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박물관, 시민들이 찾을까?

내용물에 충실하지 않으면 예산만 낭비하는 꼴

2010-02-04     김도연

가히 '박물관 전성시대'다. 국립이나 공립 말고도 전국 곳곳에는 무슨 무슨 박물관이 수없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도 박물관을 짓고 있거나 세우려고 계획한 곳이 수두룩하다.

박물관(博物館)은 말 그대로 역사·예술·민속·산업·과학 등과 관련한 자료를 널리 모아 진열하는 곳이다. 또 그 자료에 대해 조사·연구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에서는 "문화적·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해 그것들을 연구·교육하려고 보관·전시하는 상설기관은 모두 박물관으로 간주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갖추려면 전시하는 내용물이 충실하게 확보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아 전시물을 보면서 '옛것'을 배우거나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인천시와 각 구·군에서 추진하는 박물관 건립에 관련 전문가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물·콘텐츠 등 자료 확보나 관람객 유치 방안 등 꼼꼼한 계획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제 구실을 하려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치밀하게 준비를 해야 하지만, 박물관 터와 시설 확보에만 급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는 지난해에만 박물관 5곳 건립비로 313억6천900만원을 마련한 상태다. 그 예산 대부분은 박물관 터·시설비로 쓰인다. 박물관에 필요한 내용물을 먼저 구해야 하지만,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얘기다.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한 채 무슨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건지 한심하다.

순서도 순서지만, 박물관을 짓고 난 다음이 더 큰 문제다. 박물관에서 내보일 유물·콘텐츠 등이 턱없이 모자라면, 그 박물관은 있으나마나다. 박물관을 찾았던 사람들이 보잘것 없는 내용물에 실망하고 외면한다면, 예산만 낭비한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인천시는 인구 10만명 당 1개 꼴로 박물관을 짓고, 미술관과 도서관을 추가로 건립해 충분한 문화기반시설을 갖추겠다는 방침을 세워 놓았다. 그렇게 해서 지역 문화·예술 수준을 높이고, 시민들한테 문화적 욕구도 채워주겠다고 한다. 
 
테마 박물관 어떤 것이 들어서나?
 
오는 2014년까지 인천지역에 10개의 테마 박물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이미 건물 공사가 마무리 단계인 곳도 있고, 이제 기획단계에 있는 곳도 있다. 계획만 잡아 놓은 박물관도 있다.

기간이야 어떻든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 우리 주변에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선 이들 박물관에서 '진품'을 감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 '좋은' 기획만 쫓다보니 전시 유물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그런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한국최초사박물관으로 꾸며지는 구인천제일은행 건물.

인천시에 따르면 오는 2014년까지 인천지역 각 기초자치단체에 세워지는 테마 박물관은 모두 열 곳이다. 이 가운데 마무리 단계에 있는 곳과 기획 단계를 거쳐 현재 진행이 되고 있는 곳은 모두 여섯 곳이다.

중구 중앙동의 '한국최초사박물관'을 비롯해 선린동의 '자장면박물관', 남동구 논현동의 '소래 역사관', 장수동의 '자연생태박물관', 서구 경서동의 '녹청자도요지 교육사료관', 강화군 하점면의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자연사박물관' 등이 그 곳이다.

이 중 장수동 '자연생태박물관'은 민간자본에 의해 세워지는 박물관이어서 관에서 설립을 추진하는 곳은 실질적으로 5곳에 이른다.

또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설치 예정인 박물관이 계양구의 '고바우만화박물관', 옹진군의 '섬 생활박물관', 인천시가 직접 설치·운영할 예정인 '한국 역사관' 등 세 곳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물관들만 보면 중구 중앙동의 '한국최초사박물관'은 구 인천제일은행 건물의 내부를 리모델링해 만든다. 지상 1층의 연면적 412㎡ 규모로 국·시비와 구비를 포함해서 건축 비용만 21억200만 원에 이르며, 올 상반기 중 개관할 예정이다.

같은 중구 지역에서 선보이는 '자장면박물관'은 지상 2층 연면적 846㎡ 규모로 모두 65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갔으며 내년 개관을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동구에서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소래역사관'은 지상 2층 연면적 1천320㎡ 규모로 국·시비와 구비에 민간자본 17억 원까지 더해져 모두 49억 원을 투입, 올 해 안에 개관할 예정이다.

