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밀착형 시민은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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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밀착형 시민은행'이 필요하다
  • 양준호
  • 승인 2010.03.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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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양준호(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인천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역경제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면, 인천에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제조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고 다들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조업 지원과 관련한 산업단지의 문제에 무게 중심이 가장 많이 쏠려 있으며, 또 일각에서는 제조업 육성을 위한 관계 주체 간 연대회의 구성 등이 비교적 많이 제안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와 같은 논의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인천에서는 제조업을 발전된 형태의 산업단지를 통해서만이 살려낼 수 있다는 논의가 너무 독점적이어서 그 이외의 다양한 제안이 생산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산업단지 고도화와 제조업 육성 간의 일반론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기도 하겠지만, 제조업 육성에 불가결한 금융제도에 관한 이해의 결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인천지역 제조기업의 실태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인천상공회의소도, 또 지역금융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지역 금융제도에 관한 끊임없는 주장을 제기해야 하는 한국은행 인천본부도 제조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지역 중소 제조 기업에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 금융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독일 보훔에 위치한 '사회적 은행' GLS 방크. 성장률이 아주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경제위기가 금융권에서 초래됐기 때문에 '대안금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특별히 높아졌다.

 인천상공회의소에는 지역금융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또는 금융문제를 간과해도 산업단지 문제만 잘 해결되면 모든 것이 순탄해지리라고 보는 낙관론이 존재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와 현 지역경제의 환경이 매우 유사한 동북아시아 각국의 지역 상공회의소가 지역의 제조 기업 육성 및 지원과 관련하여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이 금융부문임을 고려하면, 인천상공회의소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인천상공회의소가 주재하는 산업단지 고도화 등의 제조업 육성 및 지원 관련 정책 콘텐츠 생산 과정에 대해, 예를 들어 연구용역 수주에 능숙한 지역의 특정 전문가 그룹과 같은 기득권 연합이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또 최근 한국은행 인천본부가 언론에 내놓는 공적인 주장들을 보면 인천경제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펼치거나 인천시의 경제정책에 관한 대변인 역할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정치적 평가는 이 글의 논외로 차치하더라도 인천의 지역금융과 관련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매우 인색한 것 같다. 인천 기업들의 금융 및 재무상황에 관한 종합적인 데이터베이스로 평가할 수 있는 귀하고 귀한 ‘인천지역 기업경영분석’을 내놓고도 어떤 분석에 의거하여 제시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금융과 관련하여 대안을 내놓는 것이 무엇 때문에 그리도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위에서 논외로 차치하기로 한 문제들도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하기에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하지만 인천지역 기업들의 금융 및 재무상황을 ‘분석’하였다면 그 결과만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과학적이고도 논리적인 것이다.  
 
