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만남, 소통 - 책방에서 다지는 삶의 기초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51) 작은책방을 열기까지 - 김미성 / '그런대.책방' 책방지기

2021-04-16     김미성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이 지난 48회 부터 3기 필진으로 교대했습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책방지기들은 계양구 작전동 '그런대.책방' 김미성 대표, 강화 불은면 '책방 바람숲' 신안나 대표, 부평구 갈산동 '연꽃빌라' 김보름 대표, 강화군 강화읍 '꿈공작소 모모' 서상희 대표, 동구 화수동 '책방모도' 문서희 대표 등 5명입니다.

 

‘그런대’는 독일어로 기초를 다지라는 의미로 책으로 삶의 기초를 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방 이름으로 하게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 사무실을 내고 8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 근처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서울에 사무실이 있었을 땐,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일이 없으면 일이 없어서 출근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절대로 출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사무실을 나누어 바깥에는 무언가를 팔고, 뒷쪽 쪽방같은 곳에서 내가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사무실로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책에 홀딱 빠져 한창 읽을 때였기에 ‘책방을 하면 좋겠다. 막연하지만 어릴 적 내 꿈도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을 법 한 헌책방 주인이었잖아’라는 생각에 미쳤고, 우연이 찾은 상가 자리가 뒷공간을 창고처럼 쓸 수 있게 문까지 달려있던, 지금의 책방이었습니다.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때는 상권이 어떤 것인지, 주위에 어떤 상가들이 있는지 보지도 않고 말이죠. 누구에게도 상의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도 않은 채, 그렇게 아침 산책 나가듯 서울의 사무실을 나와, 인천 계양구 작전동의 끄트머리 상가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사무실을 옮기고 다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책방을 하기에는 도로가의 차 소리가 너무 시끄럽구나, 9시부터 시작되는 건물 2층의 재봉틀 진동소리는 정확히 6시 퇴근 소리와 잦아드는구나, 옆집 기계 펌프집에서 두들겨대는 간헐적인 쇠방망이 소리는 그나마 일주일에 한 두번이니 다행인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책방이라지만 장사라는 현실 앞에서 주말도 없이 책방을 열어야 하고, 누군가가 오든 오지 않던 자리를 지켜야 하며, 매일같이 쓸고 닦는 것은 일도 아니고, 책방을 홍보해야 하고, 요즘 잘 나가는 책이 어떤 건지도 들여봐야 하며, 이런저런 독서모임이나 문화모임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저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책방에 오시는 분들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어울리지 않게 책방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된 오랜 친구와 같은 반가움이 아닌, 약간은 놀라움? 조금은 안타까움이 섞인 그 말들은 제 속에서 녹지 않는 석회가루처럼 뽀얗게 내려앉았습니다. 이런 연유로 코로나19를 방패삼아 책방의 정식 오픈을 차일피일 하던 어느날.

 

 

책방의 첫 손님 - 사무실에 넣어뒀어야 할 제품 박스들이 책방을 오픈 해야 할지 어떡해 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사무공간을 탈출하여 책방 구석 한 켠에 켜켜이 쌓여가던 어느 날...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 와, 이런 저런 책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추천해달라기에 [자기앞의 생]을 추천해주었습니다. 그날의 그 경험은 책방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책방이 이렇게 엉망인데도, 책을 사가다니... '어머, 이건 꼭 해야해!!!’ 라는 어떤 사명감같은게 송글송글 맺혔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도 책방 문을 빼꼼히 열며, "여기는 뭐하는데예요?"라고 묻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책방을 지나다 이 동네에 이런 가게는 뭘하는 곳인지 궁금했나봅니다. 책을 파는 곳이라고 했더니, 슬며시 문을 닫고 돌아갔던 그 남학생이 오늘 다시 들러, 자신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 하기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추천해주었고, 그렇게 그 남학생은 그 책을 구입해 돌아갔습니다.

저도 어릴 적, 아주 시골동네였지만, 책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큰 서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 대여점이 있었고, 비디오 가게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보고, 사람들을 배우고, 이런저런 연결고리들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요즘은 그런 곳이 동네에 하나는 고사하고 구(區)에 하나정도 있으면 다행이죠.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들어가 책 구매 버튼만 누르면 당장 내일? 오늘 저녁 책이 내 손 안에 들어 오는 세상인데 누가 책방에서 책을 사? 그것도 정가 다 주면서..’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저는 정작 지금이 책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네에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오다가다 자연스럽게 접하는 책이 아닌, 인터넷으로 서점 사이트에 접속을 해야 하고, 읽을 책을 찾아야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행위들에 자연스러움이 결여되어 있지않나요?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는 소통은 없고, 단지 통보만 있을 뿐이죠. 그저 추천해주는 책을 읽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만이 우리에게 남아있을 뿐이죠.

그런데 동네 책방에서는 동네에서 오다가다 자연스레 책을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 그런 자연스러움이 있는 공간을 전 계속 유지시켜나가고 싶어졌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 권이라도 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책이 그 사람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책방을 옮기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난 9년 동안 해 온 일보다 지금의 책방이 저에게 더 크게 자리잡기 시작했기에 할 수 있었던 결정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이 공간을 떠나, 조금은 조용한 곳에서 조금은 더 동네 속으로 들어가서 정말 동네 책방을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