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仁州), 인천(仁川)의 앞날을 위한 한 기독인의 제언

[릴레이 기고] (4) 이정배 / 전 감신대 교수, 현장아카데미

2021-08-19     이정배
인천in은 동구 화수동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문제에 대한 릴레이 기고를 전개합니다. 1960~80년대 인천지역 노동운동·주민운동·민주화운동의 요람으로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의미와 더불어 인천의 민주화, 산업유산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서울 태생인 필자는 나이 70이 코앞인 이 날까지 인천 깊숙한 곳을 다섯 손가락으로 셈할 정도만큼만 다녀봤다. 가까운 서울에 살았으나 내게 인천은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송도 신도시가 개발되고 새 전철이 생겼다는 소식도 접했지만 그곳 역사에 둔감했던 탓에 좀처럼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선입견이겠으나 개발이 지문, 땅의 역사를 지워 결국 사람향기(인문)조차 앗아 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인천에 대한 이런 생각은 필자의 작은 경험에서 비롯했다.

  서대문형무소 건너편에 옥바라지란 길이 있었다. 독립군, 민주투사를 가족으로 둔 여인들이 그곳에 모여 살며 이들을 돌봤던 장소였다. 금번 8.15 특집 방송에서 언급한대로 이들 역시 애국 열사였고 기억할 존재였다. 서대문 형무소가 그곳에 존속되는 한 옥바라지 길 또한 사라져선 안 될 유산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아파트와 상가건설을 위해 여인들이 머물렀던 몇몇 여관들과 더불어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 멋진 주상복합 건물 몇 채가 세워졌다. 당시 감신대 신학생을 중심으로 옥바라지 대책위가 생겼고 상당 기간 그곳서 이들의 투쟁에 힘을 보탰다. 역사공간을 터무니없게 만든 채 옥바라지 여인을 기리는 일은 단연코 언어도단이다.

인천감리서로


  금번 김정택 목사의 30여일 단식은 도시개발로 위기에 처한 인천 산업선교 역사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무형의 역사는 유형의 공간과 더불어 보존되는 까닭이다. 지문과 인문이 얽혀져 우리들 삶을 이어간다. 산업 발전을 위해 독재가 용인되던 시절, 오글 목사는 시대를 저항했고 조승혁, 조화순, 김정택 등이 그 뜻을 이어갔다. 이 시절 이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한없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모두가 배부르기를 바랐을 때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음을 가르쳤고 배웠기에 오늘을 비판하는 힘이 생긴 것이리라. 당시 그 마음으로 정치, 경제, 종교계에 헌신한 이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떠오르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으나 지면상 절제하겠다.

  인천의 본 이름이 ‘인주’인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무슨 연유에선지 ‘골(州)‘이 ‘강(川)’으로 바뀐 것이다. 여하튼 어질 ‘인’자로 시작된 인천은 어진 골짜기로 존재했었다. 바다가 있어 풍요했고 너른 들이 있어 넉넉했기에 사람들 마음 또한 어질었을 것이니 ‘’仁州, ‘仁川’이란 말은 참으로 부르기 좋은 말이다. 근대화와 더불어 인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기독교가 유입되어 번성했고 일제 강점기부터 값싼 노동력에 잇댄 공장이 많아졌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입성한 최초의 지역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어진 골짜기 인천도 급격히 달라졌다. 아마도 기독교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고 산업 노동자들 숫자 역시 최다지역이겠으며 한국전쟁의 아픔을 깊게 간직한 이 땅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다. 산업선교 역사가 없었다면 그 많은 기독교(회)는 무슨 의미일까? 지역 내 산업체는 인권개념을 지닐 수 있었을까? 전쟁 폐해를 오롯이 겪은 인천은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 평화의 도시 인천을 상상해야 할 시점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인천을 위해 도시 재개발이 강행되고 있다. 시를 책임 맡은 자들로선 필요한 일이겠으나 역사 흔적까지 지운다면 인천의 미래는 단연코 없다. 용적률 더 높이기 위해, 개발이익 더 크게 환수할 목적으로 사람과 시대가 함께 만든 역사를 지우고 땅을 뒤엎고 건물을 부순다면 이는 ‘어진 골짜기’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음의 표현이다. 사람이 땅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역으로 땅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까닭이다. 자본논리, 편의주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면 변하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 곳곳, 세계 이/저곳서 볼 수 있는 동질의 아파트 단지와 상가로 도시가 개발될 경우, 누가 그곳을 찾을 것인가? 더구나 정작 지역에 살던 이들을 내어 쫒는 방식으로 개발된 도시, 그런 도시는 이제 막 그 문턱에 들어 선 선진국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래를 포기하는 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진 골짜기’에 사는 교회들에게 요청한다. 이 땅이 본래 어진 곳이기에 교회가 성할 수 있었음을 감사할 일이다. 교회조차 성장논리에 함몰되었을 때 이곳 산업선교의 장이 있었기에 그나마 교회가 유지, 존속된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동의 않는 사람도 있겠으나 향후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감리교 중부연회가 앞장서 이 공간을 지키고자 애쓰니 다행스럽다. 하지만 정작 지역 교인들이 나서야 힘이 있다. 시청, 개발업자의 편에서 현실을 보지 말고 인천의 역사, 자식들의 미래 나아가 하느님의 자리에서 작금의 화수화평 지구의 재개발을 응시해야 할 것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곳곳에 무너질 곳이 너무도 많이 생긴다. 옥바라지 길이 그랬듯이.

이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