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김푸르나 / 시각예술가
인천에서 학부를 나온 필자는 학창시절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전시를 보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시립미술관이 없는 인천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은 그 역할을 대신하며 양질의 전시와 국내외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인천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2016년, 학부시절 꿈꾸던 인천아트플랫폼에 시각예술분야 작가로 입주하여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당시 필자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시민 참여 워크숍 중 하나인 ‘플랫폼 런치’에 참여했는데, 이때 기획한 <기묘한 칵테일>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근간이 되었다.
이후 필자는 인천문화재단의 ‘점점점 사업’을 통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아트랩999>라는 공간을 운영하며 시각예술실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중 2022년 기획한 <리퀴드랩999>는 인천의 역사적, 문화적, 장소적 가치를 시각예술가의 관점에서 해석해보고 이를 칵테일로 제작하여 인천의 다양성을 소개하는 실험적 프로젝트였다. 공간이 위치했던 거리가 카페거리인 점을 착안하여 시민들에게 익숙한 카페 컨셉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기묘한 칵테일>에서 보여 줬던 칵테일의 색, 장식, 맛 등을 이용해 인천의 숨겨진 공간, 역사적 사건, 사라질 장소 등을 전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프로젝트는 공간에서의 활동 뿐 아니라 다른 공간과 협업하거나 파견을 나가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현재 ‘점점점’ 사업은 마무리되어 공간 운영은 종료되었으나, 체험 프로그램 형식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이렇게 필자가 인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인천 출신이라는 이유를 넘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고 교류한 영향이 크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강점 중 하나는 필자가 전공한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 문학, 영화, 비평 등의 다양한 예술인들과 만나고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작년, 인천아트플랫폼에 관련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레지던시가 폐지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필자와 같이 인천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인천지역 대학의 학생들과 청년들이 앞으로 인천에서 마음껏 예술 활동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종종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왜 가까운 서울을 두고 인천에서 예술 활동을 할까? 물론 요즘은 지역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예술가는 항상 그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환경을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환경이 나에게 맞으면 정착하지만, 그럴 환경이 안 되면 떠나는 것이 예술가다. 인천을 경험해본 예술가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인천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도시다.
특히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 일대는 그러한 지역성과 역사를 접하기 좋은 곳이다. 물론 최근에는 개항로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앞세워 이와 관련한 행사와 축제를 진행하지만, 인천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면서 그 사이에 피어나는 요소들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큰 매력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매력을 예술적 실험과 활동으로 연결해주는 장소가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이다. 때문에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이후 몇몇의 예술가들이 인천에 정착하는 경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인천시가 추진한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늘리고, 인천지역 작가들의 레지던시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며, 주요 사업으로 ‘시민 버스킹 공간 조성(버스킹 상설 공연화)’, ‘스트릿 아트 페스티벌 확대’ ‘경관 조명·미디어 파사드 설치’ ‘드라마·CF 촬영 유치’ ‘인스타그램 감성 포토존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내용에서 필자는 궁금한 지점이 생긴다. 과연 지난 15년 동안 국내외 예술인들이 거쳐 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527명의 예술가들과 오랜 기간 이 공간을 운영하고 관리해온 담당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는가.
그렇다면 위의 활성화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자. 과연 인천에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부족한가? 현재 인천과 각 구 단위에서 진행하는 축제, 전시, 공연, 교육 등을 찾아본다면 이러한 방안은 의문이 든다. 또한 올해 인천시가 추진한 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의 ‘버스킹 행사’ 현장을 실제로 방문했다면 문제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천에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어디서 양질의 전시와 공연을 접할 수 있을까? 왜 인천에서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문화예술 교육의 혜택이 제공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청년 예술가 지원사업들이 과연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다른 방안도 살펴보자. 인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중심으로 레지던시를 지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인천 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역의 고립된 예술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도 크다. 또한 그동안 인천아트플랫폼이 구축해온 전국구적인 레지던시의 이미지는 곧 사라질 것이다. 인천지역 예술인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진행 중인 예술가 작업실 지원사업을 확대하거나 인천아트플랫폼 주변에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여 규모를 확장하는 방안도 있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 또한 레지던시를 경험한 예술가들과 인천 지역 예술가들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의 본래 역할은 예상치 못한 예술가들이 만나 예술의 다양성과 지역 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천시는 그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 인지를 예술가들과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이지만,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공간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예술가와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최근 인천시가 추진하는 아트센터 통합 계획과도 연결된다. 성격과 운영 주체가 다른 아트센터인천(인천경제자유구역청), 문화예술회관(인천광역시), 트라이보올(인천문화재단)을 인천문화재단 산하 본부로 통합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아트플랫폼이 가지고 있어야 할 전문성과 정체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전문가들과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예술인들에게 상실감과 무력감을 줄 것이다. 정작 이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를 만들어 나가야 할 주체들의 목소리는 반영되고 있는가?
현재 인천시의 문화예술 행정이 추진하는 일련의 방안들이 인천시가 내세우는 ‘초일류 도시’라는 슬로건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공론화 되지 않은 일방적인 과정 속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