됫박쌀, 홉쌀...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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됫박쌀, 홉쌀... 그 시절
  • 서득석
  • 승인 2024.06.10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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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서득석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하는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을 신설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됫박
됫박

 

혹시 됫박쌀 사다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는지

아주 힘든 시민들은 홉쌀을 구입해서 생활했지요

 

쌀을 구입할 때도 변변한 포장지가 없어 신문지,

혹은 좀 두꺼운 시멘트 포장용지를 사용했지요

 

안남미라고 해서 동남아에서 수입한 쌀을 쪄서 먹었는데

아여튼 밥맛은 없었어요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지요

 

가운데 새끼줄을 끼어넣은 연탄을 낱개로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그나마 못 사면 냉방 신세를 져야 했어요

연탄을 아낀다고

아궁이 구멍을 틀어 막어 불을 덜피게 하다가 한겨울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요즘 김치 담그기 싫으면 사서 먹으면 되지만

당시 형편이 힘든 사람들은 김장을 못 하곤 했어요

여유있는 집들은 봄철에 남은 김치를 팔았는데

아주머니들은 김치 파세요 김치 파세요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녔어요.

 

당시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독안에서 절여진 김치는

색깔도 변하고 누렇게 떠서 군내가 났어요.

김장을 못 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사서 물에 우려서

찌개를 해 먹곤 했어요.

 

1950년대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던 시대

신문 구인란을 보면 직장은 변변한 것이 없었고요

한달 급여가 침식 제공하고 얼마 하는 식으로

먹고자 하는 것을 제일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꿈만 같지만

칠십 년이 흐른 오늘까지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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