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홍빛 능선 따라 물드는, 문학산에서

[인천유람일기] (115) 문학산(남측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2023-11-06     유광식

 

문학산성의
내려다본
내려다본

 

며칠 있으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入冬)이다. 주변은 이미 얼어붙었다. 전례 없는 럼피스킨병에 동물들이 시름시름 앓고, 중동의 전쟁 양상으로 좀 더 불안할 따름이다. 사회적 참사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까지. 급기야 지역에는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기능 폐지 소식이 전해져 입동과 더불어 발만 동동 구르게 될 판이 되었다. 시국이 산 너머 산이다. 무엇 하나 따뜻한 고구마 같지 않고 날 선 바위 옆에 서 있는 위태로움의 홍수다. 우리 주변의 깊어진 가을을 만끽하기도 바쁜데, 다가오는 찬바람 소식이 야속한 이유다.  

 

문학산의
가을

 

인천의 배꼽산이라고도 불리는 문학산(文鶴山)으로 맘먹고 나섰다. 이번엔 남쪽(연수구)에서부터 올라간다. 짧은 코스이기도 하고 주차 위치를 연수장미근린공원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문학산은 해발고도 217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파르기도 한 돌산으로, 날개를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북쪽보다는 남쪽이 좀 더 가파른 구간이라서 행여 구르는 돌을 조심할 노릇이다. 연수장미근린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비포장 산책로를 걷는 것도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이내 콘서트 동굴에 들어선 것처럼 청아한 새소리와 숲속 향기를 반기며 푸른 잎사귀들의 손짓에 하나하나 화답하느라 바빴다.

 

등산
바위

 

둘레길 중간에 체육 기구를 가끔 만나고 건강을 위해 가볍게 산을 오르는 분들도 마주친다. 이번 코스는 초행길이었지만 전혀 어둡지 않은 마음이었다. 오르다가 어느 시민 한 분이 우리 가는 길이 다소 위험할 수 있다며 질러가는 안전한 길을 추천해 주셨다. 곧장 올라가니 데크길이 나왔고 바로 문학산성 아래였다. 아찔한 낭떠러지 계곡 사이에서는 남동산단과 연수구가 한눈에 조망되었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바람 방향대로 날린 모양이 마치 문학산 형님의 헤어 컬을 연상시킨다. 또한 탁 트인 전망과 따사로운 볕이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내리쬐는 장면도 마음을 풍성하게 가꾼다.  

 

산성
문학산을
자주

 

정상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정상은 넓은 평지에 각종 표지가 군데군데 널려 있는 모습이다.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고 문학산 역사관과 더불어 파수꾼처럼 고양이 세 마리가 등산객을 안내한다. 뒤편으로 미추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 백제를 상상하며 산성에서 현대를 펼쳐보기도 했다. 푸른 상공을 제 집처럼 노니는 새처럼 분쟁 지역의 극한 상황이 빠르게 해제되기를 문득 빌어도 본다. 군부대가 나간 후 개방된 문학산성은 이제 시민들이 지키게 되었다.

 

정상
문학산
관람
문학산

 

동서로 뻗은 문학산은 남북으로 미추홀구와 연수구를 경계 짓기도 한다. 입지적으로 중요한 방위점이었다. 한편 산길을 걸으며 모든 걱정은 저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산 시 하늘과 바람, 구름, 나무, 새, 바위, 초록의 물결에 휩쓸리다 보면 발을 헛디딜 수 있으니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상쾌한 기분을 가슴에 불어 넣고 가볍게 내려온다. 간혹 사람들은 인생을 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차피 내려갈 수밖에 없는 삶으로, 근심은 잠시 비켜 두는 것이지 없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작은 깨달음 자체가 행복이고 말이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산에 오르면 정말 많은 친구를 만날 수밖에 없다. 야~~호! 

 

하산하기,
갈림길에
등산로

 

산을 내려오며 유난히도 칡덩굴이 눈에 띄었다. 꼴사나운 모습이라면 어김없이 냅다 덮어 유려한 모습으로 치장해 놓는 칡덩굴이 신기하고 재미나다. 모난 구석을 살살 달래는 건지, 문학산 의복 담당자로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던 건지. 어느덧 다시 연수장미근린공원이다. 걸음으로 보자면 1시간 남짓의 왕복 거리지만 딴짓 걸음으로 3시간 정도 문학산 등줄기 따라 바스락바스락한 것 같다. 사실 삶에 이끌려 등산 한번 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다음에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코스로 문학산의 맥을 짚어보기로 다짐한다. 문학산 산책이 마치 내년을 준비하는 김장과도 같다.              

 

등산로를
옥련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