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 아트페어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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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 아트페어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
  • 채이현 기자
  • 승인 2024.08.16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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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및 후원금으로 진행, 프로 작품과 시민 작품 나란히
구족화가 작품, 업사이클 예술, 디지털 사진, 서예, 공예, 미디어 아트까지

 

'대한민국 미술축제', 인천은?

문체부가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서울에서 열리는 다수의 아트페어와 광주·부산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전국의 미술관 프로그램을 묶은 것이다. 통합 입장권 할인, 철도 할인, 미술여행주간 운영을 통해 전국의 미술 흐름을 함께 느껴볼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대한민국 미술축제'는 3개 도시에서 각각 열리던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등 미술 행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올해 부산 비엔날레는 8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광주 비엔날레는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리며, 서울에서는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9월 4일부터 8일까지)과 서울아트위크(9월 2일부터 8일까지)가 예정돼 있다.

인천에서는 인천아트플랫폼, 해든뮤지움, 더리미미술관, 파라다이스시티 아트스페이스, 인스파이어가 '대한민국 미술축제' 참여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파라다이스와 인스파이어는 전국 주요 미술관을 관람하는 ‘미술여행주간’ 프로그램 중 인천 투어 부분에 선정됐다.

호텔의 소장 미술품, 대규모 디지털 아트워크를 보여줄 예정이다. 북촌, 한남, 종로, 청담 등 9개의 코스를 지닌 서울은 제외하더라도, 대전, 대구, 제주, 광주, 부산 모두 그 지역에 자리 잡은 미술관 두 세 곳을 관람하는 일정인 것과 비교하면, 두 개의 호텔을 방문하는 인천 투어는 어딘가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대한민국 미술축제" 미술여행주간 인천 코스 안내 (출처 = 대한민국 미술축제 홈페이지)

 

새로운 아트페어를 고민하는 인천 미술계

인천은 문화예술의 불모지인가? 아니다. 이곳에서도 누군가 꾸준히 무엇을 시도하고, 만든다. 오히려 인천은 이제 막 아트페어에 대한 열정이 커지는 도시다. 열악한 재정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인천 미술계가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2024년 하반기에만 각각 다른 콘셉트로 5개 이상의 아트페어가 열린다.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아직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릴 만큼은 아니지만, 차근차근 경험을 쌓고 저변을 확대중이다.

송도 컨벤시아라는 공간은 전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예술을 취미 혹은 자기계발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은 수요를 창출했다. 여기에 미술시장을 조금 더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발로 뛰고, 자기 비용을 들여서까지 완성시키는 열정적인 기획자와 운영자들이 더해졌다. 인천에서 아트페어가 가능하냐는 의문이 여기저기서 던져졌지만, 미래를 바라보면서 장(場)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 셈이다. 지자체의 관심과 예산 지원이 더해진다면 아트페어는 인천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기부와 참여가 돋보이는 '2024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 

2024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 현장,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 (사진=인천in)

 

'2024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가 13일에 문을 열었다. ‘시민과 함께, 경계와 장벽을 허무는 인천형 아트페어’라는 포부를 가지고 올 해 처음 개장한 아트페어다. (사)인천광역시미술협회(이사장 안민주)'가 주최하고 2024 IUAF 조직위원회가 주관한다.

이전에 없던 기획과 구성으로 아트페어, 나아가 지역 사회와 연결된 대중 미술의 방향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의 초대작은 물론, 신체 장애의 한계를 극복한 구족화가들의 작품, 업사이클 예술, 디지털 사진, 서예, 공예, 미디어 아트까지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천 시민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의 그림이 프로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전시됐다. 아동, 청소년의 경우 인천미술학원연합회 소속 원생과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니어 신인 작가의 경우 인천지역 평생교육원 수강생을 중심으로 작품을 공모했다.

아트페어는 미술작품을 사고 파는 큰 시장이다. 주로 갤러리를 중심으로 부스가 차려진다. 작가들은 갤러리와 계약해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는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작가를 중심으로 부스를 구성하고, 팔릴만한 작품이 아닌 다양한 구성원의 창작물을 전시했다. 참여작가의 부스 비용과 관람객 경비 부담도 없앴다. 인천시와 협회 회원, 작가, 기업, 시민 등의 기부와 후원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아트페어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다.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은 행사 운영에만 쓰이지 않고 비영리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기부의 순환이다.

이번 아트페어의 주최 단체인 (사)인천광역시미술협회의 안민주 이사장은 “개인의 경우 기부금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에 그 안에서 부담 없이 후원할 수 있다.”며, “시민과 기업의 작은 참여가 모아질수록, 더 좋은 작품과 환경을 제공하는 아트페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직위원회 공명성 사무국장은 “예술적 경험을 기부형태로 구매하는 것은 아트페어를 통해 느낀 기쁨을 또 다른 이에게 전하는 마음쓰기”라고 표현했다.

