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김미옥 / 인하대 대학원 문화경영학과 박사과정
아트플랫폼에 등장한 낯선 간판
최근 아트플랫폼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각종 일간지에서 연일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내용인 즉, 아트플랫폼에 맥줏집이 들어선 것에 대한 우려와 질타이다.
아트플랫폼은 전시와 공연,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이고, 더욱이 개항장 문화지구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들의 왕래도 잦은 곳이므로 13개 동(아트플랫폼은 총 1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켠에 맥줏집이 들어선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것도 일반 맥주집이 아닌, 인천의 모 기업이 자체 생산한 브랜드 ‘인천맥주’로 지역성도 갖추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문화예술공간은 상업시설과 적절하게 결합했을 때, 사람들의 발길을 더욱 효과적으로 유인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한 도시의 중요한 문화거점 혹은 소위 말하는 ‘핫플’이 되기도 한다.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휴식·쇼핑공간으로서 기능을 갖추어야 사람들이 모이는 게 요즘 추세다. 또한 최근의 문화시설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 커뮤니티 기능, 그리고 삶의 쉼표가 되는 휴식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니, 이 역시 ‘아예 말도 안 되는 조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기저기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 의견들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과 일련의 과정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트플랫폼에 맥주집이 들어섰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 원인은 아니구나 싶다.
인천시를 향한 비난, 그 이유는
인천시에는 전시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인천시는 (이제는 이런 지적도 의미없지만)시립미술관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며, 시각예술 작가들이 맘 놓고 전시할 공간도 여의치 않다. 그나마 있던 인천문화예술회관 내 전시실도 현재 리모델링 공사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소규모로 운영되는 개인 갤러리에서 대부분의 전시를 열어야 하는 열악한 실정이다. 따라서 인천시의 작가들에게 아트플랫폼은 매우 소중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 공간이 당초 설립의 취지와는 달리, 어느날 타 지역과 해외 작가들의 입주 프로그램을 폐지한다고 하더니, 언젠가부터 썰렁하기 그지없는 버스킹이 급조되어 열리고, 거기에 연달아, 갑자기 낯선 맥줏집이 다소 요란한 간판을 걸고 들어선 것이다.
아트플랫폼을 국내외 작가들의 교류의 장이자, 다양한 예술장르가 교차하는 곳, 인천의 대표적인 시각예술공간으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역의 예술인들은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욱이 그 맥줏집은 오후 네 시에나 느즈막이 문을 열며, 따라서 낮 시간 동안 내내 철문(외벽에 철문까지 설치했다)으로 굳게 닫혀 있고, 미성년자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버젓이 붙여놓는 등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열린 문화시설’의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먼 곳이니 말이다.
앞서 인천시는 지난 2023년 말, 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폐지할 것을 골자로 운영개편안을 마련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인천시의 레지던시 폐지를 반대하는 예술가들의 릴레이 시위가 있은 후 인천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유지하되, 인천 예술가들의 기회를 늘리는 것으로 하여 현재 총 10명의 인천 청년 작가들만 입주작가로 들인 상태다. ‘다장르 창작 환경 지원과 국내외 예술인 네트워크 및 교류의 활성화를 이루며, 새로운 문화예술의 발신지’가 되겠다는 아트플랫폼의 미션(아트플랫폼 홈페이지 ‘아트플랫폼 미션’에서 발췌, https://inartplatform.kr/intro/missionandvision)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치다. 그리고 이는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는 인천광역시장의 지향과도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인천시가 진정으로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려면 아트플랫폼의 세계화·국제화 전략은 오히려 더욱 정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천시 세금이니 인천 작가들에게만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편협한 시각으로 외국 작가들이 입주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놓은 채 세계화를 부르짖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통’은 반드시 거쳐야 할 정책 결정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그동안 아트플랫폼이 개관 초기의 관심과 이목에 비해 정작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것은 사실이다. 인천시와 문화재단은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또한 여러 대책을 고심했던 것으로 안다. 아트플랫폼 운영개편안도, 개항장 뮤직갤러리도, 그리고 작게나마 주류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나온 대책일 것이다. 어떻게든 인천시민의 관심과 호응을 얻고, 보다 흥미롭고 매력적인 장소를 만들고자 생각해 낸 아이디어일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인천시가 놓친 부분이 있다. 잠시 시간을 돌려보자.
지난 연말, 인천시는 아트플랫폼 위탁운영 기간을 기존 2년에서 3개월로 대폭 축소하였다. 이는 문화재단 측에도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아트플랫폼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상당히 큰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겠다’ 정도의 불안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시는 공교롭게도 이 무렵, 개항장 뮤직갤러리 사업을 아트플랫폼에 제시했다. 따로 인터뷰를 하지는 못했지만, 시의 지시를 받은 아트플랫폼 직원들이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사전에 어떠한 조치들이 필요한지, 행여 예상되는 문제점은 없는지 등 사업을 객관적·비판적 관점에서 예측해볼 여력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최근의 아트플랫폼 맥줏집 논란은 전형적인 상명하복(上命下服) 식의 사업추진이 불러온 결과가 아닌지 추측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인천시는 지난 2월 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긴 했지만, 운영개편안을 크게 수정하지는 않았다. ‘레지던시 완전 폐지’에서 ‘부분 폐지’로 사업내용을 일부 조정한 것을 보면 그렇다. 아트플랫폼의 운영 목표를 ‘예술창작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예술 창작저변을 확대’(「인천아트플랫폼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1조에서 발췌)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북적이는 관광지’ 정도로 설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인천시가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보다 많은 시민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고심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예술가들이나 활동가, 아트플랫폼 직원들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적극적으로 의논을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레지던시 축소(혹은 폐지)’라는 설립 취지에도 어긋나는 방안을 운영개편안으로 내놓을 수 있었을까.
최근 행정 분야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 시대의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단어는 단연코 ‘소통’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단어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정치인과 자치단체가 그토록 부르짖는 단어이건만, 여전히 불통의 행정이 낳은 논란은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다. 소통은 이제 ‘미덕’이 아니라, ‘의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특히 행정 분야에서 소통은 정책 결정 과정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