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통해 시니어들의 건강과 유대감 형성 기대
“혼자 살아서 늘 외로웠는데,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같이 춤을 추고, 손길을 주고 받으니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이춘희, 인천 서구)
21일 오전 10시, 새벽부터 쏟아진 빗줄기가 그치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였다. 2기 <예술하는 우리동네>의 첫 모임이었다. <예술하는 우리동네>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최보결의 춤의 학교’가 운영하는 공동체 문화 프로그램이다. 상반기에 이루어진 1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반기에는 서구 가좌동 ‘건지골 상상플러스’에서 10월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참가자는 주로 서구 가좌3동에 사는 주민들인데 지인의 소개로 동탄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50대부터 70대까지로 구성된 예비 춤꾼들이다.
색색의 꽃을 모아 담은 꽃병을 중심으로, 이름표를 붙이고 둥그렇게 앉은 참가자들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자기 소개를 시작했는데 춤을 배우는 강좌라 그런지 방식이 특이했다. 몸으로 자기 이름을 표현하는 것이다. ‘엉덩이로 이름쓰기’ 같은 놀이를 제외하면 자기 이름을 몸 전체를 움직이며 소개할 일이 없었을 이들이다. 대부분이 쭈뼛쭈뼛하게 하는둥 마는둥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다. 최보결 대표가 북소리를 울리며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자 저마다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다들 무언가에 홀린 듯 자연스러웠다.
“조금 어색하지만 해 볼만 하다.” (이명예, 서구)
“상큼하고 넓어지는 기분이다.”(유연자, 서구)
“관절이 풀리면서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정도곤, 경기도)
“너무 바빠서 정신 없이 일을 처리하고 왔는데, 바쁜 마음을 다 잊어버렸다.”(조현순, 서구)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오갔고, 본격적으로 만남과 정화의 세리머니가 시작됐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서서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가며 천천히 중심을 이동하는 작은 움직임을 배웠다. 이를 반복하다가 옆 사람에게 가장 다정한 형태로 손을 내밀고,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잡으며 하나가 되어 걸었다. 원을 만들어 리드미컬하게 함께 걷는 것을 보니 춤의 근원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춤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표현 방식이었다. 액운을 막고 풍운을 비는 종교적 의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도 했다. 춤이 정교하게 기술을 행하는 전문 예술 영역으로 변화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일정한 틀이 갖추어지면서 어떤 움직임이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지에 대한 평가가 생겼다. 고난이도의 훈련을 거쳐야만 출 수 있는 춤이 무대 위로 오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춤을 ‘추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꾸어 보기 시작했다.
‘춤의 학교’의 최보결 대표는 이 구도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며 시민들이 참여하는 춤문화운동을 만들어 온 선구자다. 그는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고, 예술은 개인을 꽃피울 뿐만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예술의 전당에서부터 광주 5.18광장, 논과 밭, 바닷가, 숲, 갤러리, 학교를 시민 무용단의 무대로 만들었다. 또 베를린 장벽,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뉴욕 센트럴 파크 등 해외 곳곳을 다니며 ‘사랑과 평화로 세상을 바꾸는 춤’을 알리는 중이다. “새로운 K-정신, K-콘텐츠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했다.
몸을 움직이는데 누구의 허락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춤을 추려고 하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온다. 다른 사람 눈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몸을 굳게 만들고, 흥겨움을 억제한다. 단순히 춤 뿐일까.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버린 많은 가능성과 욕구들이 각자의 내면에 가득 쌓여있을 것이다. 사회적 관습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삶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유와 변화를 향해 돌진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이 모든 시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슈즈를 벗어 던진 맨발의 이사도라 덩컨이 현대 무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듯이 말이다.
<예술하는 우리동네>는 자기 자신, 혹은 연대를 가로 막는 토슈즈를 벗을 것을 제안한다. 이 곳에는 거울이 없다. 보통 춤 연습을 할 때 거울을 보고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거울을 보며 동작을 익히는 것은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노력이다. 나의 움직임을 내가 인지하고, 나를 돌보는 춤을 추기 위해선 타인이 아닌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 중요하다. 내면의 내가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도록 온전히 두면서, 모든 동작의 기본인 힘빼기를 한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몸의 곳곳을 천천히 이완한다. 예술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