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정신이 깃든 영종도 130년 전통가옥
[포토기획]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16호 '조병수 가옥'을 찾다
겨울 햇살이 따듯한 날이다. 영종도(옛 용유도)에 고택으로 유명한 조병수 가옥을 방문했다. 뒷산과 좌우 산으로 둘러싸여 고택은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전형적인 남향집으로 겨울의 따듯한 햇살을 받고 있는 집의 모습을 보며 여행에 지친 마음도 포근해진다.
1997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16호)로 지정된 조병수 가옥은 1890년도에 건립됐다. 조병수의 고조부로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있던 조형규가 1850년 서울 마포에서 살다 이주한 후 건립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조병수 가옥은 특히 1919년 3.1운동 때 용유도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계획한 장소로 기록에 남아 있다.
조병수 가옥은 서해의 섬 지방에 있는 전형적인 중류 주택이다. 전체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흙벽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교적 큰 목재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가공하여 건축을 하였다.
대문에 붙어 있는 ㄴ자 모양의 건물과 안채는 ㄱ자 모양으로 두 건물이 합하여 “ㅁ” 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대문을 들어와 왼쪽으로 사랑방과 오른쪽으로 방과 창고를 설치하고 있다. 방 구들 밑으로 불을 때는 아궁이가 각각 있다. 불을 때면 방이 따듯하다고 한다. 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다. 지붕의 기와 가장자리에는 정교하게 물받이가 설치되어 생활에 편리한 장치가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방 뒷 쪽에는 굴뚝이 설치되어 있다. 옛 기와와 진흙을 잘 개어 쌓아 올린 모습이 정겹다. 현재 에어컨이 설치되어 굴뚝 사이에 실외기가 밖으로 설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좁은 툇마루를 설치한 대청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2칸의 안방, 동쪽에 한 칸의 건넌방을 배치하였다. 그 앞에 하단 높은 툇마루를 놓았고 뒤에는 퇴를 내어 벽장으로 만들었다. 안방 앞에는 정측이 모두 2칸인 넓은 부엌을 달았으며 안방 쪽 한 칸의 부엌 천장을 낮추어 안방에서 사용하는 다락방으로 꾸몄다.
이와 같은 평면 구성은 전형적인 중부형 주거로서 경기·충청지방에 많은 주거 형식이다. 대문 위 중방 윗 부분은 회벽 처리된 가운데에 팔각형의 격자 문창 (사진에서는 기둥으로 가려져 아래부분 만 볼 수 있음)을 설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가옥은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집의 좌우와 뒤에 산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형상이며 집 앞에는 우물이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신비한 샘물로 마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빨래도 하는 정겨운 샘터로 알려져 있다.
돌 담으로 잘 쌓아진 담 안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장독대가 설치되어 있다.
조병수 가옥은 1919년 3·1 운동과 맞물려 용유도에서 일어난 3·28 독립 운동을 계획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 관련 일제하 판결문 번역본에따르면 집주인 조씨의 당숙되는 조명원씨는 3.1운동에 참여한 후 용유도로 돌아와 이 집 사랑채에서 열 한명이 3월 23일 비밀결사대 혈성단을 조직하였다. 밤을 새워 가며 대형 태극기와 격문 수백매를 만들어 용유도(현재 영종도로 합체되어 영종도 안에 소속된 지명이 됨)의 거잠리, 을왕리, 덕교리, 남북리, 무의리의 집집마다 배포하고 궐기를 촉구했다.(‘인천in 2019년 2월27일자 보도 '용유 주민 150명 분연히 일어나 만세를 외치다’ http://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7967
약속한 그 날 3월 28일 관청리 광장에 용유도 주민 150여명이 모였다. 목이 터지도록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피맺힌 함성은 바다와 육지에 메아리쳤다. (인천in 1월17일자 '소무의도 겨울 바다 돌아보기' 보도에서 김구 선생님의 독립 자금을 지원했던 소무의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듯이 당시의 영종도, 용유도와 소무의도는 조금씩 떨어져 이웃한 섬이었다. 당시에 애국 애족으로 나라를 사랑하던 섬 사람들의 정신을 엿 볼 수 있다.)
비록 일본의 무력 진압에 체포되어 2년 또는 6개월의 옥고를 치른 분들이 있었지만, 이 정신은 민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숭고한 애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고택을 둘러보며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조상님들의 나라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