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
상태바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
  • 최원영
  • 승인 2024.06.10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영의 책갈피] 제160화

 

 

지난 몇 차례 글에서 우리는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분들의 사랑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도 사랑의 올바른 방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아무리 추한 것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내 아기가 똥을 싸놓은 것 오줌 싸놓은 것을 보고도 엄마 눈에는 그저 예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예뻐 보인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고 구름이 곱게 보이는 순간 그것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때 아기와 엄마, 꽃과 나, 구름과 나는 하나가 된 겁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에 나오는 타미 나자르의 글이 그것을 깨우쳐줍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여덟 살 먹은 아들 자카리야와 나는 재밌는 프로가 없나 하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무심코 말했다.

“우와, 여기서 미인대회를 하네.”

어린 자카리야는 내게 미인대회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인대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대회를 말하는 거야.”

그러자 아들은 진지하게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해서 나를 감격하게 했다.

“그럼 엄마는 왜 저기에 안 나갔어?”

 

그렇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엄마였던 겁니다. 사실 우리도 그런 눈으로 엄마의 품에 안겨 컸습니다. 그랬기에 엄마의 사랑을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주는 사랑이었으니까요.

2017년 12월 말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뉴스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광주에 사는 78세 노모가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를 소개한 뉴스이었습니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 직전에 자녀들 몰래 작성한 유서라고 합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라는 제목의 14줄짜리 유서 속에 담긴 노모의 자식 사랑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애틋하고 숙연했고 거룩했습니다. 유서가 공개된 노모의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제가 그 유서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

병들어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

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 노릇 버거웠지?

큰애야, 맏이 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2017년 12월 엄마가)

 

잠시 제가 저 노모라고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곳에 가면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더는 보지 못 할 그날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피붙이들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 날을 말입니다.

조용히 노트를 펼칩니다. 오십 년 이상을 아이들과 살아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납니다. 배고팠던 시절, 아이들 입에 넣어줄 것이 없어 몰래 많이 울었던 나날들, 아버지 없이 자라서인지 늘 형제간에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었고, 학교 선생님의 호출도 잊을만하면 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썽 따위는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저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이 너무도 고맙습니다. 내 기억 속에는 아름다운 기억만이 채워져 있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연필을 꺼내 눈물 자국이 남은 유언장에 한 자 한 자 적어 나갑니다. 사랑한다고. 내 자식이어서 고맙다고.

사랑할 때는 내가 못 해준 것만 생각나지만, 미워하면 내가 잘해준 것만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은 미안해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도 못 해줬는데도 내 자식으로 있어 줘서 고맙다, 라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그런 사랑을 우리도 하라고 말없이 가르쳐주신 것은 아닐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