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서 현재를 즐기다
[독자칼럼] 안태엽 시민기자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과 약속된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고 방에 콕 박혀 책 읽고 글을 쓰며 지냈다. 매년 여름휴가를 함께 가던 세 가족에 한 가족이 더 참여하여 네 가족이 되었는데 말이다.
몇 해 전에는 강원도 삼척을 지나 울진 덕우 온천에 여장을 풀고 머물렀다. 비교적 조용하고 전망이 좋으며 여름에도 뼈가 시린 계곡과 바닷가를 끼고 있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계곡물에서 씻으며 놀았다. 밤에는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과 추억이 깃든 얘기들을 하며 잊고 살았던 것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어떤 음식이냐 보다 어떤 사람과 먹느냐 였다. 라면에 찬밥을 넣고 어죽처럼 끓인 것이 고급 음식점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었다. 육신의 허기짐은 물론이고 영혼의 허기짐까지 채울 수 있어 행복했다. 치열한 삶에 지칠 때면 그때가 절로 그리워진다.
나는 살아가며 돈과 사람 복은 없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하면서 평생 처음 행복함을 느껴보았다. 행복은 내가 만들고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지인들은 어떤 이유나 목적이 있어 만남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어렵고 힘든 속 마음을 토로하다 보니 어느 누구도 판단하거나 재단하는 사람이 없어 마음은 편안했다.
네 명의 지인들 중 영종도에 거주하는 분이 있어, 산과 바다가 있는 영종도로 초대를 하였다. 일행은 저녁에만 잠시 있다 갈, 텐트 칠 곳을 마련하고, ‘지금 이곳’이라는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에 여유를 가졌다. '지금 여기'라는 용어는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곳은 커피와 달콤한 빵이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넓은 시설에 아늑하고 조용하며 깨끗했다. 우리는 카페 옥상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영종도는 모임에서 듣던 그대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 많았다. 일행은 차로 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실미도를 비롯해 무의도, 예단포 전경과 아름다운 둘레길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필자가 본 ‘지금 이곳’은 시설도 좋았지만 뭔가 생각하게 하는 이름이었다. 오늘 못한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며 ‘지금 바로’하라는 것 같았다. 삶에 마침표로 생각하며 ‘홀로 가는 길’ 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내일을 위해 살기보다는 살아있을 때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Now or never(나우 오어 네버) -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한다'는 명언이 있듯이 죽음을 앞둔 이에게는 내일이라는 날이 안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게 될까 봐 겁이 나 몸에 이상 신호가 있어도 하루하루 미루며 때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갈 것 같아 불안해하며 지내왔는데, '지금 이곳'은 지금의 현실과 나의 삶의 행동을 비춰 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는 1년 전 만해도 펜테닉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코로나19는 많은 것들을 삼켜버렸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의 계획은 어긋났다. 오 분 뒤를 모르는 인간이 일 년 후, 십 년 후를 기약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 오늘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절절히 다가온다.
내일 일을 이렇게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라 확신해도 그대로 이루어진 일은 없었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에 충실하면 내일을 기대하지 않고 오늘을 부족하게 살면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책임지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현재가 중요하며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리지 않고 인생이 요구하는 것과 타인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필자도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becoming) 전력으로 질주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꿈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한 지금, 현재(being)가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순간이라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지나간 과거,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미래의 불안감을 떨치고, 지금 현재를 중요시 여기며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