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은 이재용이 너무 애처롭다
[전영우의 미디어 읽기] (61)개혁 대상임을 드러내는 언론과 사법부
"파기환송심 D-1, 한국 언론은 이재용이 너무 애처롭다." 이재용 파기환송심 판결을 하루 앞둔 1월 17일 자 미디어오늘 기사의 제목이다. 미디어오늘이 작년 1월부터 현재까지 40개 매체의 언론 기사를 분석했더니 이재용 삼성 부회장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가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언론 기사는 집행유예를 염두에 둔 것 같은 재판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국민 60%가 선처를 바란다는 근거 불명의 데이터를 제시하여 선처를 유도하는 기사를 쏟아냈으며, 삼성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강조하고, 총수의 부재는 삼성의 위기이고 이는 곧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다는 식의, 의도성이 다분한 기사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분석이다.
18일 선고를 앞둔 지난 15일 경부터는 탄원서 기사가 쏟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여러 단체에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기사가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미디어오늘 기사 제목대로 정말 한국 언론은 이재용이 너무 애처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모양새이다.
미디어오늘은 이 기사에서 작년 11월에 한겨레신문에 실린 경북대 최한수 교수의 칼럼을 인용하여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을 한국 언론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에서 지적한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3가지는, 재벌 회장님 걱정, 연예인 걱정, 건물주 걱정이라며 한국 언론의 고질병을 꼬집었다. 왜 아니겠는가, 지적받은 대로 한국 언론은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했다.
2021년 1월 18일,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어 법정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을 걱정하는 기사는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벌써 보수‧경제지는 탄식과 우려를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한국경제 빨간불 신호’, 한국경제 악영향 불가피’, ‘삼성, 대규모 투자 어려워질 듯’ 등의 헤드라인이 대표적이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86억여 원의 뇌물을 공여한 죄의 형량이 고작 2년 6개월밖에 안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언론은 일반인 정서와 동떨어진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언론의 이재용 부회장 걱정도 애처롭지만, 사법부의 이재용 부회장 걱정도 애처롭기는 언론에 못지않았다. 2심 재판에서 서울고법 형사 1부 정준영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미국 연방법원의 사례까지 인용하여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적용한다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고자 미국 사례를 억지로 적용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발상이었다.
재판부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과감한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는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가”라고 이 부회장에 묻기도 했다. 삼성 총수의 만 나이까지 챙기는 재판부의 세심함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범부들의 술자리에 좋은 안주거리를 제공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시민사회에서는 집행유예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반발했고, 물론 예상대로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었다.
눈물겨운 세심함을 보여줬던 정준영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파기 환송되어오자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이번에 2년 6개월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것이라는 댓글도 많이 보인다. 2년 6개월이라는 형량에 숨은 의미를 분석한 글에 의하면, 올 추석 가석방을 염두에 둔 절묘한 배려라는 분석도 있다. 이렇듯 언론에 대한 해묵은 불신 못지않게, 요즘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매우 높아졌다. 이런 현상은 사법부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검찰 개혁 관련하여 법무부와 검찰 간에 보여준 갈등에 이어, 법원의 판결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통념을 뒷받침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는 사법체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더구나 검언유착이라는 새로운 문제까지 두드러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재용 부회장 판결 과정은 언론과 사법부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되고 있다. 켜켜이 쌓여온 오래된 관행의 적폐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 없고, 저항도 심할 것이고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결코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 언론과 사법제도의 개혁이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