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 복권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고] 이성재 / 6.15공동선언실천 인천본부 상임공동대표
20대 대선이 끝났다.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45대 대통령 선거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 직전 지지율이 60%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당은 정치초년생이자 온갖 추문의 대명사였던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줬다. 왜 그랬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품격은 새삼 말할 필요는 없지만, 품격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오바마와 민주당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 이익을 앞장서서 대변했으며, 전통적인 지지계층이었던 불루칼라 노동자들의 삶보다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이해를 더 대변했다. 그 결과 소수는 부유해졌을지 모르지만 양극화는 전 세계 최고였다.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외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여전한 가운데 미국 경제는 주저 앉으면서 대다수 미국인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트를 선택했다.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쫓겨나는 삶에 지친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과 백인 남성 기독교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선된 것이었다.
지난 3월21일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원인은 문재인 대통령 탓"이라며 "다시는 문재인 같은 대통령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도록 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문재인정부에 대해 가슴에 묻어 두었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별명은 ‘고구마’였다. 진지하고 숙고하는 성격을 두고 다른 한편 답답함을 느껴 그리 지어준 것이다. 본인은 “고구마는 먹으면 든든하다” “말이 느리지만 그만큼 많은 요소를 고려한다”는 말로 둘러댔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답답함은 지난 5년 내내 계속되었다.
개혁의 변죽만 울렸다. 검찰개혁을 한답시고 했지만 별 볼일 없는 공수처 말고는 한 게 없다. 다수의 국민들에게 ‘개혁’은 희망의 단어가 아니라 피곤함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전광석화처럼 전교조에 대해 종이 한 장으로 ‘법외노조’라고 통보했다. 따라서 촛불항쟁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곧바로 원상회복 시킬 줄 믿었다. 그런데 웬걸, 대법원에서 최종 위법 판결이 나서야 전교조 합법화를 공식화했다. 그 시점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도 무려 3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했던 금강산 관광 중단과 개성공단 일방 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8년 2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백두산에도 올랐고,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환대를 받았다. 미국의 대북제재 때문에 닫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곧바로 재개할 줄 많은 국민들은 기다렸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에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보다 못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 “조건없이 열겠다”고 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끝내 미국에 스스로 발목 잡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치적이 될 수도 있었던 남북관계는 2017년, 아니 6.15공동선언이 있었던 2000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바닥을 치고 말았다.
결단력도 부족하고, 사람 보는 눈도 부족하며, 최고 리더로서 조정능력도 부족한 사람 아니었나 생각하게 하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부동산정책을 26번씩이나 내놓을 정도로 갈팡질팡할 때도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쉽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어렵사리 부탁해서 맡은 법무부장관에게 지휘 계선에 있는 검찰총장이 연일 하극상을 벌이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검찰개혁을 분탕질해 놓은 윤석열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두둔하며 1년여의 갈등에 대해선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그가 “정치를 염두에 두지 않을거”라는 어설픈 예단은 윤석열의 당선으로 온 국민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자영업자를 비롯해 일거리가 줄거나 잃은 많은 국민들을 위해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 전 국민으로 할거냐? 선별적으로 할거냐? 부총리와 집권 여당 간 지루한 논쟁에 국민들은 피곤하고 지쳐감에도 문재인 청와대가 나서서 조정하는 모습은 어디에서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정권을 잃고서 50조 추경을 편성하니 어쩌니 호들갑이다.
며칠 전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뒤편 북악산 남측면을 개방해 북악산 전 지역을 완전 개방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윤석열 당선자가 청와대를 완전 개방한다고 하는 시점에발표해서 물타기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지만 만시지탄이었다. 이날 동시에 그동안 청와대 집무실 국방부 이전으로 온 나라를 시끌하게 했던 윤석열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비용을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처리”하라고 지시해서 국무회의에서 ‘예비비’로 의결되었다고 한다. 왜 다른 문제와 개혁과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빨리, 과감하게 처리”하지 못했을까! 아쉬움 그 이상이다.
20대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다시 6.1지방선거 분위기인데, 눈에 띄는 후보들이 보인다. 병원에서 퇴원해 정치적 고향인 대구로 내려간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시장에 출마를 하지 않나, 경기도에서는 강용석 변호사가 박심을 등에 업고 출마한단다. 별 성과도 남기지 못한 채 임기 내내 검찰개혁이다, 적폐청산이다 해서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줘 민심이반이 생기자,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정농단 주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석방과 함께 사면 복권시켰던 것이다. 국정농단 범죄 전력자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금 넓히려 하는 반면에 국정농단의 최대 피해자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있다. 바로 이석기 전 의원 말이다.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의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하지만 사건 초기에 국정원의 조작과 언론 농단으로 인해 잘못 각인된 주홍글씨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내란음모죄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말 몇마디 한 것으로 내란선동죄로 9년 형을 받았다. 만기 1년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가석방되었을 뿐이다. 국정농단범 이재용 삼성 부회장 가석방에 구색맞추기였다.
이제 문재인정부는 뭘 새로 하기보다는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그나마 뒷모습이라도 인상깊게 남겼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부산에서 처음 인권변호사 길로 들어선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권대통령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이 떠나는 마지막 길에라도 고구마가 아니라 사이다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석기 전 의원을 사면 복권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양심수이고, 함세웅 신부와 노옴 촘스키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도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 복권을 요청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소임으로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 복권을 통해 조금은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