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우물에서 길어온 정갈한 물 한 사발

[속닥속닥 인천 설화] (6)화수동 쌍우물

2022-06-20     김정아

녹음이 우거지는 6월, 절기는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 낮의 더위를 피해 시원한 물줄기를 찾아 화수동을 찾았다.

화수동은 ‘무네미 마을’이라 불리웠는데 물이 넘어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과거 이 지역까지 바닷물이 넘어 들어왔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무네미, 물넘이말이라고 불렸다.

‘화도진도’에 보면 괭이부리(猫島) 방향으로 아래쪽에 집 몇 채와 우물 표시가 있는데 이 우물은 구전에 의하면 19세기 말 화도진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과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인천 향토지에는 무네미 어귀에 쌍으로 우물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 이를 ‘화수동 쌍우물(화수동 107-2)’이라 부른다.

염원_31.0x20.5cm_종이

이곳 쌍우물에는 사랑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화도진에 배속됐던 군졸 ‘동이’는 쌍우물로 물지게를 지고 나르면서 마을처녀 ‘정이’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 혼인을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게 되자 전쟁터로 차출되어 전투 중 사망했다는 소문이 돈다. 이에 ‘정이’는 망연자실한 나날을 보내다 부모가 정해준 혼처로 마음에도 없는 시집을 가야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다.

결국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던 ‘정이’는 쌍우물이 영험하다는 이웃집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쌍우물에서 길어온 정갈한 물 한 사발을 놓고 새벽마다 소원을 빌었다. 그런지 두 달 만에 죽은 줄 알았던 ‘동이’는 오히려 공을 세워 나라로부터 큰 상을 받고 무네미에 나타나 ‘정이’를 데려가 알콩달콩 잘 살았다고 한다.

한우물_20.5x31.0cm_종이

상수도가 동네로 들어오기 전, 화수동 마을사람들은 쌍우물에 의존하여 살았다. 60년대 말 상수도가 각 가정에 보급되었어도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 이곳에 길게 줄을 서며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쌍우물은 이 지역에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원래 쌍우물 중 1개는 현존하는 우물 건너편 화수설비 건물 내에 있었으나 주택이 들어서면서 사라졌고, 2015년 6월 현존하는 우물이 있는 건물 옆 개인주택 앞에 작은 우물을 재현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화수2동 동민의 날을 맞아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쌍우물제’를 개최하고 있다.

6월녹음_20.5x31.0cm_종이

쌍우물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길을 걷다보면 화도진 공원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곳 입구에는 인천 최초의 인공폭포가 조성되어있다.

초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공원의 나무 그늘아래 앉아 내려오는 물소리로 더위를 식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