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모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작년 10월 하순, 그날도 날씨는 청명하고 바람도 약간 불어 기분 좋은 날이었다.
나는 지인 몇 명과 오랜만에 송도 흥륜사를 찾았다. 절마당과 주변은 몰라보게 보수와 정돈을 잘해 놓아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웅전 앞마당 한구석에 꽤 규모가 큰 연못이 있었고 그 곳에서 일행은 동전놀이를 하였다. 연못은 얼추 보아 2미터 정도 높이에 물은 20프로 정도 차 있었고 군데군데 넓적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바위 여기저기에는 하얀 동전들이 어지럽게 던져져 있었다.
우리 일행도 누구 할 것 없이 동전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바위 위에 안착시키는 시합 아닌 시합이 벌어졌다. 동전을 연못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돌 위로 던지기는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나는 2개를 던져 한 개는 성공하였고 한 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한 개를 좀 더 확실하게 바위 위에 안착시키려고 연못가로 좀 더 허리굽혀 던지려는 순간 갑자기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그대로 연못 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떨어지는 순간 '이거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렴풋이 약간의 정신은 있는 편이었다. 연못 속에서 일어서려고 하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오른쪽 발에 통증이 심하게 왔다.
성악가 김동규는 '10월의 멋진 날에'라고 노래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멋진 날이 되지 못하고 불운한 10월이 되었다. 즐거움의 꼭지점에서 요즘 흔한 말로 “대박!”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심벌즈 타이밍’을 갖게 된 것이다. 음악에서 심벌즈는 언제나 긴장감과 짜릿함을 선사하지만 나에게 이 순간의 심벌즈 소리는 온몸을 파고드는 아픔으로 왔다.
일행이 뛰어들어 나를 부축해서 절마당으로 나왔다.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하늘을 문득 쳐다보니 하얀 구름이 무더기로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었다. 시끄러운 119 구급차 소리가 들렸고 몸은 아득한 세계로 점점 꺼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고 병원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침대에 누운 채 어디론가 실려가면서도 간호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어디가 얼마나 다쳤느냐고 물어보았다. 검사를 다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상투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맞는 말이었다.
바로 수술을 하였고 얼마 지난 후 마취에서 깨어 보니 하얀 붕대로 무릎부터 오른발 전체가 칭칭 동여매어 있었다. 발가락으로 이어지는 뼈 네 개가 원래의 위치에서 이탈되어 있어 금속핀 네 개로 고정시켰다는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순간의 실수가 이렇게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머리를 바위에 안 부딪힌 게 천운이 아닌가 하는 안도감도 동시에 들었다.
이주 후 집으로 퇴원하여 1년이 경과된 오늘에 이르렀으나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전체에 오는 통증은 아직도 여전하다. 나이가 있다 보니 뼈로 인한 부상은 오래가는 듯하다.
중국의 성리학자 주자의 경재잠에서 걸음걸이는 항상 무겁게 하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나에게는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나의 부상은 시간이 흐른 후에 어느 정도 낫겠지만 이런 경험은 나에게 전에 없는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