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남자

[독자칼럼] 윤희자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2019-08-23     윤희자





우리 옆집 남자는 원양어선 선원이다. 옆집을 골목 사람들은 ‘뱃집’이라고 부른다. 남편의 직업 따라 대한항공
집, 은행 집, 한진고속 집도 있다.

우리 집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뱃집 남자는 일 년에 몇 번 휴가를 얻어 집에 온다는데 나는 최근까지 한 번도 그 모습은 커녕 목소리 조차 듣지 못했다. 국민주택 단지인 이 주택 구조가 옆집의 창문과 우리 집 창문이 서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 웬만한 말소리는 거의 옆방처럼 들린다. 고만 고만한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옆집 여자가 아이들 나무라는 소리가 걸핏하면 쩌렁쩌렁 우리 집 안방까지 들린다.
 
4반 골목 여인네들에게 귀동냥한 말로는 뱃집 남자는 휴가로 집에 돌아오면 며칠 뱃멀미를 한단다. 평생 원양어선을 탄 그 남자는 뱃멀미를 극복한 대신 육지멀미를 하는가보다. 외항의 파도에 몸이 맞추어 질 때까지 그 고통은 얼마만한 무게였을까. 바람이 나뭇잎이나 풀잎을 흔들듯 쉼 없이 배를 흔드는 파도, 때로는 잔잔히 때로는 폭풍으로, 노한 파도를 피할 곳 없는 배 안에서 속절없이 견뎠을 선원들. 육지 멀미를 한다는 한마디에 여러 가지 생각이 겹친다.
 
옆집 큰아들이 장가갈 무렵 그 남자가 원양어선에서 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비로소 그 남자를 보게 되었다. 반쯤 열린 철 대문으로 언뜻 본 그 남자는 의외로 체격이 왜소해 보였다. 화단 옆 의자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강아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그는 바다는 커녕 마을 뒤 방죽에서 붕어 낚시나 할 것 같은 모습이다.
 
티비를 통해서 몇번 본 원양 어선의 선원들은 검붉은 피부, 탄탄한 어깨, 커다란 파도와 맞서는 두려움 없는 몸짓, 그물 가득 잡힌 참치 떼를 보는 그들의 눈은 영락없이 맹수가 먹이를 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강아지를 보고 있는 저 초로의 남자는 기운이란 한푼어치도 남아있지 않은 듯 지쳐 보인다. 옆집 남자의 내면에 어떤 강한 심지가 있어 보통 사람은 두려워 꿈도 못 꾸는 원양 어선을 타고 평생 바다생활을 했을까? 선원들 식사를 담당하는 힘 있는 화장(火匠)이었나, 아니면 의외로 외유내강한 사람이었나, 뭍에 내리면 기운이 소진되고 바다에 오르면 팔팔해지는 이상 체질인가.

포경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백경의 주인공 이스마엘은 이왕 배를 타려면 요리사나 심부름꾼이 아닌 당당히 고기(고래)를 낚는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 태평양 한 가운데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정월 명절이 지나고 2월 초순 쯤이면 마을 앞 햇빛 바른 농협 건물 모퉁이에 장기판이 벌어진다. 두 명의 선수가 일전을 벌이는 가운데 빙 둘러선 훈수꾼들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의외로 옆집 남자가 훈수꾼 사이에서 앞 사람 어깨 너머로 장기판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이제 육지 생활에 적응하는구나, 다행이다’ 생각했다.
 
날씨가 점점 풀려 햇빛이 따끔하게 내려 쪼이면 장기꾼들은 철새처럼 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을 뒤 만월 산 초입 작은 술집 앞에 둥지를 튼 그들은 장기판을 걷어치우고 술판과 음주잡담으로 시간을 보낸다. 어느날부터인가 그 일행 속에 옆집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는 그들과 한참 떨어진 체육공원 뒤 소나무 아래 터를 잡고 강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지나가며 슬쩍 보니 안주는 보이지 않고 소주 한 병 앞에 놓고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해 여름이 다 가도록 그 남자는 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소주병은 소품일 뿐 그곳에 앉아 두고 온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오지랖 넓은 나는 안주 한 봉지 사들고 그 남자 옆에 슬쩍 앉아 통성명도 하고 얘기 동무도 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 마음 짐작하오. 나도 시집오고 고향바다가 그리울 때 저기 만월산 꼭대기에 올라갔었소. 혹시 바다가 보일까 해서지, 하지만 보이지 않습디다. 그 마음 삭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합디다. 술 생각나면 전화 하슈, 친구도 없는 것 같던데 혼자 마시지 말고…….'

이럴 때 나는 남자가 되고 싶다. 초등학교 동창 헌휘가 부인을 먼저 보내고 쓸쓸하게 지낼 때도 ‘내가 남자라면 술친구가 되어줄 텐데…’ 했었다. 여자이니 다행이지 만약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지간히 마당발이 되어 마누라 속 썩일 인물이 되었을 게다.
 
소나무 아래 터주까리처럼 앉아 있던 옆집 남자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다. 4반 골목 여자가 지나가는 말로 옆집 남자가 먼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 집 강아지가 죽었을 때 꺼이꺼이 울던 옆집 여자가 남편을 보내고 기가 막혀 울음조차 울지 못했을까? 아들들이 과묵하여 울음을 삼켰나? 창문을 맞대고 살면서 나는 초상이 난지도 몰랐다.
 
참 씁쓸했다. 아무 소문 없이 떠난 그 남자가 왜 연관 없는 세일즈맨 윌리 로만을 떠오르게 할까. 세일즈 맨의 죽음을 연극으로 본적은 없다. 대신 희곡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먹먹해 지던 때가 있었다. 그날 그 느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