 인천지역 기업의 금융상황을 산업별로 살펴보면, 2005에서 2008년까지는 섬유제품 부문과 펄프 종이 및 종이제품 부문, 비금속광물제품 부문, 가구 및 기타 제조업 부문, 지난해 기준으로는 비금속광물제품 부문, 기타 전기기계 및 전기변환장치 부문, 펄프 종이 및 종이제품 부문의 재무 불안정성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직면한 재무위기가 기업들의 낙관적 전망에 따른 과잉 투자 및 시장전략 실패와 같은 이른바 ‘무능함’으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매출 부진 및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자금 부족 및 유동성위기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즉 기술경쟁력 및 철저한 시장전략 등 여러 측면에서 아무리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라 할지라도, 외부의 여러 경제적 조건을 통해 악화된 매출실적 및 자금력에 대해 이들 기업이 거래하고 있는 은행들이 매우 단기적으로 평가한 결과 이들의 유동성 위기는 더 이상 치유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인천지역 내 제조업은 2008년 말 기준으로 부채 비율이 확대되고 자기 자본 비율이 하락하고 있어 재무구조가 불안정했으며 경기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각 기업의 자금 수요는 급격히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투자 확대가 필요하지만 금융기관의 자금과 정책 자금 공급의 축소가 시설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기업체들의 더욱 심각한 자금난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인천의 제조 기업들이 직면한 재무위기는 인천지역 기업들의 ‘무능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 의거한 관계지향형 대출관행을 청산하고 기술력 및 장기 금융거래 실적이 아닌 오로지 단기적인 관점에서 재무제표와 같은 계량적 기업정보에만 의존하여 시중은행이 매우 경기탄력적으로 대출행태를 벌인 것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진단하고 싶다. 물론 우리 시중은행의 대출패턴은 금융감독기관의 금융정책 패러다임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인천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제조업 중소기업들이 직면해 있는 위기의 본질을 산업단지 문제나 연대회의 결여로만 치부하지 말고 영세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금융행위는 결과적으로는 은행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작용해 ‘상업적’ 이기도 하지만 동기 차원에서 보면 자금 수요자와 자금 공급자를 국민국가 내에서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매우 ‘공공적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동기의 공공적 성격으로 인해 금융기관 역시 수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를 맞고 있는 기업들에게 우산을 씌어 주는 것은 은행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공공성의 실천 방법이다. 이런 공공성은커녕 오히려 비가 온다고 해서 기업들이 쓰고 있는 우산을 빼앗아버리는 행태는 웬 말인가! 필자가 참석한 인천지역의 어떤 경제토론회에서 중소기업 정책금융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는 기업은행 관계자가 은행도 기업인데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이냐 하며 은행의 중소기업에 대한 경기비탄력적인 대출의 곤란함을 호소한 적이 있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금융에 관한 인식이 그러하면 일반 시중은행의 그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지금의 기업은행이 왜 존재하는지 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아뭏든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을 사명으로 하는 기업은행이 그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우리 금융감독기관의 일반 시중은행에 대한 규제가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임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감독 패러다임의 핵심은 금융당국이 은행에 대해 BIS비율과 같은 미국 스탠더드의 엄격한 준수를 강조함으로써 은행들에게 수익만을 쫓게 하여 결국 이들의 공공성에 관한 시선을 가로막아 채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천지역 제조 기업을 제대로 육성하고 또 지원하기 위한 금융적 대응을 어떤 방향으로 모색해야 하는가? 바로 신자유주의적인 금융패러다임만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 금융당국의 감독과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금융기관만이 비 맞고 있는 우리 인천의 제조 기업들에게 끝까지 우산을 받혀줄 수 있을 만큼의 ‘공공성’을 발휘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수익원리주의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금융패러다임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의 지적에 의해 사양길로 접어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금융당국만 우상 숭배하듯 모시고 있는 원리이기에,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지역금융 질서 구축에 관한 지역 시민의 지지를 끌어 모으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세계 금융시장에서 ‘나홀로’ 길을 걷고 있는 우리 금융당국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행의 형태가 아니라 대부업의 형태로 등록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업’이라 하면 웬 지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나오는 악덕 추심업자들을 연상케 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관 형태를 구분하는 용어의 문제임) 이는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이 대부업으로 등록될 때 앞에서 거론한 BIS비율 규제 등의 수익원리주의에 의거한 금융당국의 간섭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오는 날 우산’이 절실한 인천지역의 많은 제조 기업들과 지역금융의 공공성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시민들이 공동으로 출자함으로써 영국 런던의 ‘Credit Union’과 같은 협동조합형 지역금융기관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작은 규모의 기업대출에서 출발하여 이 기관의 여신기능을 더 충실히 하는 데 역점을 두면서 조직 인적구성의 ‘자기완결성’을 확보해야 한다. 금융 공공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인천지역 내 금융기관 은퇴자 및 금융노조 관계자가 여신 업무를 맡고, 적절한 조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이 기관의 홍보 및 영업을 담당하고, 또 전문가 및 지역언론 등도 여러 업무 절차에 참여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지역금융기관은 일반 영리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에 관여하면서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대출 역시 수행해야 한다. 일반 민간 기업들이 불황 때 전반적인 투자 규모를 줄이는 반면에 사회적 문제를 기업의 형태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기업은 경제가 어려울 때 더욱 많은 투자수요를 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금융기관이 점차 큰 규모의 기업대출에 관여할 때는 인천시와 공동분담 대출을 하거나 인천시의 공적보증을 받아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대출과 공적보증에 소요되는 예산 집행은 무분별한 개발에 투입되는 것과는 달리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필자가 제안하는 지역금융기관은 전체 여신 중 약 50% 이상을 지역통화로 충당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역통화는 법정통화와 달리, 일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될 수 있으며 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업들에 대해 대출금으로 제공된 지역통화는 결국 기업들의 동일지역 기업 및 관계자에 대한 신속한 재투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지역 내 수요를 확보해야만 구축 가능한 이른바 ‘순환형 경제’를 담보해낼 수 있다. 가깝다는 이유로 귀한 인재와 재화들을 서울에 빼앗기고 있는 인천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역류현상’을 고려하면, 필자가 제안하는 지역금융기관은 지역 제조 기업들의 재무 불안정성을 완화시키는 미시적 효과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지역 내 수요를 확보하여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거시적 효과 역시 발휘해낼 수 있다. 
 
 시장자율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금융패러다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고 공공성과 규제를 강조하는 금융패러다임이 세계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이 때, 우리 인천이 먼저 협동조합형 지역금융기관을 창설해야 한다. 이는 우리 인천에 재무위기에 봉착한 기업이 많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시장원리주의자건 공동체주의자건 거의 모든 인천의 논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과제인 인천의 제조업 전체를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인천에 순환형 지역경제를 구축하고 세계가 공유하는 담론적 인식에 매우 구체적이고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명품도시’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지역금융의 거버넌스 주체를 ‘시장(market)’에서 ‘공동체적 시민사회’로 승격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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