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인천으로 연결된 4.3 이야기, ‘나, 죄어수다’

중구 관동갤러리 사진전 12일 작가와의 만남으로 마무리

2023-11-07     채이현 기자

 

인천관동갤러리(중구 신포로)에서 묵직한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0월 13일(금)에 시작한 전시는 매주 금, 토, 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에 열렸다. 전시는 이번 주말인 12일(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만남’으로 마무리된다.

전시회의 제목은 <나, 죄어수다>다. 제주도 말로 <나, 죄없다>라는 뜻이다.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의 사진과 그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짤막한 증언이 걸려 있다. 4월도 아니고, 인천에서 갑자기 왜 제주 4.3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4.3 사건의 동조자라는 이유로 체포된 250여명이 인천형무소에 갇혀 있었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4.3 사건은 공권력이 공산주의자들의 소요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제주도민의 약 10퍼센트인 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다. 그저 살기 위해 도망쳤던 민간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죽지 않고 붙잡힌 2,700여명은 군사재판과 일반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전국 15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중에서도 인천형무소는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전시장 한 곳에는 “내 꿈은 수의사였다, 1년만 더 다녔다면 꿈을 이룰 수 있었는데.” 라는 회한이 적혀 있다. 징역 1년을 선고받을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총살이나 고문으로부터 운 좋게 살아남았어도, ‘빨간 딱지’와 ‘연좌제’가 두려워 자식들에게조차 억울한 과거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자신이 제주 출신인 것도 숨긴 경우가 많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4.3 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노무현 정부가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사과를 하면서 제주 4.3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다. 제주 4.3 사건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다시 정의될 때까지 50년이 넘게 걸렸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명예 회복과 피해 보상이 바로 따라온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용기를 내 활동해 온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2019년 18명의 4,3 피해자들이 재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소송이 이어졌고, 현재까지 천여 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딸이 내 전과기록 때문에 직장에 채용이 안 되었을 때, 기가 막혔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제는 90세가 된 노인의 짧은 한 마디에 맺힌 한을 어찌 다 헤아릴 것인가.

최후 진술을 요구하는 판사 앞에서 98세의 청구인은 "나, 죄어수다" 하고 크게 소리쳤다고 한다. 제주의 눈물과 한의 조각이 인천에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서 우리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