서 이미 지급된 공연계약금(혐의 금액의 160배가 넘는 시민세금)을 날리는 게 사리에 맞는지, 그리고 4만원짜리 정의실현이 공무원의 주업무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동구청의 판단이 시민사회의 상식과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간극의 결과는 매우 우려스럽다. 4만원짜리 정의실현은 시민 구성원인 아이들 꿈을 짓밟아 부모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정치인과 공무원을 적대시한다. 나아가 정치와 관청도 혐오한다. 이러면 시민참여는 떨어지고, 공론화는 파괴되어 지역의 미래는 위태롭다.
합창단 단원들은 8개월 동안 뮤지컬을 준비했다. 공연 포기는 꿈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문화예술이 꽃 피울 수 있을까?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부모의 바람도 무시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한 예술가도 무시하는데, 지역의 미래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구청은 합창단 해체와 지휘자 해촉을 강행하여 4년간 함께한 합창단의 역량을 깨뜨렸다(합창단을 창단하고 키울 정도의 예술가가 나오려면 최소 20년이 걸린다. 이런 식으로 문화예술인을 홀대하면 인재유출이 심해지고, 인재를 유인하기는커녕 영입도 어려워진다. 결과는 문화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미래가 어두운 곳을 떠나기 시작한다).
미래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인천시민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우선은 창피하다. 다음으로 세금이 아깝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정의를 사랑하지만, 4만원짜리 정의로 정의가 낭비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싸구려 정의가 정의인지 의심스럽다. 정의는 영수증을 챙길 정도로 관료적이지 않다. 정의를 내세우지 말고 상식을 생각하라.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존경받는 정치인과 공무원은 바라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정치인과 공무원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