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녘에 심겨진 변화의 시간, 이화동에서
[인천유람일기] (120) 계양구 이화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눈이 내리고 북극 추위가 몰아치는 한 주가 예상된다. 한파 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나눔의 온도탑 온도가 100℃를 넘었다고 한다. 더불어 사회 이슈 또한 그 열기가 오르는 형국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계양구는 그 한복판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자치구보다도 드넓은 평원의 지역이지만 벌써부터 선거 이슈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잘 모르고 지나치는 벌판이었을 계양구 이화동 마을을 거닐어 보았다.
이름이 익숙한 느낌인데, 행정동 ‘계양 1동’에 숨어 있는 이화동이다. 배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배나무보다는 벼(쌀나무)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평야 지대로 읽힌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을 중심으로 볼 때 위쪽으로 김포 태리, 아래로는 장기동, 서쪽으로는 오류동이 자리한다. 오래도록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풀린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마을에는 현지인들의 움직임보다는 물류창고와 작은 업체들의 움직임이 큰 부피를 이룬다. 동서남북으로 수로가 지나기 때문에 이 일대가 금싸라기 평야로 일컬어지고 있었을 터이다.
마루머리산이 있다. 영험한 산이어서 과거 향교가 자리했었고 이후 옮겨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여느 지역이 그랬듯 피난민들의 거주도 일정 포함하고 있는 곳이다. 평야라 그런지 뒷들, 앞들, 이화골들, 여모리들, 조산들처럼 명칭이 정겹다. 도농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평온하면서도 무언가 시끄러운 요소들도 눈앞에 펼쳐진다. 2년 전쯤에 지나쳤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큰 변화라고 하면 이화동을 사선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로는 알다시피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이동의 편리함이 물론 크지만, 한 지역의 생활권을 둘로 쪼개기도 한다. 딱 봐도 마을이 더는 배꽃을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란 걸 안다. 중앙 들길로 가는 길에 멀리서 중화요리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이윽고 인근 김포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가 하늘에 사선을 그으며 지나간다. 중간 중간 철새들의 곡선이 매만져주는 풍경이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줄어드는 쌀 소비량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논농사보다는 하우스 작물 농사로 농가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화동 또한 하우스 시설이 1/3을 넘는다. 또한 있던 논도 파헤쳐져 있어 시설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것 같았다. 온실에서 데이터로 키워지는 작물로 인해 사시사철 못 먹는 것들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재배된 것들의 단가가 높아 소비가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브로콜리를 사려다 조기 품절로 대형마트에서조차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경험이 있다. 딸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쉽게 담지 못하는 마음은 제철이 아닌 이유가 크다 하겠다.
1번 마을버스가 좁은 길을 1시간 간격으로 오가며 숨통을 튼다. 2년 전 보았던 경로당은 번듯하게 신축(2023.2. 개관)했다. 대체로 택배 차량과 소화물 차량이 자주 출몰하는 걸 보면 조여 오는 풍경임은 틀림없다. 이와는 달리 들에는 오리 떼가 노닐고 사뿐히 내려앉는 꿩의 자태도 볼 수 있었다. 겨울 철새들의 이동도 보이고 인간 새(비행기) 또한 자주 출몰하였다. 비행기는 김포공항 탓인데 야외에서는 소음이 무척 거슬릴 정도로 컸다. 마을의 고충이 없지 않아 보였다. 그 소음을 피하기 위해 논에다 차음 하우스를 다들 짓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이용하면서 자주 접하던 버섯이 있었다. 자태도 튼실하니 누가 봐도 잘 키워낸 것 같은 버섯이 있어 눈여겨 두었다. 그 이후 인천시농업기술센터 야외광장 파머스마켓에서 다시 보게 되었고 이화동 출신 농산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버섯 농장 옆으로 신도로가 지나가게 생겼다. 도로가 완공되고 자동차가 지나다니게 되면 버섯들이 꽤 신경질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곳엔 여전히 농업의 풍경이 어울린다. 그런데 농지가 자꾸만 물류창고나 하우스 시설로 뒤덮이고 도로 계획으로 잘려 나가고 신도시 부지로 편입되면서 본연의 풍경이 축소되고 있다. 아무래도 농지 비율이 큰 계양구는 이 변화를 잘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인근 검단신도시도 조만간 검단구로 관할 구가 바뀔 터이다. 변화는 조용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전달된다. 서울(종로구) 이화동은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인천(계양구) 이화동은 관광이 아닌 생활 자체인 점이 다를 것이다. 조금 풀린 날씨에 걷다 보니 흙이 신발을 끌어안았고 따듯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이화동 들녘은 변화의 시간을 겪고 있지만 너른 땅과 부드러운 흙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장소의 깊이로서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