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이 오고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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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이 오고가는 풍경
  • 공주형
  • 승인 2012.02.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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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 / 미술평론가, 인천대 초빙교수

허름한 교실 안이 남녀학생들로 북적인다. 얼핏 둘러봐도 학생 수가 서른 명이 넘는다.  학생 수에 비해 책상과 걸상도 턱없이 부족하다. 간이 의자가 교실 안 여유 공간에 놓였지만, 그나마 그것도 부족하여 서 있는 학생도 있다. 양질의 교육을 주고받기에는 교실도 너무 비좁고, 학생 수도 너무 많다.

알베르트 앙커, 시골 학교, 1896

선생님 오른손에 회초리가 단단히 들려 있다.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나름의 방편일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별 볼 일 없다. 선생님과 시선을 맞추거나, 교재를 보고 있는 충실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업 태도가 좋지 않다. 선생님 앞쪽에 앉아 버젓이 앉아 오른쪽 팔을 턱에 괴고 공상에 빠지는가 하면, 상체를 낮춘 채 선생님 눈을 피해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한 쪽 팔을 베고 책상 위에 누운 금발 소년이 있는가 하면, 허공을 응시하는 갈래머리 소녀도 있다.

스위스의 국민 화가 알베르트 앙카(Albert Anker 1831~1910)의〈마을 학교〉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어수선한 수업 시간의 풍경이다. 스위스의 특별 우표와 주화로 만들어져 기념될 정도로 사랑받는 그의 그림에서 교육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그가 참여 민주제 지지자로 시의회 일원이었던 당시 스위스는 이제 막 학교와 교육에 대한 관심이 싹 뜨기 시작하던 때이었다.

아이들의 공간이 집에서 학교로 이동을 시작하던 시대의 과도기적 상황이 그의 그림에 공존한다. 그림 속 소년들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땔감을 줍기도 하고, 간이 칠판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에 가기도 한다. 소녀들은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세상에서 어린이를 가장 잘 그린 화가’라는 평가는 아이들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어린이들은 때로는 집안에서 인형을 가지고 신나게 놀이를 하고, 때로는 어려운 시험 문제 앞에서 머리를 긁적인다. 즐거움에서 불안함까지 어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어린이들의 심리 상태를 그의 그림은 예리하게 포착한다. 네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는 어린이들은 다양한 감정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이 시종일관 순진무구하지도, 무턱대고 계몽할 만큼 사악하지도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런 이해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이다운 아이들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며칠 전 큰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을 했다. 6학년 2학기 시작과 동시에 전학했으니 꼭 6개월 만이의 일이다. 전학 첫날부터 졸업 임박 시점까지 아이는 학급 내의 황당 사건들을 신나게 집으로 퍼 날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 든 등치 큰 아이들을 가르치는 6학년 담임선생님일 것이다.’ 아이가 전해 준 소란스러움은 늘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고, 담임선생님의 대응은 항상 신뢰할만한 것이었기에 갖게 된 확신이었다. 

‘참 후련하시겠다.’ 졸업을 하루 앞둔 날, 속 시원해 하셔야 마땅할 담임선생님은 다가올 자유를 상상하는 대신 마지막 알림장을 작성하신 모양이었다. 서른두 명 아이들 이름 앞에는 ‘놀라운 음악적 감수성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고운 목소리, 고운 마음씨 그리고 줄넘기를 사랑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등과 같은 특별한 관심 없이는 표현 불가능한 각별한 이름표들이 빠짐없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학급의 제일 말썽꾸러기 이름 앞에는 ‘훗날 돌이켜보면 추억이 가장 많을’이라는 꾸밈말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에 사랑스러운 희망사항이 덧붙여 있었다. ‘깐깐한, 꼼꼼한, 지독한, 무서운’ 대신 ‘고마운’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셨다.  

졸업식 당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실에서 작별인사를 고하던 담임선생님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같이 훌쩍이거나, 잠시 숙연해 질 법도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악의 없는 악동들은 담임선생님이 콧물감기에 걸리셨나 짐작하다가, 잠시 후 상황을 눈치 채고 “울지마! 울지마!”를 외치기 시작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애매한 상황이 전하는 의미만은 분명했다. 아이들도 그들만의 발랄한 방식으로 이별 의식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예술도, 진정한 교육도 현실이 되지 못할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오고가지 않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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