서구에서 추진하는 '녹청자도요지 교육사료관'은 지상 2층의 연면적 1천487㎡ 규모로 전체 41억원을 투입한다.

모두 135억 원이 들어가는 '강화역사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4천233㎡ 규모의 테마 박물관으로 올 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강화역사박물관과 인접한 지역에 세워지는 '강화자연사박물관'도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1천800㎡ 규모로 건축에만 모두 9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내년 말 개관 예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테마에 맞는 유물들이 들어오나?

강화군 하점면에 세워지는 강화역사박물관 조감도, 발굴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중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섯 곳의 박물관들은 모두 한국최초라든가 자장면, 혹은 소래 지역의 역사, 강화 지역의 역사 등 각각의 테마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해당 박물관이 지어지면 그 곳의 테마에 맞는 전시 유물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는 일부를 제외한 이들 박물관에서 테마에 맞는 진품 유물을 만나 볼 수 있기란 어려울 듯하다.

인천학연구원 김창수 상임연구원은 "과연 이들 테마 박물관에서 얼마나 진품 유물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건립 중인 박물관들의 본질에 의구심을 던졌다.

실제로 중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최초사박물관의 경우 유물구입 예산 2억 원을 들여 우표, 화폐, 엽서, 책 등 300여점의 전시 유물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들 전시 유물의 대부분은 박물관 이름에 걸맞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최초는 아니고 비슷한 시기의 유물일 뿐이다.

실제로 구 관계자는 "일부는 최초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최초의 것을 구입하기 어려워 개항 시기 등 당시의 것을 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자장면박물관의 경우 역시 5천만 원의 유물구입비가 마련됐지만 자장면이란 테마 자체가 갖고 있는 관련 유물의 한계로 전시품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중화요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조리도구나 '철가방'으로 대표되는 음식 배달통 등 수십 점이 전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인천지역에서는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물 구입의 어려움은 남동구에서 짓고 있는 소래역사관도 비슷하다.

당초 남동구에서 지을 예정이었던 박물관은 '자연사박물관'이었다. 그러던 것이 역사박물관을 거쳐 지금의 역사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유는 명칭에 맞는 가치 있는 전시 유물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동구 관계자는 "처음에는 박물관으로 계획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관련 유물을 확보하기 어려워 역사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어야

 시립박물관에 전시중인 고종왕가기념사진첩. 동경 반도신문사출판부 발행본이다. 사진제공 인천시립박물관
우현 고유섭 선생의 친필 족자. 사진제공 인천시립박물관

그나마 역사적 유물이 풍부한 강화는 박물관이란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려 하고 있다.

강화군은 현재 지역에서 발굴된 역사적 유물들을 문화재청과 협의해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벌이고 있다. 역사성을 담은 진품을 전시하려는 것이다.

군은 역사박물관을 지난 2005년부터 추진하면서 '어느 시대 어떤 유물을 전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강화 지역 자체의 역사성이 뛰어나다는 판단 아래 강화의 전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한 박물관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사시대를 비롯해 오상리고인돌군 발굴 유물, 고려 왕릉 유물, 조선시대 군사무기 등의 유물을 전시하기로 하고, 대학박물관과 문화재 연구소 등에서 보관하고 있는 강화지역 발굴 유물들을 이관하기 위해 문화재청이나 문광부와 협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안에 새롭게 학예사 2명을 추가 채용해 박물관 운영의 내실을 기할 예정이다.

강화군은 아울러 역사박물관이 문을 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어제연장군의 수자기를 장기 대여 형식으로 박물관으로 옮겨와 전시하는 것을 준비하는 등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기획전시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여러 테마 박물관이 지어지고 있는 지금, 박물관별로 각각의 테마를 갖고 있지만 그 테마에 맞는 유물을 얼마나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박물관이란 공간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단순히 공간만 늘어나는 것이 아닌, 박물관이란 이름에 맞는 전시품들이 늘어나 그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와 각 구·군에서 박물관 테마에 맞게끔 유물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