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지원기관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장애인 활동가
[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긴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지난 10월 4일 인천 연수구의 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지원기관에서 일하던 한 장애인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장애인 활동가이면서 장애인을 위해 일하던 사람인 故 김경현 님이 자신의 일터인 장애인지원기관에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자신이 활동지원팀장으로 일하던 기관이 입주한 인천 연수구 소재 건물 8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고인은 투신 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투신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알리는 “대표의 괴롭힘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이렇게 떠나서 정말 미안하다”는 유서를 가족에게 남겼다.
고인의 유족이 고인의 휴대폰에서 찾은 두 번째 유서에는 “○○○이사님이 9월 25일에 그만두지 않으면 이사회를 열어 형사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하네요”,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거 같아요.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네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장애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한다고 명시하며 장애인 권익을 지원하는 이 기관이 고인에게는 목숨을 던져야만 괴롭힘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옥이었나보다.
심지어 이 기관은 고인이 사망한 다음날 고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채용 공고를 했다. 채 발인도 하기 전에 채용공고를 내는 반인륜적 행위를 한 것이다.
고인은 하반신마비 장애가 있으며, 지난해 11월부터 해당 기관에서 활동지원팀장으로 일했다. 고인에게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인은 주안공단에서 라이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부도로 실직했고, 계양구에 있는 문서파쇄기 공장에서 일하다가 노동운동 때 겪은 트라우마로 하반신 마비를 앓게 됐다고 한다.
고인은 장애에 굴하지 않았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당사자 운동인 장애인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을 돕고,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단체와 기관에서 일했다. 고인은 2019년 11월부터 청소년 발달장애인 방과 후 활동서비스 업무를 맡아 발달장애 아동을 돌보다가 지난해 11월 지인 소개로 이 기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권익 지원을 하는 기관에서 일하다가 대표와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에 내몰린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죽음 이후 기관 대표는 “업무상 미숙한 부분이나 잘못한 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때론 주의를 준 사실은 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고인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준 적도, 업무환경을 악화신킨 적도 없”고 업무 미숙에 대해 주의 정도만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인의 유서에는 기관 대표와 이사가 고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정황이 여럿 보인다.
“○○○대표, ○○○이사의 협박과 괴롭힘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네요”
“몰래 대화를 녹음하고 증거로 쓴다고 오타낸 서류들, 입력 잘못한 서류들 모으고, 노무사의 자문을 받았다며 경위서도 여러번 수정하게 하고 자기 말대로 작성 안 한 수정한 경위서가 또 증거라고 사진을 찍으면서 이사회에 보고해서 일을 못하게 하겠다고 계속 협박을 당했어요. 절망스러웠어요.”
“추석 끝나고 퇴사 의사를 하거나 이사회 열어서 형사고발 당하고 나갈 건지 결정하라고 하는데 무섭고 서글프고 무력감이 드네요.”
심지어 같이 근무하다가 다친 활동지원사가 산재 절차 문의를 해서 알려준 것이 기관의 이익에 반하는 잘못된 행위라며 대표에게 불려가 질책을 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기관 대표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고인의 동료도 증언하고 있다. 기관 소장(대표와 팀장의 중간 직위)으로 근무하다 올해 2월 정년 퇴임해 고인과는 약 4개월 정도 함께 근무했던 동료는 이렇게 증언했다.
“기관 대표는 허구한 날 직원들에게 야단을 치고 책상을 두들겼고, 결국 김씨가 대표에게 직언을 했다. 이후 대표는 김씨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한 번에 30분씩 많게는 하루에 세 차례 불러 1~2시간 면담을 진행했다. 김씨는 대표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면담 시간만큼 일하면 충분히 잘 할 텐데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사무실에 CCTV가 있다. 대표는 CCTV로 한 직원의 동선을 일주일 동안 감시하기도 했다. 활동지원사가 방문해 상담을 하는 날엔 상담시간이 길어진다는 이유로 면박을 줬다” - 2023.10.10. 故 김경현 조합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증언한 내용
고인의 유족은 “고인이 그동안 직장에서 심한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해 허망한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통탄하며 고인의 시신을 적십자병원에 안치한 채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족과 고인이 생전에 몸담았던 노동조합(다함께유니온)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해당 장애인활동지원기관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아울러 인천시에는 해당 단체의 사단법인 승인 취소를, 연수구에는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고인의 남편은 정부 당국이 제발 진실을 밝혀 고인의 억울함을 밝히고,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故 김경현 님의 억울함을 풀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의 준엄한 조치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