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주례사

[최원영의 책갈피] 제136화

2023-12-25     최원영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를 생각해봅니다.

너를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바꾸어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를 바꾸겠다는 것은 내 기준에 맞도록 네가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너를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변화하면 되지 않을까요.

내가 변화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 기준으로 너를 바라본 것을 너의 기준에서 생각해보고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묵묵히 행하는 겁니다. 이것이 사랑받을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이고, 이것이 사랑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가끔 저는 제자들이나 지인들의 자제들 결혼식의 주례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아주 재미있고 멋진 주례사를 접하고는 무척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전해드리겠습니다.

 

3년 전에 한 선배의 결혼식에 친구와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선배가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마치 한 편의 연애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연이 많았단다. 선배 집안의 반대가 엄청났었다는 거다. 그런데 식장에서 본 신부는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주례선생님은 나와 선배의 대학 때 은사님이었다.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선생님의 머리는 불빛을 받아 잘 닦아놓은 자개장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의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검은 머리가 저처럼 대머리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순간, 식장 안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어지는 주례사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다시 웃음을 던져주었다.

“제 대머리를 한문으로 딱 한 자로 표현하면 빛 광(光)자라고 할 수 있지요. 신랑신부가 백년해로하려면 광나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세 치 혀입니다.”

하객들은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빛 광자 같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보, 사랑해. 당신이 최고야!’라는 광나는 말은 검은 머리가 대머리가 될 때까지 계속해도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얀 장갑을 낀 선배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선배는 신부에게 수화로 주례사를 전해주고 있었던 거다. 그 모습에 눈물이 맺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광나는 말씀으로 주례사를 마치셨다.

“여기,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혀로 말하고 있고 신랑은 행위로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신부 모두 군자의 자격이 있는 겁니다. 두 군자님의 제2의 인생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이만 소인의 주례를 마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생님과 신랑 신부를 보며 힘껏 박수를 쳤다. 예식장은 하객들의 박수 소리에 떠나갈 듯했다.

 

참 멋진 주례사입니다. 신랑 집에서 결혼을 반대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신부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이르렀고, 그 결혼식장에서 주례선생님의 말씀을 신랑이 신부에게 수화로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울었고 감동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내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해주는 겁니다. 어느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주는 겁니다. 저 신랑처럼 말입니다. ‘주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너’의 기준과 입장에서 ‘너’가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