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 최소한의 울타리마저 부수겠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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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 최소한의 울타리마저 부수겠다는 정부
  • 노영민
  • 승인 2024.06.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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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노영민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용역업체 소속으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내부 청소 업무를 하던 A씨는 일하다 다쳐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업무는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회사에 병가 사용을 요청했고 회사는 병가가 1달밖에 안 된다고 했다. 병가 사용 후 회사에 계단이 없는 자리로 옮겨 달라고 했지만 옮길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후 A씨는 회사의 사직 권고로 퇴사했고 실업급여 신청을 하러 고용센터에 방문했다. 그런데 회사가 이직 사유를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으로 신고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천의 한 업체에서 보세사로 일하던 B씨는 몇 개월째 임금이 체불됐다. 회사는 불황이라며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퇴사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자발적 퇴사라 실업급여를 못 받을까 걱정이 됐다. B씨는 자발적으로 퇴사하더라도 그만두기 전 1년 이내에 2개월 이상 임금체불이 있는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음을 안내받고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환경 업무를 5개월 하던 C씨는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일방적으로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C씨는 이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 실업급여를 받았다. 때문에 현재 직장에서 퇴사할 경우 고용보험 가입일수가 141일밖에 안 되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이직일 전 18개월 동안 고용보험 가입일수가 180일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 잘못으로 직장을 그만둔 것도 아니고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일방적으로 해고됐음에도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민주노총
출처 - 민주노총

 

노동법률상담소에서 활동하며 최근에 한 실업급여 관련 상담들이다. 상담소에는 다양한 노동자들과 다양한 상담을 한다. 실업급여 관련 상담도 꽤 많다. 권고사직, 기간만료, 해고 등으로 실직했는데 사업주가 이직 사유를 자발적 이직으로 신고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됐다는 경우도 있고(이 경우 피보험자 고용정보 내역 정정 신청을 해 이직 사유를 정정해야 한다), 사업주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처리하는 등 4대보험 가입을 하지 않아 실직 후 실업급여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이 경우 고용보험 피보험자격확인청구를 해 가입 인정을 받아야 한다)도 있다.

실업급여 상담 연령대를 보면 60세 이상의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매우 많다. 노인빈곤율 세계 1위의 나라이기에 은퇴하고 쉬어야 할 나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일자리이다. 상담하면서 근로계약서를 검토하게 되는데 3개월 단기계약이 수두룩하다. 사용자가 해고하지 않아도 언제든 근로계약기간 만료로 일을 못하게 될 수 있는 불안정한 일자리들이다. 그러니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급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실업급여 수급자 수는 68만 325명인데 이 가운데 60~69세가 19만 2369명(28.3%)로 가장 많았다, 70세 이상인 8433명을 더하면 실업급여 수급자의 29.5%(20만 802명)가 60세 이상이다. 작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37.0%인데, 60세 이상 노동자는 68.7%가 비정규직이다.

청년들이라고 다를까? 한국노동연구원의 ‘2023년 청년층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15~29세의 청년층 근로형태별 평균 근속기간은 2022년 기준 정규직 25.2개월, 비정규직 10.9개월로 나타났다. 전체 청년노동자 중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비율이 40.8%라고 하는데, 청년 10명 중 4명은 평균적으로 1년이 되지 못해 실업 상태에 놓인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와중에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21일 22대 국회에 제출할 첫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실업급여 반복수급자의 급여를 최대 50%까지 삭감하는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을 입법예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은 임시직 근로자 비중과 짧은 근속기간으로 반복수급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는 구조”라면서도 “일부 단기 취업 및 구직급여 수급 의존 행태도 있다”면서 말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6월에도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조롱하며 개악하려 했었다. 고용불안으로 인한 반복수급을 부정수급, 도덕적 해이라 낙인찍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고 반복수급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악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중단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꺼낸 것이다. 그것도 지난 5월 14일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1년, 6개월, 3개월의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며 언제 실업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약자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라면 대통령이 얘기하는 노동약자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누구인들 3개월, 6개월,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싶을까? 사회에 갓 나온 청년들, 은퇴하고 편히 여생을 보내야 할 나이에 일을 해야만 하는 고령층 앞에 놓인 일자리가 죄다 비정규직에 불안정한 것들뿐이다. 이런 저질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실업급여다. 정부의 실업급여 개악 추진은 이 최소한의 울타리마저 부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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