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이 감추고 있는 광장을 만나다
[정민나의 시마을] 마당의 국화 - 성기덕
마당의 국화
성기덕
오 육년 전 집사람이 국화꽃 모종을 사 왔다
다 흰 색이었다
열 뎃그루 옹기종기 심었다
그 해 가을 열 그루 정도 꽃이 피었다
모두 하얀색이었다
이듬에 봄, 국화 가지를 잘라 마구 심었다
조그만 마당에 백 여 그루가 되었다
그 다음해 그 속에서 노랑색 국화가 피었다
해가 갈수록 붉은색 국화도 피었다
흰 핑크색도 노랑 붉은 핑크 색도 피었다
여러 색깔이 뒤엉켜 꽃을 피었다
국화꽃이 바람이 났는가
바람의 자연 현상인가
내가 물었다
여보! 쟤네들 왜 저래?
국화꽃이 바람났나 봐
같이 킥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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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혼인 건수는 줄어드는데 이혼 건수는 늘어난다는 소식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바람난 국화’ 이야기 시를 읽으면서 독자인 필자 역시 공연히 킥킥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꿀벌의 중매로 국화는 다종의 꽃을 피었으리라.
식물 생태에 빗대어 우리 인간의 삶이나 역사를 돌아보면 이와 동일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에 필자는 인천 강화에 있는 교동도를 다녀왔다. 교동도는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3도 정도 낮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가을인데도 그 곳에 들어갔을 때 추운 느낌이 들었다.
교동 사람들은 예전에는 잘 살았다. 서울과 해주를 드나드는 동진포구가 지금은 비록 쇠락하여 물새들도 날아오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남북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자유로운 바람을 타고 많은 어선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한 때는 다른 지역과 교역을 하면서 번성했던 이 도시가 지금은 검문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교동도에 자라나서 피고 지는 꽃들이 웬지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 개인도 꿈에 부풀어 꽃을 피우는 청춘의 시기가 있다. 누구에게나 이 시기는 밖으로 밖으로 그 열정의 가지를 뻗는다. 하지만 넓은 광장으로 나와 정열적으로 사랑과 일에 매진하고 성취의 시기를 지나지만 그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기도 하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지친 자아는 다시 자기 안으로, 밀실로 귀환하여 시들어가는 자신의 화초를 바라본다.
밀실에 들어와 비로소 자신을 만나고 먼지 묻은 자신을 씻어주고 상처를 위무하고 나쁜 자기와 화해를 하고 따뜻하게 몸을 데웠다면 그 만큼의 사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이 생겨나지 않을까. 밀실을 밀고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광장이 있지 않을까.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명준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아갔고 다시 제3세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지만 우리 생애 밀실과 광장은 순환하는 길 위에 놓여진 하나의 흔하디흔한 풀포기 같은 것 아닐까.
광장에서 광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허무하여 이명준은 죽음을 택했지만 밀실이 감추고 있는 광장을 시인은 이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보물섬이 아니라 우리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보물찾기 놀이를 할 때 일상에서 찾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하얗고, 노랗고, 분홍의 색색으로 피어나는 국화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인 정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