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불법파견 판결,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들이 겪을 소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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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불법파견 판결,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들이 겪을 소수의 이야기
  • 김은복
  • 승인 2024.09.0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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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노동법률상담소

 

2024년 7월 25일 대법원은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들 사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한국지엠이 하청으로 위장하여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행태가 인정된 것이다. 그리고 소송에 참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를 한국지엠의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하라고 판결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번 한국지엠 불법파견 사건은 대다수가 승소했고 일부(4명)는 패소했다. 필자는 그 패소한 소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쩌면 앞으로 또 다른 노동자들이 겪게 될 비정규직 고착화 양상일지도 모를 이야기다.

패소한 노동자들의 공정은 모듈화되어 제작된 범퍼 부품을 한국지엠 사업장 안에서 서열하는 것이다. 반제품으로 납품(부품공급업체가 납품한다.)된 모듈 부품을 제조라인에 보급(부품공급업체의 하청업체, 즉 2차 하청업체가 서열/보급한다.)하는, 소위 직서열(JIS. Just In Sequence) 작업과정이다.

1심 법원은 직접생산공정(컨베이어에 의해 작업이 완전 통제)과 간접공정(직서열 공정과 포장공정. 포장은 사외에서 수행하며, 포장→적재→운반으로 진행됨)으로 나누어 판단하면서도 하청 노동자들의 모든 공정에 대해 한국지엠에 의한 지휘명령과 근로조건 결정 및 근태관리가 인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하청의 작업집단이 원청 한국지엠에 실질적으로 편입된다고도 인정했다. 나아가 2차 하청 방식에 대해서는 “제2의 도급업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파견법의 적용을 손쉽게 회피할 길을 열어” 줄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2심에서 직서열 공정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다. 과거에 부품(범퍼) 공급업체가 완제품으로 납품하던 것을 모듈화된 반제품으로 납품하게 했다. 그러면서 한국지엠 안에서 서열작업하는 노동자들을 “제2의 도급업체” 소속으로 끼워 넣었다. 한국지엠은 이를 직서열 시스템이라며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2심 고등법원은 그 직서열 시스템을 인정하면서 위장도급, 불법파견의 증거들(업무지시 방식 등)을 직서열 시스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불가피한 것(업무지시가 아니라 정보의 전달이라는 궤변이 동원되었다.)이라고 배척했고 그렇게 증거들이 배척된 결과 불법파견의 증거는 없다는 판단을 해 버렸다.

그 밖에 불법파견의 징표로 주장된 것들은 모두 징표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폄훼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제2의 도급업체(2차 하청)들을 두고, 자체 설비도 없이 한국지엠 안에서 사업을 하면서 설비 이용료는 고사하고 전기세, 수도세조차 지불하지 않는 '사람장사꾼'들을 두고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라 인정해 버렸다. 노예노동을 막기 위한 중간착취 금지는 오간 데 없고 사람 장사가 버젓이 인정된 꼴이다.

필자가 만난 패소 노동자 중 1인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과거엔 범퍼 서열작업에 컨베이어가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이다. 소송의 조짐이 보이는 시점에 모두 철거했고 가벽을 쳤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측은 이미 준비를 했다고 본다. 그리고 비정규직 모두가 원청(한국지엠)이 쏴주는 전산지로 작업하는데 직접공정, 간접공정이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나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건과 동일하다고 했다. 같은 사내하청이더라도 부품사를 끼고 2차 하청으로 꿰어맞춰 놓으면 원청의 작업지시, 원청의 근태 결정 그리고 원청 사업으로의 편입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공식이 이미 그때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 공식으로 인해 정규직이 될 수 없는 2차 하청 자리에, 현재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불법파견을 불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 다시 이주노동의 연결고리가 체결되면서 기업의 불법, 탈법 고용이 더 공고해질 게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리셀의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다고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승소로 현장으로 돌아가는 동료들을 힘껏 축하해 주지 못하고, 그 동료들 또한 패소한 이들을 맘 편히 위로해 주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직접공정 vs 간접공정, 1차 하청 vs 2차 하청으로도 모자라 형제자매처럼 함께 투쟁하던 노동자들의 관계마저 갈라놓은 현실이 안타깝다.

자동차 산업의 불법파견 투쟁은 이제 소수의 투쟁, 어쩌면 이주노동자의 투쟁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부품공급업체를 통한 2차 하청 공식은 자동차 산업의 전환 과정에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공고하게 하는 도구가 될지 모른다. 어쩌면 이 구조는 다른 제조업 또는 다른 산업으로 전염될지 모른다.

그리고 일정 기간 약한 고리에 놓인 노동자들이 실컷 활용될 것이고 그 쓸모가 사라질 또 다른 전환 시기에 뒤늦은 권리인정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뒤늦은 권리인정 말이다. 이건 불필요한 악순환이다. 불법을 불법으로 판단하면 끊어질 악순환이다. 약한 노동자들을 만들어 짓밟는 이 악랄한 악순환이 왜 계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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