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안락사’ 문제에 담은 삶의 아름다움
“당신의 죽음을 국가가 지원합니다!”
당신의 나이가 75세 이상이거나 혹은 75세를 가까이 두고 있을 때, 당신의 죽음을 국가가 직접 나서서 챙겨 주겠다고 한다. 개인의 죽음을 국가가? 고령화 사회의 화두인가.
실제로 이 화두를 주제로 한 영화가 등장했다. 흥미롭지만 씁쓰레한 영화 한 편이 지난 2월 7일 개봉됐다. 일본영화 <플랜 75>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95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 장편영화상 일본 출품작, 제 75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에 특별 언급된 작품으로서, 일본을 넘어 우리 사회에도 커다란 충격과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노인 안락사를 다룬 ‘플랜 75’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75세 이상 노인의 경우, 국가가 나서 안락사를 권장하겠다는 것이다. 의료비와 사회보장 지출 등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은 증가하지만 그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부족하다는 인식, 더 나아가 고령자를 위한 복지 예산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이런 정책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터.
심지어 TV에선 안락사를 선택해서 행복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정부는 안락사를 선택한 노인에게 마지막 여행과 장례를 지원해준다. 플랜 75 신청자에게 10만 엔씩 준비금까지 지급하며 건강진단이나 의사·가족의 승인, 심지어 주민등록도 필요 없다고 홍보한다.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노인의 죽음을 부추긴다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다. 일본 개봉 당시 사회적 이슈로 다뤄진 영화로, 같은 처지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영화 <플랜 75>(감독: 하야카와 치에)는 ‘노인 안락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가족 없이 사는 78세 미치(바이쇼 치에코)는 호텔 청소 일을 강제로 그만두게 되면서 플랜 75 가입을 고민한다. 이런 미치의 사연을 중심으로 플랜 75 정책을 노인들에게 설명하며 가입을 제안하는 젊은 공무원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 플랜 75를 신청한 노인들의 변심을 막기 위해 고용된 콜센터 직원 요코(카와이 유미),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플랜 75 안락사 시설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 등을 통해 노인 안락사, 그리고 인간의 존엄 및 삶과 죽음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또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담담한 전개 속의 내밀한 아이러니와 공포
이런 의미심장하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의 전개는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영화 전체의 차분함과 대비되게, 영화 초반 오프닝은 의외로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시작한다. 노인 부양 문제로 고통 받던 젊은 세대가 사회적 개혁을 요구하고, 이로 인한 여러 충돌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작품의 주제를 끄집어내기 위한 감독의 전진 플레이다.
이 뒤로 영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고 담담하게 전개된다. 극 중 긴장감이 아닌 차분함 속에. 영화 속 일본은 이미 플랜 75가 정착된 사회. 따라서 이렇다 할 갈등이나 긴장감도 없다. 노인들은 국가가 진행하는 죽음에 그저 조용히 따라가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당연한 현실로 여긴다.
심지어 이런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노인들은 자유롭게 플랜 75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지만, 중간에 마음을 바꿔서 얼마든지 철회할 수도 있다. 이때 플랜 75를 담당하는 젊은 공무원은 자원봉사자들에게 “노인 분들이 플랜 75의 선택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가 열심히 도와드리고 응원합시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인들이 편하게 죽음을 선택하고 맞이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그때 장면 속 사람들의 표정과 어조는 분명 밝고 희망차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무서움과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영화가 주는 아이러니다.
이렇듯 영화 속에는 초고령사회 일본의 내밀한 아이러니와 공포가 짙게 배어 있다. 역시 고령화와 인구감소 쇼크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분명히 고령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모두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영화에선 정부가 오히려 ‘모두의 인권’을 핑계로 고령 약자층을 압박하고 배제한다. 과연 국가가 국민 개인의 생사에 어디까지 간여하고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 사회가, 아니 전 세계 미래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겠는가 하는 위기의식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삶의 소중함, 아름다운 공존의 메시지
그나마 영화의 비관적 미래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건 주인공 미치의 존재다. 그는 실직 후 단짝 친구의 고독사 현장까지 발견하지만, 자신과 주변 이웃·친구들을 살뜰히 챙기며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르막길에서 가쁘게 몰아쉬는 그의 숨소리는 영화 초반엔 노화의 비애로 느껴지지만, 결말에선 살아있음의 증명처럼 다가온다.
감독은 안락사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늙었어도, 아무리 가쁜 숨이라도 쉬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곧 살아있음이다. 이 살아있음, 그리고 이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영화 결말의 메시지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안락사를 유도하는 플랜 75 같은 제도가 무비판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 비상식에 길들여져 무비판적으로 제도를 수용하고 답습하는 이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당히 논쟁적 소재를 가졌음에도 영화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확실히 말하지 않는다. 노인 문제는 현재보다도 더 큰 압박과 고민으로 다음 세대에 다가갈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삶과 죽음의 의미, 그에 대한 선택의 자유와 인권 역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은 젊어 보았기에 지금의 청년을 더욱 이해하고 품어야 하리라. 청년은 자신도 똑같이 늙어갈 수밖에 없기에 지금의 노인을 역시 더욱 이해하고 위해야 하리라. 이 아름다운 공존을 어떻게 그려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