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슬픔을 시청하다
[독자칼럼] 채진희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아카데미
1983년 6월 하순쯤 연세대학교 음대에 다니는 교회 후배 공연이 남산 국립극장에서 있었다. 꼭 와줘야 한다는 후배의 말에 잠이 많은 나이지만 그 날 공연장에 참석했었다. 후배는 늦은 저녁 장충동공원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맛있는 밥을 사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피곤했기에 금세 잠이 들것 같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TV를 틀었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사람이 숫자가 적힌 피켓을 들고 본인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할아버지 뒷모습이 보였고 아나운서는 그 할아버지에게 ‘앉아주세요’라는 멘트를 했다. 할아버지는 화장실 다녀오는 중이었는데 본인이 이야기할 시간이 지났고 피켓에 쓰여 있는 숫자도 지나갔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아나운서가 “그럼 지금 말씀하셔도 됩니다.”라고 해서 막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시는 그 찰나는 내가 TV를 튼 순간이었다. 친정아버지가 평소 말씀하시던 ‘평양 중화군 중화면 상전리’라는 지명 이름이 들렸다. 나는 “통일이 되면 북에 있는 집을 찾아야 하고 땅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 퍼뜩 떠올랐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잠자는 어머니와 남동생을 깨웠다. 남동생은 그럴 리 없다고 하며 내쳐 잠을 잤다. 방송국에 전화했더니 바로 오라고 했다. 오밤중에 어머니와 택시를 타고 방송국에 도착해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친정어머니의 육촌 오라버니셨다. 어머니께서는 한동안 육촌 오라버니댁이 있는 부산에 다녀 오시고 육촌 남동생이 사셨던 평택에 다니시면서 이산의 아픔을 달래셨다. 어머니는 시간이 흐르면서 친가족을 찾지 못한 설움과 한이 더 커지시는 듯하셨다. 쓸쓸함을 잠재우시는 모습을 뵐 때 나도 속으로 울음을 삼키곤 했다.
생중계로 방송이 되었던 터라 분주한 내 모습도 송출되었나 보다. 다음날 직장에 출근했더니 동료들이 직장에서 돈 버는 게 모자라서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냐며 농담 한마디씩을 보탰다.
1988년 4월 25일 종로5가에 있었던 기독교방송국에서 나는 결혼식을 했다. 광주민주화항쟁으로 매일 자욱한 최루탄을 마시며 출퇴근하던 시절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하루는 시위하지 않아서 결혼식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잘 다녀왔다.
‘피나는 반성과 뼈아픈 뉘우침 속에서 지냈다.’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로 5공화국 때 과오는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며 국민 여러분이 주시는 벌이라면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희동을 떠나 은둔생활로 들어가는 장면이 TV를 타고 흘러나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했던 시대였다. 그 시절 사회의 쓰라린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다.
올해 3월 마지막 날인 오늘 전두환 씨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을 찾아 5.18 유가족인 오월어머니회 회원을 위로하였다.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작성한 방명록에는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이십니다.” 라고 쓰고 전두환 씨를 5.18의 주범이자 학살자라고 발언했다.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지만 죽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5.18 유가족들에게 사죄한다고 하였다. 묵묵한 침묵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과 함께 진정성이 있는지 앞으로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로 보통 말하는 ‘낀 세대’이지만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이산가족으로 만나서 소통하며 사셨던 어른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이사하셨다. 대를 이어 만날 줄 알았지만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헤어져 가족들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친정어머니께서 부모 역할을 잘하셨기에 그 덕분으로 내가 기독교방송국에서 결혼할 때 많은 하객이 붐볐다. 직장에서는 채진희가 친척이 없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결혼식에 참석하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소크라테스는‘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라고 했다. 정직만큼 값진 유산은 없다. 낮아짐의 권위, 손주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줄 아는 센스 있는 할머니로 손주들의 재롱 속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