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감한 한반도 텃새 황새, 백령도 진객이 되다
[백령도 물범지킴이의 생태일기] (8) 박정운 / 황해물범시민사업단장
한반도의 대표적인 텃새였던 황새
황새는 1950년대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번식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였다.
조선왕조 인조 때에는 황새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서울 지역 등에서 황새가 연중 내내 서식했으며, 떼를 지어 집단 싸움을 일으킬 만큼 많았다고 한다. 근·현대 기록에서도 황새가 한반도 전역에 분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Birds of Korea』(Austin, 1948)에는 황새가 한반도 전역에서 관찰되고 채집된 표본에 대한 보고가 있다. 『한국조류명휘』(남태경, 1950)의 황새 채집지(採集地)에는 경기도(일산), 서울, 황해도(평산, 해주), 평안남도(안주), 경남, 부산 등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한국산조수분포목록』(원병오, 1958)에도 황새 채집지가 한반도 전역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소문숙, 2007)
1962년 강영선의 채집 기록에도, 서울, 고양(경기도), 일산(경기도), 청주(충청북도), 부산, 평산(황해도), 온정리(황해도), 해주(황해도), 안주(평안남도), 대전면(전라남도), 박천(평안북도)에서 황새를 채집한 것으로 되어 있다. 김계진 등(2002년)의 북한자료에는 1970년대 이전에 김책시 림명벌(함경북도), 철원군 저탄리(강원도), 평산군(황해북도), 배천군(황해남도)일대에서 황새가 번식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소문숙, 2007)
황해도 일대에서의 황새 번식과 서식 기록이 눈에 띈다. 황해도는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재령평야와 연백평야 등 연안을 중심으로 넓고 비옥한 평야가 있어 과거에 황새가 번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황새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71년 마지막으로 번식쌍이 발견된 이후 남한에서는 황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밀렵과 황새가 서식할 수 있는 습지의 감소, 농약 및 제초제의 과다 사용으로 먹이가 급격하게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농약에 중독된 먹이로 인해 결국 멸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황새 서식지역의 오염과 환경파괴 등으로 극동아시아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황새(Ciconia boyciana)는 1960년대 이후로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 생존 개체수가 약 2,500마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황새(Ciconia boyciana)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 199호, 멸종위기야생동물Ⅰ급이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Red List의 멸종위기종이다. 국내에서는 멸종 상태의 황새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들로 1996년 한국교원대학교 내에 황새복원연구센터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그 해 러시아에서 한국 황새와 유전계통이 같은 어린 황새 2마리를 들여와 수 년 동안 인공번식과 자연번식과 야생방사 등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황새(Ciconia boyciana)는 극동 아시아 지역에서만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살던 종으로 유럽의 붉은부리황새와 다르며 부리가 검고 훨씬 크다.
이러한 황새 복원의 노력으로 요즘 전국 곳곳에서 황새가 나타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11월 21일~22일 전국황새동시모니터링(황새생태연구원) 결과, 화성, 예산, 서산, 새만금 지역, 고창, 영광, 신안 등의 지역에서 총 59마리의 황새가 관찰되었다. 이 중 한국에서 야생방사한 황새가 44마리였으며, 러시아/중국에서 날아 온 야생 황새도 15마리였다.