 

미술학원을 통해 공모된 어린이, 청소년들의 작품 중 일부 (사진=인천in)

 

인천유니버설아트페어는 미술이 프로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시민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은 대중예술로서 미술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넘어 대중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경험까지 미술의 미래로 보는 관점이다.

이를 공공적 성격을 가진 전시로 볼 것인지, 아트페어의 정의를 확장하기 위한 실험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각의 요소가 가지는 정체성이 무엇에 가깝든 정형화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고, 인천 지역의 미술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는 점이다.

인천예고, 인천대 미술대학 학생들, 미술학원에 다니는 어린이들, 평생학습관에서 미술을 시작한 시니어들이 자신의 작품을 내 걸었다. 이들이 품고 있는 미래가 인천의 미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자원이라면,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발표할 장이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큰 경험이자 동력이지 않을까?

 

아트페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탁 트인 공간이었다. 전동 휠체어가 자유롭게 오갔고, 가족 단위의 관람객으로 보이는 여러 명이 함께 다녀도 전혀 비좁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와 함께 방문한 서현주(인천 연수구, 30대)씨는 “전시와 아트페어 관람을 자주 하는 편이다. 딸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함께 다니면서 그림을 본다. 인천에서 행사가 열리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가까이서 문화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인천에 이런 행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청년 서예가 이정화 작가 (사진 = 인천in)
청년 서예가 이정화 작가 (사진 = 인천in)

 

이정화 작가는 청년 서예가로 작품활동을 하며 수많은 드라마의 서예 대역을 맡았고,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세종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다. 치료해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병원에서 전시를 하고 기부도 해오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 아트페어에 참가하게 됐다. 기부와 사회 공헌이라는 아트페어의 취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참가 배경을 밝혔다.

글씨로 만든 벚나무 작품 앞에 선 그는 “벚꽃이 다 지고 난 후의 모습을 서예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벚꽃이 지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부터 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어떤 화려한 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린라이트하우스 작가와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작품들 (사진 = 인천in)

 

그린라이트하우스 작가는 디자이너로서 환경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플라스틱 병뚜껑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으고 세척한 뒤 분쇄하고 재성형하여 작품을 만드는데, 하나의 유닛을 만드는데 약 4개의 병뚜껑이 사용된다고 한다.

타일처럼 보이는 유닛은 비슷한 색감을 가지고 있지만 미세하고 고유한 무늬를 띄고, 개별적인 동시에 통일적인 속성으로 아이콘 또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생활 속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를 이용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빚어낸 색감의 오묘함 때문에 반복해서 보게 되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들어진 작은 유닛 하나가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도파민 작가"로 불리는 이찌고세연 작가 (사진 = 인천in)

 

호르몬을 주제로 개성있고 발랄한 그림을 그리는 이찌고세연 작가는 그림만큼이나 톡톡 튀는 의상으로 눈에 띄었다. ‘도파민 작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10여년 전 약학을 공부할 때 배웠던 생물학과 화학 공식을 창작에 응용하고 있다.

“행복, 사랑과 같은 감정들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달콤하거나 몽환적이다. 화학 공식을 닮은 작은 캐릭터가 감정을 타고 여행을 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말 그대로 도파민, 행복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열정을 다해 무엇에 집중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충만한 기쁨을 느끼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그림 앞에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몸은 기억하고 있음을 알게하는 일이다.

 

구족화가들의 작품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림은 팔과 손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보통의 생각을 깬 이들이다. 신체 장애가 가져오는 다양한 한계를 넘어설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림이 생존 그 자체였을까.

아쉽게도 작가들을 직접 만나지 못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작품이 ‘구족’이라는 제작 형식 보다는 작품 그대로 평가받고 공감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돼 있던 ‘구족화 체험’이 주최 측 내부 논의 끝에 취소되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체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림을 그리는 하나의 방식일 뿐인데 그것이 ‘보통’의 경우와 다르기 때문에 체험해본다는 발상은 차별을 강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고 한다. 장애인 작가를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장애를 부정하지도 않는 어느 시선을 택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아주 작은 시작이겠지만 말이다.

 

구족화가들의 작품 (사진 =인천in)
구족화가들의 작품 (사진 =인천in)

 

막은 열렸고, 관람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인천형 아트페어’란 인천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최측의 기획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관람객 수와 판매 그림 수로 계량화 할 수 없는 가치를 판다는 콘셉트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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