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아이들의 궁금증 - "서점이 뭐예요?"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2) 홍지연 / ‘책방산책’ 책방지기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은 인천과 강화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에 책방을 열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텐데, 그들은 왜 굳이 작은책방을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말하는지 질펀하게 수다떨려고 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작은책방, 그 길모퉁이에서 책방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책방시점, 책방산책, 우공책방, 딸기책방, 나비날다책방 순서로 일주일에 한 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서점이 뭐예요?
3년 전 낮은 담장 주택가 놀이터 앞에 책방을 냈다. ‘책방산책’(인천시 계양구 향교로 5번길 23 1층)이다. 책방을 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요?”였다. 책방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도서관인가요?” “책 대여점인가요?”라고 되물었고 “서점입니다.” 답하면 신기한 듯 서가를 둘러보고 되돌아 나가곤 했다.
아이들은 한 번 더 질문했다. “서점이 뭐예요?” 라고. 잠깐 당황, 하지만 당연한 질문이다. 동네에, 지역에 서점이 사라진 지 오래 됐으니 아이들은 서점이 뭐하는 곳인지 궁금할 수밖에. ‘책을 직접 보고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사 가는 곳’이라고 하니 “아하, ○○문고 알아요!”로부터 시작해서 엄마, 아빠와 가 본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마트에 입점한 중고서점, 학습서를 사러 나들이 다녀온 경험, 책은 택배로 오는 줄만 알았다는 등 서점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해준다. “다음에 또 올게요.”하고 총총 사라지는 아이들은 종일 기다리는 게 일인 책방지기에겐 꽤나 반가운 손님들이었다.
책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어떤 순간
꽉 찬 3년. “여기엔 다른 곳에서 맡을 수 없는 좋은 냄새가 나요. 무슨 냄새에요?” “글쎄… 커피 냄새?” “커피 냄새 아닌데….” “아… 책 냄새인가?” “책에도 냄새가 있어요?” “그럼, 있지.” “냄새 맡으러 와도 돼요?” “그럼~ 언제든지.”
책이 뿜어내는 종이냄새를 맡으러 오는 아이, 화장실이 급해서 오는 아이, 놀이터에서 놀다 목말라 물 마시러 오는 아이, 모래 털고 손 닦으러 오는 아이, 출출해서 먹을 게 있을까 오는 아이, 잠깐 자전거 맡기러 오는 아이, 지나다 책방이 잘 있나 궁금해서 오는 아이, 오늘은 어떤 새 책이 들어왔을까 기대하며 오는 아이, 대접을 잘 해줘서 기분 좋아 온다는 아이, 잠깐 졸러 오는 아이, 너무 더워서 또는 너무 추워서 오는 아이, 그림책 읽어 달라 오는 아이, 개 산책시키다 들르는 아이….
책을 사러 오는 아이보다 다른 이유로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지만 이제는 다른 이유로 찾아오다 책 이야기를 나누러, 책을 사러 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혼자도 오고 친구들과도 오고 어른들 손을 잡고도 온다. 매일 지나는 길에 있는 식당, 슈퍼마켓, 커피숍처럼 그 옆에 책방이 있으니 책이 어떤 순간에 아이들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서점이 뭐냐고 묻는 아이는 없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책방 이용법
의외로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른 경험은 매우 드물다.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권하는 책을 주로 읽는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사고 싶은 책을 사달라고 할 때도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책, 허락 받을만한 책을 고른다는 말을 들었을 땐 ‘설마’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책방을 하다 보니 정말 그랬다. “너 그거 본 책이잖아, 안 본 책 골라.” “이제 고학년인데 그림책, 만화책 말고 글씨 많은 책 골라.” “만날 이야기책만 보지 말고 지식책도 좀 봐야지.”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한숨을 폭 내쉬며 고른 책을 내려놓는다.
옆에서 듣고 있으면 속이 상한다. “본 책인데 곁에 두고두고 보고 싶구나.” “그림을 좋아하는구나, 요즘은 어른들이 보는 그림책도 많은데, 책 고르는 눈이 보통 아니네.”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 보니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 감정을 잘 알아주겠다.” 책을 사주는 어른들이 들으면 좋아할 소리는 아니지만 곁에서 아이 편을 들어주면 “네!”하고 내려놓은 책을 자신 있게 집어 든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책방 이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른들이 원하는 책이 아닌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직접 보고 골라서 사볼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책길을 만들어 가는 안목을 키운다. 책방지기의 역할이 있다면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 중 아이의 관심사를 묻고 찾고자 하는 책을 찾아주고 짧게나마 그 책에 대한 소개를 하는 정도로 거들 뿐이다.
찾는 책보다 없는 책이 더 많지만
“○○○책 있나요?” “아니요, 지금 없네요. 주문하시면 3일 내로 들어옵니다.” 하루배송이 자리 잡은 지 언제인데 이런 여유도 부린다. 우리 집 아이는 책이 이렇게 많은데 찾는 책이 없는 게 너무 이상하다며 세상에 책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거냐고 묻곤 한다.
작은 동네책방의 규모로 많은 책을 들일 수 없으니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 속에서 책을 고르고 골라도 손님들이 찾는 책보다 없는 책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때론 그래서 어깨에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 읽고 싶은 책이 없을 경우 주문을 하고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들어오면 연락 줘요.”라고 말해주는 단골들이 차츰차츰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르고 고른 책을 찾아주는 분들도 고맙지만 책을 주문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분들도 늘 고맙다. 작은 동네책방이 오래오래 동네에, 지역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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