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은 늘 눈물을 삼키게 합니다. 진실한 사랑일수록 때로는 엄합니다. 그래서 오해도 생기도 갈등도 생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엄함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때 비로소 미안함의 눈물, 감사함의 눈물을 흘립니다.
《바보 되어주기》(안순혜)에는 저처럼 아빠가 된 사람들이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뭉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던 고등학생 아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갑니다.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가출을 결심한 겁니다. 이곳저곳 하염없이 걸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집 근처 놀이터 벤치에 벌렁 누웠습니다. 눈 안으로 별들이 가득 들어오자 스르르 잠이 왔습니다.
한참 후에 눈을 떠보니 아들은 자신이 아빠의 무릎을 벤 채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겨울 추위를 잊은 채 잠잘 수 있었던 것은 아빠의 겉옷 때문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밤새 벤치에 앉아 잠든 아들을 지킨 아빠. 자신은 눈을 떴지만, 아빠는 앉은 채 졸고 있었습니다. 서리 맞은 아빠의 머리가 더 하얗게 보입니다. 순간, 아들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들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제가 고교생 아들이라고 상상해봅니다. 공부하기는 죽기보다도 싫고 친구들과 놀고만 싶습니다. PC방에서 게임만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공부해야 한다면서 화를 심하게 냅니다. 싫었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숨이 막힐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아빠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만큼은 아빠의 꾸중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습니다.
“다시는 집에 들어오나 봐라.”
대문을 꽝 닫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깜깜한 거리를 헤매면서 ‘내가 가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젠 아빠가 알았을 거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엄마와 아빠가 나를 함부로 건들지 못할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을 헤맸지만 딱히 갈 곳이 없습니다. 가까운 친구들 집에서 잘 요량으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과외공부를 하는지 전화를 받지도 않습니다. 갑자기 무서움이 엄습해왔습니다. 뉴스에서 본 집단구타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어느 학생이 길거리에서 만난 아저씨들의 꼬임에 넘어가 조폭의 일원이 되어 삶이 망가지는 것도 생각났습니다. 이 밤이 너무도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집에 다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결국 집 근처 놀이터 벤치에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봅니다.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추웠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허벅지에 내 머리가 얹혀 있고, 배 위에는 아빠의 윗옷이 있습니다. 아빠는 머리를 떨군 채 졸고 있습니다. 아빠의 머리 위는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왈칵 눈물을 쏟아졌습니다.
이때의 눈물은 감격입니다. 여태껏 아빠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자신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은 겁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엄격했던 것도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한참을 아픈 뒤에서야 겨우 느껴지나 봅니다.
이번엔 제가 그 아이의 아빠라고 상상해봅니다. 자신의 고교 시절이 생각났을 겁니다. 그렇게도 공부가 싫었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거듭될수록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마치 지옥문을 들어서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할 걸, 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만큼은 학업에 충실하길 바랐습니다. 나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니까요.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를 잘해야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녀석이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네요. 속이 상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밤 12시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분노도 잠시 이제는 걱정이 앞섭니다. TV에서 본 끔찍한 상황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래도 녀석이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PC방, 주변 학교의 운동장, 그 어디를 가도 아들은 없습니다. 걱정이 불안감으로 바뀝니다.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혼자 집에 들어갔을 때 밤잠을 못 자며 걱정할 아내가 상상이 됩니다.
동네 놀이터가 보입니다. 그곳에서 잠시라도 앉아 생각이라도 정리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 추운 날씨에 아들이 자고 있습니다. 겨울밤은 더더욱 찹니다. 추리닝만 입고 나간 녀석이 새우잠을 자고 있는 겁니다. ‘억!’하고 눈물이 흐릅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듭니다. 자책하는 마음의 소리가 귀를 울려댑니다. 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머리 좋은 아빠를 만났더라면 녀석이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에 가슴이 메어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조용히 겉옷을 벗어 아들의 배 위를 덮어줍니다. 아들의 머리를 살며시 들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얹어놓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데, 얼마나 귀한 내 아들인데, 내가 그토록 모질게 질책했다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잠이 듭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던 서리가 천사가 되어 내려와 아빠의 머리 위에 살며시 앉아 따뜻한 이불이 되어줍니다. 잠시 후면 아빠와 아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사랑해!”를 외칠 수 있는 위대한 장면을 이렇게 새벽 서리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