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쓰나미', 그리고 1만1680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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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쓰나미', 그리고 1만1680 시간
  • 박인옥
  • 승인 2010.03.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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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박인옥 인천시교육위원회 전 교육위원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은 세계화 흐름에 부응하기 위한 정부 개혁조치의 일환으로 나온 정책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열린교육'이었고, 열린교육은 공급자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의 자기 주도적 학습방식으로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여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엉뚱하게 학교공간의 물리적 개방 열풍으로 이어져 교실문을 없애고, 책걸상 대신 ‘카펫트 교육’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곧 이어 초등영어교육정책이 교육계 논란으로 등장한다. 1997년 초등학교 정규교육과정에 외화유출과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영어교과목을 도입한다. 그러나 목적은 사라진 채 어학연수를 위한 '비행기 탈출'이 줄을 잇는다. 출산일에 맞춘 임산부의 영어권으로 탈출이 모 방송사의 해외취재로 방송되고, 심지어 유창한 영어발음이 가능하다는 신체적 가해행위 보도가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더 이상 생물학적 인종의 열등감을 불러오는 차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극단적 행위가 병적인 행위로 이어진 우리 사회의 뒤틀린 모습이었다.

 
지난해 대구시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영어교육 박람회' 모습.

  2008년 외고설립 논란과 함께 영어교육열풍이 다시 도마에 오른다. 소위 '영어몰입교육'으로 조기영어교육의 실효성이 입증이라도 된 듯 '쓰나미'처럼 교육계를 흔든다. 거센 반발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학교 영어교육은 대규모 외국인 강사들로 채워진다. 
 
  영어교과의 문제일까, 영어교사 능력의 문제일까. 또는 영어교육정책의 문제일까. 왜 한국의 교육계는 영어교육에 그리도 집착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왜 국사교육의 열풍은 없으며, 국어교육과 과학교육의 열풍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열풍의 배경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첫째, 영어열풍은 정치권력을 구성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경험을 근거로 탄생하였다. 
  
  영어열풍은 1980년대 해외유학이 자유로워지고, 1990년대 해외유학파가 정치권으로 대거 흡수되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사회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전체 국민의 5% 정도가 해외유학파를 차지하고, 이들이 정치권력의 일부를 형성하며 한국 사회의 전체 시스템을 움직인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정보화·세계화를 위해 사회적 기능을 담당할 교육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먹혀들어간 것은 바로 이 같은 정치권력집단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시기적으로도 일치한다. 
 
  경기도가 2003년 처음으로 파주에 850억원을 투자하여 영어마을을 조성한 것은 그 정치집단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후 인천을 비롯해 전국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영어마을을 설립하였고, 2008년 현재 21개에 이른다. 시·도 교육청이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포함하면 사실상 62개에 달한다. 한편 2008년 정부조사에 따르면 각 자치단체는 불어나는 영어마을의 운영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교육기관에 위탁하거나 한 해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도 45억9천만원(2008년 기준)의 적자를 냈다. 
 
  세계 어느 국가도 내국인의 외국어습득을 위해 엄청난 예산과 토지를 물 쓰듯 하지 않는다. 영어권 국가들과의 접촉이 쉽거나 많았던 지도층 인사들의 경험과 환상이 영어교육을 부풀린 결과이다.

  둘째, 영어사용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실증적 조사와 연구를 숨기거나 왜곡하고 있다. 
 
  영어교육체계의 사회적 기능이 중요하다면, 정부는 우리 사회 누가, 얼마나, 어떻게 영어를 사용하고, 필요로 하는지 설득할 만한 근거를 밝혀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유학한 사람들이 그러한 정도로 한국사회가 영어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하여 전 국민이 세계화에 기여하기 위해 영어사용의 공용화에 동의할 만큼 한국어 사용의 불필요성이 입증되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만한 근거는 어떠한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 없으며, 그러한 노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영어학습의 성취목표가 분명하지 않다. 
 
  한국의 교육과정이 대학입시를 위해 존재하듯, 영어 역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입시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때문에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교육과정이다. 국어교육이나 국사교육, 수학·과학교육이 문제풀이에 의해 이루어지듯, 영어 역시 그러한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지적 호기심을 위한 학습과정은 생략되고 오로지 점수로 평가되는 결과가 존재하는 한 영어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 영어를 가르치고 배워야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진지한 논의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문적 필요에 의한 것인지, 모국어를 포기하고 공식 언어로서 영어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외교적 필요에 의해 선택을 하는 것인지, 관광객 접대용인지,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학부모의 이기심을 부추기며 사교육만 탓한다.

  넷째, 확인되지 않은 각종 구호와 기관들이 조기영어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 영어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영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영어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한다. 영어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형 어학원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어린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 연구자에 의하면 한국인으로 태어난 아이가 만 4살이 될 때까지 한국어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총 11,680시간이라고 한다. 이는 4년동안 365일 8시간씩 한국어를 접촉하거나 사용한 시간이다. 만일 11,680시간을 채우기 위해 하루 1시간씩 영어를 배운다면 3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학교에서 1주일에 1시간씩 배우는 것으로 부족하여 방학 때마다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해외연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수고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여 효과가 있다는 실증적인 연구결과는 없다.

  왜 배우는지조차 모르고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교육, 오로지 성공을 위해 높은 점수만 받아야 하는 학력/학벌사회, 모든 국민이 영어를 해야 하고, 모든 학생이 반드시 학령기에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사회, 확인되지 않은 실용주의 경험론을 대세라 하는 '교육 쓰나미', '영어 쓰나미'에 묻혀 질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숨 돌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영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성취욕을 갖게 할 때 영어는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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