백령도에서 황새를 만나다 - 야생 황새 18마리와 가락지 H37을 끼고 있던 황새
한편, 내가 황새를 처음 본 것은 2020년 11월 22일(일) 아침 백령도의 솔개 간척농지에서였다. 북서풍이 강하게 불고 추운 날이었다. 야생 황새 1마리가 그 바람 속을 얼마나 힘들게 날아 왔는지 거의 탈진상태였다. 날개깃은 흐트러져 있고 눈동자에도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먹이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야생의 황새를 만났다는 것에 몹시 흥분됐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 날이었다. 2020년 11월 23일(월) 오전 9시 경, 백령도의 상공을 날고 있는 18마리의 야생 황새를 본 것이다. 아침 햇살이 강렬하고 쾌청했으며 북서풍이 강하게 불었다. 무리를 이끄는 황새 한 마리가 멀찍이 앞서 날아가고 있었고 나머지 황새들이 기류를 타며 뒤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거의 1시간 이상 내려앉을 곳을 찾아 백령도 상공에서 헤맸다. 그 광경은 정말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마리가 내려앉을 만한 공간을 찾지 못한 황새들은 백령도를 지나 북한의 황해도 남쪽 방향으로 떠났다. 조류 전문가는 아무르-우수리강 일대의 번식지에 머물렀던 황새 무리들이 월동지인 중국 보양호와 양쯔강 유역 쪽으로 바로 건너가려다 강한 북서풍에 밀려 백령도까지 왔던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큰 무리의 황새가 백령도를 찾아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1월 6~9일 폐염전(화동습지)와 백령 담수호에서 머무는 황새 17마리의 모습이 관찰돼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에는 백령 담수호와 폐염전(화동습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이었다. 폐염전 주변의 수심 얇고 갈대밭으로 형성된 습지가 백령 담수호가 연결되어 있어 황새 17마리가 머물며 휴식과 먹이활동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포장도로가 생겨 차량 이동도 잦고, 폐염전 주위와 인근 농경지의 수로는 콘크리트 수로로 바뀌었다. 비닐하우스, 전봇대와 전선도 늘어났다. 지난해 18마리의 황새가 강풍 속에서도 백령도에 내려앉지 못하고 헤매다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올해도 황새는 월동지로 가는 길에 백령도를 찾아왔다. 특이했던 것은 가락지 ‘H37’을 낀 황새 1마리를 10월 16일 화동습지 일대에서 관찰한 것이다. 황새 ‘H37’는 올해 8월 31일 황새생태연구원이 충남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에서 방사한 1년생(수컷)이었다. 황새 ‘H37’는 9월 17일 백령도에서 처음 관찰되었으며, 최소 한 달 이상 백령도 일대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황새모니터링DB에 따르면, 국내 번식에 성공한 황새가 백령도까지 온 건 ‘H37’까지 총 3차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9월 방사한 개체도 강화군에서 북한 장연군을 거쳐 백령도에 왔었다고 한다. 김수경 예산황새공원 선임연구원은 "중국 보양호와 양쯔강 유역을 거점 월동지로 삼는 황새는 백령도에서 북한을 거쳐 중국으로 이동하고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관찰된다"며 "넓은 평야가 있는 황해도는 생물자원이 많아서 과거 황새가 번식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경인일보. 2021.10. 28)
2018년에 발간한 북한의 습지목록에서도 대동만, 예성강 하구, 온천벌, 옹진만, 청천강 하구와 문덕지구 등 서해안의 주요 습지 지역을 따라 야생의 황새가 관찰되는 등 백령도는 극동아시아 지역을 오가며 번식지과 서식하고 있는 황새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백령도 뿐만아니라 강화도부터 서해5도와 북한의 옹진반도와 황해도 등은 한반도의 서해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황새 등 멸종위기 철새들에게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자 동북아의 생태축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따라서 서해접경지역 일대에서 서식 및 번식하는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점박이물범 등 남북한 및 동북아 협력이 가능한 멸종위기 깃대종·핵심종·우산종을 선정하여 멸종위기종 보전과 복원을 통한 동북아시아 생태네트워크를 회복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꿈을 꾸며 올 겨울에도 백령도에 들렸다 갈 황새를 몇 차례 더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 본다.
참고자료
-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황새(Ciconia boyciana)에 관한 조사연구(소문숙, 2007)
2019 ‘황새와 습지’ 국제심포지엄(한국교원대학교)
2020 황새 서식지로서 습지 가치 및 보전(황새생태연구원)
황새모니터링기록DB https://www.storkdb.net/dashboard
북한 습지목록 https://www.eaaflyway.net/dp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